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상버스는 모두의 불편을 싣고 달린다

<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3화



칼럼니스트 박윤영과 채준우는 장애·비장애 커플이다. 함께 여행하고, 둘이 떠드는 게 여전히 제일 좋다. 둘은 45일간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에세이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2018)>를 펴냈고, 최근에는 장애 인권을 다룬 책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2023)>을 출간했다.



윤영



런던의 아침은 어째서 이토록 상쾌할까요. 미세먼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공기! 유리알처럼 맑게 흐드러지는 햇살을 받으며 버스정류장에 다다랐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캠페인이 보였어요. “BUGGY USERS PLEASE MAKE SPACE FOR WHEELCHAIR USERS 유아차 사용자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공간을 만들어 주세요"


런던 버스에는 의자가 없는 공간이 있어요. 휠체어 사용자나 유아차 사용자를 위해 처음부터 빈 공간으로 만들어졌죠. (최근 한국 신식 버스에도 많아요) 캠페인은 바로 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휠체어 사용자가 탑승할 땐 유아차 사용자가 공간을 만들어달라고요. 모두가 탈 수 있도록 말이죠. 난데없이 들어온 한 줄의 캠페인에 괜히 심각해졌어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휠체어 유저가 타면 당연히 비켜줘야지!’ 이런 건 아니었고, ‘유아차가 버스에 탄다고?’라는 의문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았죠.


머릿속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버스가 도착했어요. 가볍게 손을 흔들자, 기사님은 램프(경사로)를 작동시켰어요. “삐융~ 삐융~” 이제 곧 램프가 저절로 펼쳐질 것이라고 요란한 소리를 사방에 울렸어요.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소리만 요란할 뿐 램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죠. 이내 기사님이 내려서 차를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을 때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출근 시간을 살짝 비켜 나 있긴 했지만, 버스 안에는 여전히 많은 승객이 있었어요. 각자 어딘가로 바삐 향하던 길이었겠죠. 준우와 저는 그 시간이 괴로웠어요. 견딜 수가 없었죠. 민폐가 되는 게 두려워서요. 그만 가셔도 된다고 기사님 뒤를 졸졸 쫓아다닐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기사님은 시종일관 태연하더라고요. 버스 안팎을 몇 번이나 더 오가면서요. 마침내 램프가 정상적으로 움직였어요. 기사님은 ‘그것 봐, 되잖아’라는 표정으로 타라고 하더군요. 난처함인지 고마움인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이 ‘둥둥’ 떠다니는 아침이 지나갔어요.


런던버스의 좌석에도 있는 캠페인 문구런던버스의 좌석에도 있는 캠페인 문구


유아차도 저상버스에 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린 건 그로부터 한참 뒤, 여행 중반부에 다다랐을 때였어요. 북적이는 버스가 멈춰서고 램프가 펼쳐지는 소리가 들릴 때면 어떤 휠체어 유저가 탈지, 귀를 쫑긋 세웠죠. 하지만 버스를 타는 쪽은 대부분 유아차 유저였어요. 그럼 우리는 의자가 없는 그 공간에 나란히 앉아서 갔죠. 가끔은 아이와 ‘안녕’ 인사를 나눴고, 때로는 양육자와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면서요.


이탈리아 버스 상황별 호출버튼. 낡은 버스에도 휠체어 좌석이 있다.이탈리아 버스 상황별 호출 버튼. 낡은 버스에도 휠체어 좌석이 있다.


램프를 사용하지 않고 유아차를 들어 올려 그냥 타는 승객도 있었어요. 램프를 사용하는 건 자유지만 의자가 없는 빈 공간에서 만나는 건 똑같았죠. 런던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파리,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도 그랬어요. 유럽에서 유아차와 함께 버스를 타는 일은 아주아주 흔한 일이었죠.


그제야 한국에서 유아차 사용자와 버스를 탄 적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었어요. 함께 지하철을 탄 적은 많았죠. 그런데 버스에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BUGGY USERS PLEASE MAKE SPACE FOR WHEELCHAIR USERS -유아차 사용자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공간을 만들어 주세요-” 그래서 이 캠페인의 의도도 단박에 알아차리지 못한 거죠.


그러니까 이 캠페인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유아차도 저상버스에 탈 수 ‘있다’, ‘없다’ 따위는 넘어서야 해요. 유아차 유저에게도 경사로가 필요하고 요청하면 언제든지 내어 주는 게 당연한 일상이어야 하죠.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부끄러웠죠. 나의 사정이 여의찮다고 한국에서 유아차 사용자의 상황이 어떤지는 따져 보지도 않았다는 걸 깨달아서요.


스페인 버스 내부스페인 버스 내부 공간


물론 저는 저상버스를 하루에 이용한 횟수가 한국보다 유럽이 더 많아요. 어쩌면 유아차 사용자를 못 만난 건 그 때문일 수도 있죠. 하지만 탈 수가 없었어요. 저상버스가 없는 노선이거나, 경사로가 고장 났다는 아주 흔하고 재미없는 이유 말고도 사연은 많아요. 정류장에 서지 않고 도로 한복판에서 승하차하는 버스를 만나거나, 금방 온다면서 뒤에 오는 버스를 타라고 쌩 가버리거나, 수동으로 펼쳐야 하는 경사로를 자신이 밟고 서 있는 줄도 모르고 이게 왜 안 펼쳐지냐면서 도리어 화를 내던 기사님을 만나면 탈 수가 없었어요.


물론 지금 살고있는 동네에는 친절한 기사님이 많이 계시지만, 지금까지는 대부분 그래왔어요. 휠체어 사용자도 이렇게 저상버스를 타기 힘든데, 유아차 사용자들의 상황은 어떨까요? 매우 궁금해졌어요.


준우


윤영의 궁금증에 저도 고개가 갸웃거려졌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봤습니다.


먼저 저상버스가 얼마나 부족하지를 확인했습니다.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전국에 저상버스를 늘려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2011년까지 전국에 저상버스를 31.5%까지 도입시키겠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5년마다 그 계획을 상향시키겠다고 했죠. 그 계획은 잘 지켜졌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2023년 조사에 따르면 고작 26%에 그쳤거든요.(출처-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저상버스 도입률 조사) 18년 동안 자신들이 세운 계획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서울은 63%로 겨우 50%대를 넘겼고, 전국적으로 봤을 때는 10%도 안 되는 지역도 있습니다. 이제 정부는 26년까지 저상버스 도입률을 60%까지 올리겠다고 합니다. (참으로 느긋한 계획입니다만 그마저도 달성할 수 있을지 우리 모두 지켜봤으면 좋겠어요.)


적은 대수이기는 하나 어쨌든 저상버스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윤영과 승차 거부를 당한 뒤 버스회사 홈페이지에 민원을 남긴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다른 민원들도 보게 되었죠. 그중에 유아차 사용자가 승차 거부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꽤 많았습니다. 경사로를 내려주지 않았다는 민원, 기사님이 화를 내서 탈 수 없었다는 민원들이 있었죠. 그건 윤영이 경험하는 차별과 똑 닮아 있었어요.


한 기사에 따르면 경기도 버스운동사업조합에 ‘유아차 승차 거부’와 관련해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월평균 1~2건씩 민원이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저는 버스 노동자의 근로 실태에 눈길이 갔습니다.


2018년 버스노동자의 근로 실태 및 개선 방향 보고서를 살펴보니 많은 버스 노동자들이 하루 13시간 근무 중 무려 11시간 이상 운전대를 잡고 있었습니다. 휴식 시간이 부족해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할 지경이라고 해요.(출처: 머니투데이 “하루 '탕 수' 채우려면 화장실도 못 가"…서러운 버스기사들 2023.03.10.)


버스회사는 배차 간격을 위해 무리한 스케줄을 만들어 놓고 늦어지면 그만큼의 휴식 시간은 반납하게 했습니다. 심할 경우 경위서까지 쓴다고 해요. 이렇게까지 버스 노동자를 압박하는 데에는 배차 간격으로 버스회사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의 경우 시에서 그 평가를 하는데, 거기에 배차 간격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에 관한 항목이 있는 거죠. 좋은 평가를 받아야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길도 열립니다.


그래서 버스 기사님들은 운행 중에도 배차 간격 상황판을 들여다봅니다. 얼마나 늦었는지, 혹은 여유가 있는지 가늠하며 쫓기듯 운전하는 거죠. 동시에 안전도 지켜야 합니다. 승객이 자리를 잡으면 출발하라는 교육은 들었지만 늦어지면 페널티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 딜레마처럼 느껴지죠.


상황이 이런데 휠체어나 유아차를 가지고 타는 승객을 선뜻 반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버스를 인도에 바짝 대야 하고, 리프트를 내리고, 타는 것을 기다리고, 의자를 접거나 안전장치를 확인하고... 이 과정을 내릴 때도 반복해야 하고요. 적어도 지금의 시스템 안에서는 버스 기사님에게 친절을 강요하는 일이 폭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속사정은 들여다보지 않은 채, 런던 버스의 기사님을 떠올리며 ‘한국의 버스 기사들은 불친절해!’라고 단정 짓는다면 말이죠.


한국 저상버스의 의자 없는 좌석


어째서 휠체어나 유아차 사용자를 태워주려고 하지 않는지, 경사로 작동법은 제대로 교육받았는지. 이런 질문은 주로 버스 기사님에게 향합니다. 저 역시 그래왔으니 불편한 진실이지요. 사실은 기사님 개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울 게 아니라 정부 기관과 버스회사에 더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안전에 관한 항목보다 배차 간격을 더 중요하게끔 만든 건 이들의 잘못이니까요. 회사를 평가하는 시스템, 조금이라도 늦어지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꿔야 합니다.


또한 저상버스는 모든 교통약자를 위한 버스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장애인은 물론이고 장애인이 아니더라도요. 아이가 타고 있는 유아차나 바퀴가 달린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고령자까지 다양한 교통약자가 경사로를 요청하면 언제든 제공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런던 버스의 기사님처럼 여유로울 수 있으며, 교통약자가 더 이상 눈치 보지 않는 저상버스가 달리게 되길 바랍니다.


*글, 사진= 박윤영 작가, 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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