[박윤영 채준우의 다르다Go?] 사람이 사람을 구한다
<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4화
박윤영과 채준우는 장애·비장애 커플이다. 함께 여행하고, 둘이 떠드는 게 여전히 제일 좋다. 둘은 45일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이를 엮은 여행에세이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2018)>를 펴냈고, 최근에는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2023)>이라는 장애 인권을 다룬 책을 출간했다.
준우
유레일 노선도. 유레일은 유럽 33개국을 지나는 열차다.
윤영과의 여행에서는 크고 작은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둘이 다퉈서가 아니라, 비장애인이라면 겪지 않았을 그런 고비였죠. 치명적인 사건은 주로 기차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유럽을 횡단하는 수단으로 기차를 선택했기 때문일까요? (어느 수단을 선택하든 이런 고난은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겪은 최고의(?) 순간을 꼽자면, 단연 이탈리아의 도모도솔라역과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향하던 길에 생긴 사건일 겁니다.
도모도솔라역. 이토록 조용했던 곳이 윤영의 등장에 일순 소란스러워졌다.
스위스 국경을 넘은 우리에게 첫 번째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이탈리아 도모도솔라 역이었죠. 보통의 상황이라면 기차가 멈춰 서기도 전에 역무원이 나와 있기 마련인데 어째서 그날은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더군요. 윤영의 하차를 돕는 리프트는 도대체 어디 있는지...! 그야말로 비상사태였습니다. 저는 달려가 승무원을 붙잡았습니다.
“저기요! 휠체어 리프트는요?”
“네?! 그거야 미리 신청하셨어야죠.”
알고 보니 이탈리아에서는 리프트 서비스를 전담하는 부서가 따로 있었습니다. ‘살라블루’라고 부르더군요. 창구에서 기차 예매 따로, 리프트는 살라블루에서 따로, 이런 식이죠. 복잡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외국에서 온 여행객입니다. 어느 가이드북에도 없던 정보를 알 턱이 있을까요?
우여곡절 끝에 기차에서 내린 윤영과 곧장 살라블루로 향했습니다. 다음 기차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거든요. 그런데 티켓을 받아 든 살라블루 직원들의 반응이 영 심상찮습니다.
“지금 오는 기차는 고속열차가 아니고 오래된 열차라 휠체어석이 없어요. 이런 열차로 예약되어 있다니 유감이군요.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다 괜찮을 거고,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그 순간 스위스의 예매 창구 직원이 떠올랐습니다. 티켓을 예매할 당시, 그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윤영을 똑똑히 보고 있었습니다. 휠체어석과 탑승 서비스를 요청한다는 메시지도 확실히 전달했고요.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탈 수 없는 기차를 발권했습니다.
살라블루 사무실. 이탈리아에서는 이동약자에 관한 열차 탑승 서비스를 이곳에서 신청한다.
하지만 살라블루 직원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았죠. 어딘가로 계속 전화를 걸었고,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로 메모하더군요. 그러잖아도 꼬깃꼬깃했던 메모장은 더 일그러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별일 아니라는 듯 씩 웃어 보이는 겁니다. 그 미소에 덜컥 불안해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뾰족한 수는 없었어요. 혹시나 이번 기차를 못 탄다면 당장 휠체어 접근성을 따져가며 숙소를 알아봐야 할 텐데 자신이 없었죠.
고맙게도 살라블루 직원은 우리의 여행을 이어가게 하겠다는 신념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플랫폼에 기차가 들어오고, 살라블루 직원이 소리 치자 몇 명의 스태프가 어디선가 달려 나오더군요. 그가 말했던 “맡겨달라”라는 말이 이런 의미였다니!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위험하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그들은 완고했어요. 윤영이 잠시 기차역 벤치에 앉아있는 동안, 4명이 모여 커다란 기합과 함께 100kg이 넘는 전동휠체어를 들어 올렸죠.
그의 사려 깊은 마음은 객실까지 이어졌어요. 우리가 자리를 잘 잡았는지 직접 확인했고, 눈앞에서 하차할 역에 전화를 다시 걸어 리프트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 안심시킨 후에야 작별 인사를 건네더군요. 저는 너무나 고마워서 손을 붙잡고 연거푸 감사 인사를 했어요. 기차가 출발하는 와중에도 잘 가라고 손을 흔들던 그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두 번째 시련은 니스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던 기차 안이었습니다. 선로에 문제가 생겼다는 방송이 흘러나온 뒤 그대로 멈춰 서버렸습니다. 무려 4시간을요! 결국 바르셀로나행 열차는 놓쳤고 난장판인 역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역무원이 소리치고 있었죠.
니스-바로셀로나행. 이 열차에서 우리는 4시간을 갇혀 있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바르셀로나행으로 가는 버스를 준비해 놨습니다. 우선 페르피냥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가세요!”
“저기요! 당신이 말한 그 버스에 휠체어를 실을 수 있나요?”
저는 인파를 뚫고 들어가 윤영을 가리키며 그에게 소리쳤어요. 그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고등학교 때 수학 문제를 풀던 제 눈빛과 비슷해 보였달까요? 그는 조금 망설이더니 “Yes!”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페르피냥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죠. 불안했어요. 그를 믿기엔 석연찮았거든요. 그때 한 승무원이 다가왔어요. 그는 “엠마”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습니다.
“고객님, 어디까지 가시나요?”
“아, 저희가 사실은...”
그의 질문 한 번에 모래성 무너지듯 그동안의 일을 술술 털어놨습니다. 너무 막막하니까 앞뒤도 보이지 않더군요. 페르피낭에서 정말 버스를 탈 수 있을지 불안하다는 말에 그는 흔쾌히 확인해 주겠노라 했죠. 10분 정도 지났을까요? 엠마는 난감한 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역시나 그 버스에는 휠체어가 탈 수 없었습니다. 윤영은 땅이 내려앉듯 한숨을 쉬었고, 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켜내기에 바빴습니다. 그런 우리를 번갈아 보던 엠마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어요.
“페르피냥에 호텔이 하나 있어요. 오늘 밤은 거기서 보내시고 내일 오전에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를 타시는 건 어떠세요? 요금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두 분이 동의하신다면 호텔을 예약하고 기차도 변경해 드릴게요.”
처음엔 귀를 의심했어요. 고마운 제안이지만 받아들이는 게 맞는지 혼란스럽기도 했죠. 그러면서도 긴장이 풀려 다리에 힘이 빠질 지경이었어요. 우리는 염치를 잠시 내려놓은 채 엠마에게 감사를 전했습니다.
“아니에요. 오늘 일은 저희의 책임인걸요. 죄송합니다.”
결국 이 말이었어요. 엠마에게 사과받는데 왈칵 눈물이 나더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진심 어린 공감이 이렇게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요! 역과 호텔에서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어요. 엠마라는 이름을 대자 새로운 티켓이 나오고 호텔 키가 쥐어졌거든요. 심지어 그는 장애인 객실을 예약하는 것도 잊지 않았죠.
윤영
살라블루 간판
휠체어를 번쩍 들어서 기차에 실어 준 살라블루 직원들. 호텔을 제안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던 승무원 엠마.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대들 덕분에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노라고 꼭 전하고 싶은데 말이죠. 고마운 마음을 꾹꾹 담아 그게 뭐든 주머니에 챙겨 넣어주고 싶은 정도예요. 물론 답례를 바란 사람들은 아니었지만요.
저는 요즘도 그들을 떠올려요. 그러면 쑥스럽게도, 세상 사람들을 꽉 안아주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히죠. 아, 그렇지만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도 따라왔어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살라블루의 직원과 승무원 엠마는 ‘어째서 우릴 그렇게까지 도왔을까?’ 반대로 우리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긴 티켓 창구 직원과 역무원은 ‘어째서 그토록 무신경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의문이 들어요. 냉담했던 사람들 그리고 따뜻했던 사람들 양쪽 모두에게요.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움직이게 했을까요. 살라블루의 직원과 승무원 엠마가 베푼 호의가 당연한 건 아니죠. 그렇다면 티켓 창구 직원과 역무원의 냉담함은 당연할까요? 그들은 그냥 그런 사람이고, 선의에만 기대 살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걸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 사회를 돌아봤어요. 아늑한 나의 집, 자동차로 가득한 도로, 그 뒤로 보이는 빼곡한 고층 빌딩들, 바로 문명을 이룬 우리 사회 말이에요!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이고 모두에게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지는 자꾸 잊어요. 그러다 무인도에 맨몸으로 떨어지는 상상을 할 때면 너무나 아찔해서 눈이 찔끔 감겨요. 폭신한 침구는 고사하고 불을 피우거나 깨끗한 식수를 구하지도 못할 테니까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조차 쉽지 않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니까, 이렇게나 약한 사람들이니까 다 같이 모여 지금의 사회를 만들었어요. 덕분에 저는 지금도 푹신한 휠체어에 앉아 글을 쓰고 있네요. 완벽하게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중이죠!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을 때면 절로 숙연해져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서요. 저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빚을 졌고, 앞으로도 빚지게 될까요?
도모도솔라역. 살라블루 직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곳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살라블루 직원은 기차를 놓치는 것이 나의 일처럼 걱정됐기 때문에 열 일 제쳐 둔 채 달려 나왔어요. 승무원 엠마도 칠흑 같은 밤 외딴곳에 남겨질 우리를 자기 일처럼 걱정했고요. 그래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거나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 거예요. 사비를 들여 생면부지의 여행객을 돕는 일까지도요.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는 공감 능력, 그것을 행동으로 실행하게 만드는 이타심, 지금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능력을 그들은 이미 가지고 있었던 셈이죠. 오히려 그 과정에서 이 세상이 얼마나 비장애인 중심적인지 새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반면, 티켓 창구 직원과 그 역무원은 다정함을 잠시 잊고 지내는 중이었을 거예요. 무인도에 떨어지는 상상을 해야만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저처럼요. 그래서 휠체어를 탄 저를 마주했을 때 복잡한 심경이었겠죠. 번거로운 일이 될 게 불 보듯 뻔했으니까요. 그래서 냉담한 태도를 취하기로 한 거예요. 자신이 예약해 준 열차가 휠체어석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정말로 휠체어가 탈 수 있는 버스인지 확인한 후에 신중하게 답해야 하는 자신들의 책임을 저버리는 방식으로요. 결국 그들이 떠민 일들은 살라블루 직원과 엠마에게 떠맡겨졌어요. 살라블루 직원과 엠마가 자신의 일처럼 나설 때, 이들은 어서 빨리 나와 무관한 일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 덕분에요.
지금은 그들이 다정함을 회복했길 바라요. 다정함은 너무 오래 잊고 살면 안 되니까요.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문명화된 사회의 어엿한 일원이기를 스스로 져 버리는 행동과 같아요. 다수에게 주어진 문명의 혜택은 누리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긴다면? 그런 존재를 환영할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어요.
이렇게 우리의 여행은 글로도 다 담지 못할 만큼 다이내믹하지만, 이런저런 다정함이 모여 완성되고 있었어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지금도 주변의 보살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잘 알죠. 그래서 이제는 큰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오가는 여행자들을 마주치면 토끼처럼 쫑긋하고 귀 기울여요. ‘여차하면 도와줘야지!’하는 마음이 절로 들어서요. 살라블루 직원과 엠마가 그랬던 것처럼요.
*글, 사진= 박윤영 작가, 채준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