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내가 할머니가 된다면

<발달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7화


 



칼럼니스트 김유리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에세이 <너와 함께라면>을 쓴 발달장애인 작가이다. 말보다 글이 편하다고 말하는 천생 글쟁이다. 칼럼의 주제에서 '자립'이라 함은 '남에게 의지하거나 매어있지 않고 스스로 섬'을 의미하는 것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늘려갔던 경험들을 들려줄 계획이다. 그 안에서 발달장애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를 함께 다루며 장애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보기로 했다.



“제 소원은 제가 초원이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것이에요.”


2005년에 인기리에 상영된 영화 말아톤에서 나왔던 초원이 엄마의 대사이다. 내 입장부터 밝혀보자면 나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어째서 부모님보다 한창 젊은 내가 세상을 먼저 떠나야 한다는 말인가?


영화 개봉 이후 2014년에는 발달장애인의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도 발의가 되었고, 2018년부터는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쟁 노동시장에서는 근무하기 어려운 나도 세금 납세자로 살 수 있게 한 장애인표준사업장인증제도는 2008년 시행되었다. 2019년에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근로지원 서비스 제도도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 개봉 당시보다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더 이상 이 소원을 빌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부모님들의 소원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발달장애 자녀와 함께 세상을 떠나는 부모의 소식을 종종 뉴스를 통해 접하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을 지켜주는 법이 시행되고 있다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부분을 지원받을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 예로 한 가지만 꼽아보자면 발달장애인법 제10조 의사소통지원에 관한 부분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중요한 정책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하여 배포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법이 발의된 지 10년째인 지금, 필요한 서비스를 신청하러 공공기관에 방문해도 읽기 쉬운 자료가 비치된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학교 다닐 때보다 발달장애인의 지원이 좋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발달장애인 지원을 위한 어떤 법이 발의되면, 내가 그 지원을 받게 되기까지는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기다려야 한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지금이 정말 좋다. 청년인 나와 노년을 앞두고 있는 부모님의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법률과 지원이 시행되어 나도 그 지원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부모님 사후에 내가 머물 곳은 어디일까? 혼자 살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내 발로 시설에 들어가서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16년 전, 장애인 직업전문학교를 다니면서 기숙사 생활을 경험해 본 나는 절대로 시설 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기상 시간도 정해져 있었고, 밥시간을 못 맞추면 매점 빵으로 한 끼를 때워야 했다. 점호도 있었다. 집에서 자유롭게 생활했던 나는, 하루하루 눈물로 졸업식이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동생네 집에 얹혀살면 좋을까? 인터넷을 보면 발달장애인 형제를 둔 비장애인 형제가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가 많다. 발달장애 형제가 있다고 배우자에게 밝히면 파혼까지 가기도 한단다. 그래서 장애형제가 있는 것을 숨기기도 한다고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발달장애 형제를 돌봐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라고 알고 있다. 다행히도 내 올케는 내가 발달장애가 있는 걸 알았음에도 동생과 결혼하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동생네 집에 얹혀살 생각이 없다. ‘이다음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는 너희의 보살핌이 필요해, 나를 책임져 줘’와 같은 말을 하며 동생네 식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부모님 사후에 살 곳을 마련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경우 현재로서는 극도로 가고 싶지 않은 시설에라도 들어가는 방법을 택해 내 살길은 내가 알아서 마련할 테니, 동생들은 앞으로도 내 문제로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영, 유아 시절부터 청년이 된 지금까지 별탈 없이 행복하게 지내왔는데, 말년에 암울한 결말은 원하지 않는다. 갈 곳을 찾지 못해 떠돌이 신세가 된다거나, 감옥과 같은 시설에 들어간다는 결말 말이다. 부모님이 안 계셔도 지금처럼 평범한 삶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 테다. 혼자서도 안 굶고 지낼 방법을 지금부터 찾아보고 연습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나도 혼자 지낼 수 있을까? 내 월급으로 집세를 감당할 수 있는 집이 구해질까?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하고 공과금은 어떻게 내야하고, 돈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냉장고 정리는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며, 계절마다 옷 정리는 어떻게 하는 거지? 위급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이미 자립한 발달장애 당사자들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해보기 전이라서 그런지 나도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많다.


혼자 살아가게 될 날을 대비해 얼마 전부터 발달장애인들이 모여 자립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임에도 참여하는 중이다. 지금까지 모임에 2번 정도 참여하며 장애인자립생활주택과 장애인자립지원주택의 차이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내년에는 집을 알아보는 실습도 해볼 예정이라고 한다. 발달장애인이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한다.


자립하는 법을 연습한다고 해도 혼자서 모든 걸 완벽히 잘해낼 자신이 없다. 자립해서 지내면서 활동지원을 받는다는 발달장애 당사자분들을 뵈었다. 이전에 자립에 관련한 인터뷰에 응해주신 푸르메소셜팜 발달장애인 직원 육서정님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며 자립을 준비하고 계셨다. ‘나도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유는 한가지다.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려면 장애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국민연금공단을 거치지 않고 의사의 진단만으로 장애 등록을 했다. 장애등록심사절차가 변경되기 전인 2001년이었다. 심사 절차가 변경되기 전에 장애 등록을 했다면, 재진단을 받은 후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또한 사회성숙도와 지능지수 둘 중에 하나라도 기준점에서 벗어난다면 장애 심사에서 탈락한다고 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장애 진단을 처음 받은 중학생 때보다 사회성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장애를 가졌어도 주변에서 자기개발을 위한 노력을 해야 많이 한다고 해서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이로 인해 지능지수도 조금은 올랐을 것이다. 노력 여부에 따라서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지능지수이기 때문이다. 재심사를 받게 된다면 점수에 부합하지 못해 지금 받고있는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렵다. 현재 나는 장애인표준사업장에 다니며 근로지원을 받고 있다.


2019년에 장애수당을 받기 위해 동 주민센터에 문의를 해봤는데, 장애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포기한 적이 있다. 당시 4시간 근무에, 100만 원도 채 안 되는 급여를 받고 있어서 장애수당 3만 원이라도 보태보고자 알아보았다. 장애 재심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하니, 수당 3만원을 받자고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당 받기를 포기했다. 부모님께서는 이다음에 장애 재심사를 반드시 받아야 할 일이 생긴다면, 아는 문제도 모른다고 하면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건 나와 의사, 국민연금공단 모두를 속이는 일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부모님 사후에 내가 살 집을 구하는데 성공하더라도,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기 위해 장애 재심사를 받았다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면 나의 불편함을 증명하러 다니느라 바빠질지도 모르겠다.


30년 뒤, 내가 노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발달장애인도 가족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으면 한다. 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24시간 활동지원 제도가 정착되길 바란다. 경증 혹은 경계선에 있는 발달장애인에게는 혼자서 식사가 가능한지, 화장실은 혼자서 갈 수 있는지와 같은 심사기준을 거치지 않고도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집에서 불이 나는 것도 모르고 컴퓨터,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을까 봐 두렵다. 음식이 상한지 모르고 먹을까 봐 두렵다. 아파도 병원에 갈 줄 몰라, 집에서 끙끙 앓고만 있을까 봐 두렵다.



학창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던 동네에 머물며 친구들과 모임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싶다. 부모님 사후에도 지금처럼 평범한 삶을 누리길 바란다.


*글= 김유리 작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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