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말아요! 캠페인] 김주영,내 고질병의 근원
성경에 보면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를 만나 병을 고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인이 앓고 있던 혈루증이 과연 어떤 병이었는지 견해가 분분하지만 여인으로서 매우 부끄럽게 여기던 병일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불결하다고 여겼던 일종의 “하혈증”에 속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무려 12년간 앓았으니 고질병이 분명하다. 많은 의원에게 치료를 받다 재산을 다 허비했으나 도리어 병이 더 위중해졌다는 것이 성경내용이다. 아마 여인은 부끄러운 병을 은밀히 고치기 위해 이 곳 저 곳 전전했지만 결국 생고생만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인이 도저히 자신의 능력과 재산으로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의 병을 예수 앞에 드러내었을 때 비로소 병을 고치게 됐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혈루증이 있다. 얼마 전 미모의 여가수가 자살했다. 뛰어난 외모와 인기로 남부럽지 않을 듯싶었던 이 여가수에게도 우울증과 미혼모의 자식이라는 드러내기 어려운 혈루증이 있었다. 이 가수는 매사 아주 열성적이고 욕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에서 열정이 넘치는 태도와 달리 사석에서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이 여가수는 자신의 상처를 가수로서의 성공과 대중의 인기를 통해 치유하려 했을 것 같다. 어쩌면 연예인으로서의 성공과 인기가 가져올 부와 명성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온갖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힘으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환상이야말로 아무런 효험도 없이 결국 병을 더 위중해지도록 만들 지 모른다.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도 나는 너무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건강한 몸을 갖고 태어났다. 학업의 기회도 충분히 주어져 우리나라 최고학부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사법고시에 붙었다. 변호사라는 남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을 가졌으며 아내와 세 딸을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다. 게다가 나는 장애인, 소액주주, 집단사기 피해자들과 같이 이른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소송을 주로 하다 보니 선한 청년이라는 칭찬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겉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나에게도 고질적인 혈루증이 있었다. 나는 내가 성실하고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옳았다. 하지만 확신을 갖고 진행하던 소송이 패소했을 때와 같이 내 뜻이 꺾였을 때, 나는 도저히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하고 하나님을 원망했고 또 다른 사람들을 원망했다. 자랄 때부터 인정과 칭찬 받는데 익숙해 있어서 주위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더 인정받지 못해서 항상 전전긍긍한 것이 내 모습이었다. 남들의 칭찬과 비난에 연연하다보니 마음이 늘 평화롭지 못했다. 내가 정의롭고 성실해 결혼생활도 잘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있었기 때문에 나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내와 많이 부딪혔다.
이때 마다 내 잘못을 깨닫기보다 전적으로 아내를 바꾸려 했다. 겉으로 온유하고 책임감 있는 남편이었지만 속으로 어떻게 하면 아내를 바꿀까 고민하는 것이 내 모습이었다.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을 외모로 차별하다보니 나 역시 여전히 열등감과 우월감 사이를 오갔다.
겸손과 온유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뒤에는 교만함이 있었다. 급기야 내가 어느덧 쾌락을 쫓는 자리에 있음을 보게 되었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과 재물을 가지게 된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영향력을 갖게 된 내가 그들과 똑같이 변질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가진 욕심과 이기심을 깨달았다. 결국 내 힘으로 내 자신, 내 가족, 내 의뢰인을 구원할 수 없다는 진실을 깨닫고 난 후, 비로소 승패에 관한 집착, 남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오는 열등감과 우월감을 극복하게 됐다. 이것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병고침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의 기적이라고 생각된다.
미모의 여가수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것은 우울증도 아니고 악플도 아니다.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돈, 인기, 명예, 성공 등 헛된 의원들에게 찾아갔다가 결국 괴로움만 당했을 때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았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욕심과 이기심을 깨닫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리고 나 혼자의 힘으로는 상처를 치유할 수 없고 결국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진정 삶을 포기하지 말기 위해서는 어쩌면 역설적으로 스스로가 옳다는 생각과 열심과 선함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주영 변호사
푸르메재단의 든든한 후원자인 그는 2003년 비지니스위크가 선정한 아시아 스타
25인안에, 2006년 1월 세계경제포럼 (WEF)이 선정한 차세대지도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됐습니다. 서울 법대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92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장애어린이학교인 밀알학교 건립 소송을 담당하면서 공익변호사로서 새로운 삶에 눈뜨게 됐습니다. 1997년부터 <참여연대> 소액주주운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법무법인 <한누리>를 운영하면서 LG주주대표소송, 현대투신공모사기 소송, 코오롱TNS분식회계소송 등 주주대표소송과 집단소송을 이끌어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