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고무장갑
소설가 이명랑
“아이에게 물 한 컵만 먹일 수 있을까요?”
낯선 사내의 말에 식당 여주인은 계집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너덜너덜한 헝겊 인형을 매만지는 계집아이의 손톱엔 때가 끼여 있었고,
오래도록 빗질을 하지 않았는지 머리카락은 엉켜 있었습니다.
“거기 좀 앉아서 기다려요.”
주방으로 물을 가지러 들어간 여주인은 좀체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식당 구석에 앉아 있던 낯선 사내와 사내의 딸이 물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려 할 즈음에 여주인은 쟁반을 들고 나왔습니다. 쟁반엔 노릿노릿하게 구워낸 조기 두 마리와 청국장 한 냄비와 계집아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까지 있었습니다.
여주인은 낯선 사내와 계집아이 앞에 밥상을 차려주었지만, 아버지와 딸은 그들 앞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요새는 손님이 하도 없어서 버리는 게 일이라우. 어차피 내일 되면 죄다 버릴 거 쓰레기 줄여준다 생각하고 들어요.”
그제야 낯선 사내는 수저를 집었습니다.
계집아이는 씻지 않아 더러운 손으로 계란말이를 집어 입에 쑤셔 넣었습니다.
그 모습에 계집아이의 아버지는 얼굴을 붉혔고, 여주인은 계집아이의 손을 움켜쥐었습니다.
여주인은 계집아이를 식당 주방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설거지 다라이 옆에 앉히고는 머리를 감기고 목에 낀 때를 벗기고 손을 닦아주었습니다.
낯선 사내가 밥을 먹는 동안 여주인은 계집아이 옆에 앉아 머리를 땋아주었고, 여주인이 계집아이의 머리를 빗어 내리는 동안 낯선 사내는 아이의 엄마를 떠올렸습니다.
“엄마가 살아 있었을 땐 이 애도 머리를 곧잘 땋고 다녔었지요. 그 때는 제 엄마가 끔찍이도 예뻐했는데.......”
아내가 죽은 뒤로 사내는 딸 하나를 데리고 전국을 떠돌아다닌다고 했습니다.
트럭의 짐칸을 개조해 수세미며 빨래 비누, 옷걸이에 고무장갑 따위를 싣고 다니며 그날 벌어서 그날 먹고 사는 하루살이 인생을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 애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답니다, 라고 말하며 낯선 사내는 생선살을 발라 계집아이의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고서야 만물장수와 그의 딸은 떠났습니다.
그들이 떠나고 식당 여주인은 설거지를 하려고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도마 위에 빨간 고무장갑이 놓여 있었습니다.
만물장수가 밥값 대신 놓아둔 것이었지요.
소설가 이명랑
1973년 서울 출생
1998년 장편 소설 <꽃을 던지고 싶다> 출간
2002년 연작소설 <삼오식당>출간
2004년 장편소설 <나의 이복형제들> 출간
2005년 장편소설 <슈거푸시>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