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장애인은 처음이지?
<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8화
박윤영과 채준우는 장애·비장애 커플이다. 함께 여행하고, 둘이 떠드는 게 여전히 제일 좋다. 둘은 45일간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에세이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2018)>를 펴냈고, 최근에는 장애 인권을 다룬 책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2023)>을 출간했다.
준우
바르셀로나 해변을 바라보며 샹그리아 한 잔
저는 곧잘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바로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여행 리얼리티예요.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이 호스트가 되어 그의 가족이나 친구를 초대하는 콘셉트지요. 일주일 정도 여행하면서 정말 있는 그대로 한국을 즐깁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기도 하고, 문화 차이로 당황하기도 하고 때론 실수도 하면서요.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먹었던 새우 요리는 풍미가 매우 좋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니, 저희의 유럽 여행이 새록새록 합니다. 팁 문화를 잘 알지 못해 민망했던 순간이나 바르셀로나 해변을 바라보며 먹었던 새우의 맛까지 기억날 정돕니다. 집을 떠나야만 살아나는 신선한 감각들의 향연이죠. 그래서 자꾸 관심이 가요. 그들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저 또한 마음이 두근두근하니까요.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것 말고 실제로 한국에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오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한국관광공사 빅데이터 <출처: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공사의 관광 빅데이터를 살펴보니 2010년에 800만 명 정도가 방문했더군요. 그중 51.7%의 사람이 휴가가 목적이었다고 응답했어요. 사업, 친지 방문보다 더 많은 숫자라고 하니 이때부터 순수 관광목적이 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에는 더 늘었습니다. 십 년 전의 두 배가 넘는 1,700만 명이 방문했는데 이때부터는 응답이 구체적입니다. 한국에서 식도락, 쇼핑을 주로 즐겼고 자연경관, 고궁 역사, K-POP 관련 장소 방문이 그 뒤를 이었죠. 10년 사이에 한국을 즐기는 방식이 다양해진 것이 눈에 띕니다. 심지어 방문객의 96%가 타인에게 추천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니 앞으로는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늘어나겠네요.
이것은 K-POP, 드라마, 영화, 예능, 식문화처럼 우리나라만의 문화콘텐츠가 있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성과입니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지요. K-문화가 전부인 양 말하는 것을 보면 민망할 때도 있지만 솔직히 자랑스러울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윤영과 네덜란드에 갔을 때도 그랬어요. 식당 점원이 BTS를 좋아한다며 먼저 다가오더군요.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아는(정확히는 북한이냐고 묻지 않는) 외국인을 만나기는 어려웠으니까요. BTS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되고 사람을 사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영은 일본에 있는 지인에게 DM(인스타그램의 다이렉트 메시지)을 받았습니다.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죠. 그 순간 알아차렸습니다. 몇 년 동안이나 제가 챙겨봤던 그 여행 프로그램에도 장애인 여행객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그래서인지 선뜻 머릿속에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해외에서 온 장애인은 서울을 어떻게 여행하는지 말이죠.
윤영
저는 지금까지 제 여행만 중요한 사람이었어요. 머릿속은 휠체어를 가지고 떠날 궁리로 가득했죠. 정작 내가 사는 대한민국은 외국인에게 어떤 곳인지 모르는 채로요. 여기에 어떤 분기점을 세워 준 것이 바로 N 님이에요. 그는 메시지 한 통으로 저의 관심사를 넓혀줬죠. ‘떠나는 여행’뿐 아니라 ‘들어오는 여행’에도 관심을 두게 된 거예요.
N 님은 오사카에 살고 있는 일본인이에요. 눈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사람이죠. 요즘 우리가 말하는 MZ세대로 한국에 관심이 무척 많아요. 일본에서 잠깐 만난 게 다지만, 연락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그와 나눴던 대화 때문일 거예요.
“저 사실 한국어 배우고 있어요. 전에도 서울을 간 적이 있었는데 지하철이 너무 무서웠거든요! 휠체어 바퀴가 승강장 사이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아... 맙소사, 한국 오면 연락해요. 뭐라도 도울게요.”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왔는데 무서웠다니요! 한국인으로서 참을 수 있나요? 책임감 같은 게 몸을 뜨겁게 달구는 듯하더라고요. 그렇게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준비를 돕게 됐어요. 그리고 보게 됐죠. 그의 시선으로 우리나라 서울의 이런저런 모습들을요.
지하철 승강장 간격이 넓으면 휠체어 바퀴가 빠진다. <출처: 다음 파이낸셜 뉴스>
첫 번째 난관은 역시나 지하철이었어요. 그에게 서울 지하철은 이미 공포의 상징이 되어있었거든요. 복잡한 지하철을 헤매는 정도가 아니라 당장 안전과 직결된 문제니까요. N 님은 수동휠체어에 모터가 달린 전동 겸 수동휠체어를 타고 있어요. 그래서 바퀴가 아주 작죠. 이것이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쉽게 빠지는 원인이었어요.
이럴 때는 역사에 전화를 걸어 휠체어 발판을 요청하면 돼요. 그러나 외국인이라면 쉽지 않죠.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에나 붙어있는(그것도 아주 조그맣게) 안내 번호를 찾아야 하고, 전화를 걸어 설명해 낼 수 있을 만큼 한국어가 능통해야 하거든요. N 님은 여기서 당황했어요. 일본은 곳곳에 역무원이 있어서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시스템이 다르니까요.
우리나라 지하철 무인시스템으로 역무원을 찾기가 어렵다. <출처: 뉴시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스크린도어가 갖춰지고, 발매기가 진화하면서 점차 역무원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네요. 그러나 무인 시스템은 다양한 사람에게 반갑지 않은 제도예요. 한국이 낯선 외국인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 발매기 사용이 어려운 노인,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에게 그렇죠. 사람이 없다는 사실 자체로 불안을 안기거든요. 사람이 정말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지나가도 도움을 청할 사람은 없다는 뜻이에요. 저의 예를 들자면, 지하철 개찰구 근처에서 전동휠체어가 서버린 적이었었는데, 수십 분이 지나도 역무원을 만날 수 없더군요. 이렇듯 무인 시스템은 지하철이 익숙한 사람, 당장에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에게나 대수롭지 않은 것이에요.
그렇게 대안으로 찾은 것은 리프트 택시였어요. 수동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리프트 택시는 몇 군데의 회사에서 운행하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외국인이 이용할 수는 없었어요. 높은 요금은 둘째치고 구글 한국계정이 있어야지만 애플리케이션으로 예약할 수 있었거든요. 결제 역시 한국에서 발급된 신용카드가 필요했고요. 이제 남은 방법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콜택시뿐이었어요.
다행히 서울시의 장애인콜택시는 외국인도 탈 수 있더라고요! 원래는 심한 장애인만 탈 수 있는데 외국인은 휠체어만 사용하면 된대요.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콜센터는 외국어 응대가 불가능했고, 한국 연락처로만 신청을 받았어요. 결국 외국인 혼자서 이용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죠. 그렇게 저는 콜택시와 N 님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맡았어요. 도울 수 있어 기뻤지만, 동시에 조금 암담하더라고요. ‘만약, 한국에 아는 사람이 없는 휠체어 유저라면?’ 그들은 도대체 서울을 어떻게 여행하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장애인콜택시가 모든 해결책이 되어주진 못했어요. 긴 대기시간으로 악명이 높은 터라 외국인도 피해 가지 못했죠. 그날은 비까지 내렸는데 자정이 넘도록 택시가 잡히지 않아 그를 지켜보는 건 사실 고통에 가까웠어요. 카페도 하나, 둘 문을 닫았고 결국 노상으로 나와 기다리던 그가 점점 불안해했거든요. 정말 제 속이 타들어 가더라고요!
잠들지 않는 서울의 밤 <출처: 픽사베이>
하지만 걱정과 달리 그는 꽤 즐거운 여행을 한 모양이에요. 일본에서와는 달리 늦게까지 실컷 놀았대요! 한밤중에 강남에서 삼겹살을 먹은 것이 가장 좋았다는 귀여운 소감을 덧붙이면서 말이에요. 그런 그를 보며 서울에 손꼽을 만한 핫플레이스가 많다는 걸 실감했어요. △△리단 길로 이름 붙여진 멋스럽고 소담한 거리, 성수동의 다양한 팝업스토어, 북촌, 동대문...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요. 하지만 이곳들엔 여전히 너무 많은 턱과 계단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이런 현실을 어느 외국인 친구에게 들킨 적이 있어요. 한국에 놀러 온 그와 지하철도 타고, 동대문도 가고 하루를 함께 했는데,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는 네가 어째서 몸에도 맞지 않는 커다란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지 줄곧 궁금했는데, 이렇게 너랑 걸어보니 알겠다. 한국은 커다란 전동휠체어가 아니면 혼자 돌아다닐 수가 없겠구나!”
한국 방문의 해를 홍보하는 영상물 <출처: 한국관광공사>
정부는 올해(2024년)까지 <한국 방문의 해>로 선포했다고 해요. 27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도 세우고 있고요. 이 노력 속에는 장애 관광객도 포함되어있는지 묻고 싶어요. 제가 듣고 본 대한민국은 장애인도 어서 오라고 환영하고 있지 않거든요. ‘K-POP’, ‘K-DRAMA’, ‘K-FOOD’ 각종 ‘K’ 붙이기에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안심하고 지하철도 타고, 누구나 어려움 없이 한국을 여행할 수 있어야 진정한 세계 속의 관광지이죠. 누구에게나 평등한 여행지가 되었을 때 비로써 ‘K-자긍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K-컬처’를 소비하는 소비자에는 비장애인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글= 박윤영 작가, 채준우 작가
*사진= 작가 외 픽사베이, 뉴시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