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목표를 하나씩 이루다보면 빛나는 출구가 나타납니다"

[푸르메재단 20주년_다시 잇다]


 


힘든 재활 이겨내고 꿈꾸던 대학 새내기 된
이주언 군을 만나다


"재활은 긴 터널과 같아요. 어둡고 끝이 없는 것 같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빛나는 출구가 보이거든요."


경기도 고양시의 한 빌딩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소형차 한 대. 활짝 웃는 얼굴로 운전석에서 내리는 청년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섭니다. 태어날 때 입은 뇌 손상(백질연화증)으로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이주언(20) 군입니다. 조수석에서는 어머니 고은화(55) 씨가 흐뭇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봅니다. 주언 군은 오는 3월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랜 꿈이던 교사가 되기 위해 경인교육대학교에 지원, 지난 12월 합격의 기쁨을 얻었습니다. 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빠르게 운전면허를 따고 작은 차를 마련했습니다. 주언 군은 대학 캠퍼스가 너무 넓고 경사가 가팔라서 제 걸음으로는 강의실 간 이동이 불가능해 보였다원활한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이동 수단부터 마련해야 할 것 같았다며 웃었습니다. 밝은 표정에서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가 엿보입니다.


이주언 군과 어머니 고은화 씨


푸르메를 못 만났다면 지금의 제 모습은 없었을 것


제 발로 걷고 운전까지 하는 지금과 다르게 주언 군은 13살까지 휠체어에서만 생활했습니다. 양쪽 다리 근육이 강직돼 제대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장기가 되면서 근육이 뼈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무릎이 구부러지면서 몸 곳곳의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결국 중학교 입학을 1년 미루고 2017년 무릎을 펴기 위한 수술을 받았지요. 뼈 절단, 신경 차단, 인공뼈 삽입 등 무려 10개의 수술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푸르메와 인연을 맺은 건 이 무렵입니다. 수술 후 재활을 위해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하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재활은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집중운동치료를 받으면서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다리를 움직이려니 중심을 잃고 넘어질까 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은화 씨는 처음 재활할 때 주언이가 자기 다리를 믿지 못하다 보니 무서워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1시간 30분을 꼬박 운 뒤에야 제 발로 디디고 서더라고 회상했습니다.
인생의 은인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푸르메에서 만났습니다. 바로 김하나 치료사입니다. “재활은 아이, 엄마, 치료사의 3박자가 잘 맞아야 해요. 아이와 엄마가 치료사를 전적으로 믿으면서 계속 소통해야 하죠. 치료사 선생님이 주언이의 몸을 계속 연구하면서 매일 치료법을 새로 구성해 오셨죠. 주언이에게 맞는 재활운동을 호흡법부터 발가락 움직이는 법까지 세세하게 가르쳐주어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고은화)


2019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집중운동치료를 받는 이주언 군의 모습


주언 군은 투정 한 번 없이 고된 재활 기간을 견뎠습니다. 재활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수술할 때 다리에 박아놓은 핀이 부러졌을 정도입니다. 주언 군은 급하게 핀 제거 수술을 받고도 그다음 날 똑같이 재활운동을 했다며 웃었습니다.
저는 이 시기가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아요. 오히려 감사한 시기로 여깁니다. 김하나 치료사님이나 홍지연 부원장님처럼 저를 위해 애쓰는 분들이 계셨고, 그만큼 재활 성과도 컸으니까요. 가장 좋은 점은 그때 제 몸을 사용하는 방법이나 운동법에 대해서 잘 알게 된 것이에요. 그 덕분에 병원에 가지 못할 때도 혼자서 꾸준히 재활할 수 있었거든요. 푸르메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제 모습은 없었을 거예요.”


꿈을 향해, 더 넓은 세상으로


푸르메에서의 재활을 마치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주언 군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더 넓은 세상으로, 오랫동안 바라온 꿈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겁니다. 첫걸음은 움직일 수 있는 거리를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병원과 다르게 밖에서 걷기는 훨씬 힘들었어요. 500보 걷는 데 30분 넘게 걸렸죠. 걸음 수를 점차 늘려 1만 보를 걷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매일 똑같은 동네 길만 걸으면 지겨우니까 가고 싶은 곳의 목록을 만들어서 찾아다녔어요.”
혼자서 맨 처음 가본 곳은 서울 가로수길에 있는 애플스토어였습니다. “걸음이 느린데 지도 보는 법도 몰라서 무척 길을 헤맸어요. 남들은 5분이면 간다는 길이 30분 넘게 걸렸죠. 그래도 실망하지 않았어요. 몇 시간이 걸렸든 저는 목표한 곳에 잘 다녀왔으니까요.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어요.” 덕분에 어머니 은화 씨는 깜짝 놀랄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엄마 나 인천공항이야. 비행기 구경하니까 재밌네라고 해서 저를 놀래켰지요. 하지만 그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주언이 덕분에 제 마음속에 있던 걱정이나 불안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주언 군에게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을까요? 고통스럽게 재활하던 시기가 아닐까 예상하며 물은 말에 고등학교 1학년 때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주언 군은 전에는 재활만 열심히 해도 대단하다고 칭찬받았는데, 고등학교에 올라오니 상황이 달랐다재활에만 집중해도 되는 시기는 지났고 이제는 꿈을 찾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제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담임선생님께서 잘 돌봐주셔서 즐겁게 생활했거든요. 중‧고등학교도 중요하지만, 초등학교 때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학생이 될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누군가의 처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죠. 그래서 교대 진학을 목표로 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하니 재활할 시간이 부족해졌습니다. 주언 군은 부모님 차로 등교하는 대신 걸어서 학교에 가기로 했습니다. 아침 630분에 1.5km를 걸어서 등교했습니다. 주언 군의 걸음으로는 50분이 걸리는 고된 길입니다. 처음에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학교에 도착해 잠들곤 했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방학이면 일주일에 3~4번 헬스장에서 혼자 운동하며 재활을 이어갔지요. 주언 군은 이때 체력과 다리 힘을 키운 덕분에 운전면허 취득 시 운동능력검사를 한 번에 통과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학업에도 더 집중해 성적을 끌어올리고, 학교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에서 재활하던 때 그 모습이 KBS 뉴스에 보도된 적 있어요. 고등학교 프로그램 중 방송인과의 만남이 있었는데, 뉴스에 나갔던 경험을 담아 참가 신청을 했죠. 그 내용이 학교생활기록부에 적혔는데, 나중에 대학 면접에서 그 내용에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대학 합격도 어쩌면 푸르메 덕분일지 몰라요(웃음).”


재활은 끝 안 보이는 터널… 작은 목표로 성취 경험해야


주언 군의 성취에는 어머니 은화 씨의 영향이 컸습니다. 은화 씨는 주언 군이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진 것을 알고 재활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몇 년간 입원과 낮병동을 반복하며 재활에 매달리다가 문득 돌아보니 가족의 삶이 없었습니다. 남편, 첫째아이가 삶에서 빠져있었지요.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만 지내던 주언이가 바깥세상을 전혀 몰랐던 겁니다. 고양이를 보고 놀라는가 하면, 감각이 예민한 만큼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에도 소스라치곤 했습니다.
재활에만 매달리는 게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병원에서만 살 게 아니고 언젠가는 사회로 나가야 하니까요. 아이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이 뭘까 고민했습니다. 4살 무렵부터 치료를 줄이고 아이에게 일상생활을 찾아주기 시작했어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세상을 보여줬지요. 처음에는 저희를 쳐다보는 주위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아졌어요.”
주언 군도 어머니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재활의 최종 목표는 사회 참여이기 때문입니다. 주언 군은 치료 못지않게 필요한 게 학교생활이나 일상생활에 잘 적응하게 돕는 사회화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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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저는 양손으로 지팡이를 짚으니 혼자서는 문을 못 열어요. 문 앞에서 수없이 연습한 끝에 방법을 알아냈지요. 등에 가방도 메지 못 하니 어떤 가방을, 어떻게 메야 할 것인가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알아냈고요. 아이들에게 치료만 받게 할 게 아니라 병원 밖에서 일상생활을 어떻게 할지 충분히 생각하고 연습해 볼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과정이 힘들면서도 무척 즐겁고 보람 있었어요.”



주언 군은 지금도 열심히 재활하고 있을 동생들을 위한 조언도 덧붙였습니다. “재활은 정말 끝이 안 보이는 긴 터널과 같아요. ‘100걸음 걷기처럼 자기만의 작은 목표를 정해 성과를 이루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 넘어질까 봐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요.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니까요. 안 넘어지려고 움직이지 않는 게 더 큰 문제예요."
고은화 씨 역시 장애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남과 다른 삶을 살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를 힘들거나 아프게 하는 삶이라고 여기지 않길 바라요. 아이와 함께 걸어온 길에 많은 사건과 문제가 있었지만 하나씩 함께 풀어나가다 보니 정말 큰 열매가 눈에 보이더라고요. ‘나에게 이런 날도 있구나싶을 정도로 축복의 순간이 오기도 하고요. 병원에만 있는다고 해서 아이가 좋아지는 게 아니에요. 마음이 행복하면 몸이 저절로 좋아지기도 해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다가 진짜 중요한 오늘을 놓치지 않길 바라요. 아이와 많은 경험을 함께하면서 오늘을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며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선 이주언 군. 길고 힘겨운 재활을 웃으며 이겨낸 주언 군이기에 앞으로 펼쳐질 미래도 잘 헤쳐 나가리란 생각이 듭니다. 그가 걸어갈 길은 많은 장애어린이와 가족에게 희망을 주겠지요. 꿈을 향한 주언 군의 도전을 푸르메가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오선영(마케팅팀)
사진=이지연(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