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보다 먼 제주

<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6화


 



박윤영과 채준우는 장애·비장애 커플이다. 함께 여행하고, 둘이 떠드는 게 여전히 제일 좋다. 둘은 45일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이를 엮은 여행에세이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2018)>를 펴냈고, 최근에는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2023)>이라는 장애 인권을 다룬 책을 출간했다.



준우


저희는 유럽 여행도 함께 했지만 제주도를 함께 간 적이 없어요. 무려 10년이 넘도록 함께 하는데도요. 윤영이 제주 여행에 영 회의적이었거든요. 그러다 코로나19가 닥쳤고, 여행의 갈증이 타오를 때쯤 처음으로 제주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주도에 대한 윤영의 기억이 어떤지는 몰라도 함께 간다면 다르지 않을까요?


그렇게 여행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윤영은 비행기와 숙소 예약을 맡았고, 저는 일정을 짜고, 운전을 담당하기로 했죠. 그러나 준비하면서 윤영이 어째서 이토록 제주를 멀리했는지 알게 됐습니다.


일단 남들과는 준비 절차부터 달랐습니다. 운전을 할 사람은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리면 되고, 그게 아니면 택시나 버스를 타면 될 일입니다. 어떻게 가느냐는 고민할 거리도 아니죠.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비장애인의 선택지일 뿐이었습니다. 저상버스는 매우 한정된 노선만 있었고, 일반적인 렌터카 업체에서 휠체어 리프트카를 빌린다는 건 불가능했죠.


리프트 차량을 무상으로 대여해주는 기아자동차의 사회 공헌 서비스. <출처= 초록여행 홈페이지>리프트 차량을 무상으로 대여해주는 기아자동차의 사회 공헌 서비스. 출처= 초록여행 홈페이지


그나마 초록여행(리프트 차량을 무상으로 대여해주는 기아자동차의 사회 공헌 서비스)에서 차를 빌릴 수 있었습니다. 한 달 전 치열한 예약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비록 렌탈 기한이 2박 3일로 짧은 편이었지만, 하루 이틀 정도는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해 보기로 하고 준비는 마무리되는 듯했습니다.


떠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항공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주행 비행기 화물칸이 낮은 터라 휠체어가 너무 크면 실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윤영의 휠체어는 그들이 말한 높이에서 딱 1cm 더 높았거든요. 윤영은 비행기 예매를 벌써 두 번째 시도 중이었습니다.


결국 제주로 떠나는 날, 공항에서 휠체어를 분해했습니다. 항공사 직원 앞에서 제가 직접 분해하고 부품을 묶고 비닐로 씌워야 했죠. 그들은 꼼꼼히 지켜봤는데 이 과정이 상당히 굴욕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했으니 태워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기분이었거든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의 여행은 무산될 판이었으니까요.


정말이지 혼자 제주도에 갈 때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어났습니다. 렌터카 일정에 맞춰 비행기를 예약하는 것도 참신한데 문제의 1cm를 맞추기 위해 휠체어를 분해하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해물라면. 여러 역경을 견뎌내자 꿀맛 같은 시간을 맛볼 자격이 생겼다.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해물라면. 여러 역경을 견뎌내자 꿀맛 같은 시간을 맛볼 자격이 생겼다.


이 과정들을 꾹 참고 나니까 저는 윤영과 함께 제주에 있었습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라면을 먹었고, 해안도로를 달리며 추억을 쌓았죠. 하지만 렌터카를 반납하고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때가 되자 우리의 여행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는데 1시간이 넘도록 잡히지 않았거든요.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간신히 탄 택시에서 기사님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여기는 택시를 타려면 제주시에서만 움직이는 게 나아요. 예를 들어 서귀포시에서 출발한다면 잡히지 않을 확률이 굉장히 높죠. 기사가 배차를 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거든요. 결국 손님이 많은 곳에서만 차가 움직인다고 봐야 해요. 손님이 너무 먼 곳에 있으면 돌아올 때 빈 차로 와야 하는데 어느 기사가 그걸 수락하겠어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여행 내내 장애인콜택시에만 의지했다면 어땠을까요? 서귀포시 어느 관광지에서 영문도 모른 채 하염없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을 우리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했습니다.


윤영


준우는 어떤지 몰라도 저는 제주도를 좋아하지 않아요. 아니 좋아할 수가 없어요. 여행을 가도, 일하러 가서도 불편하니까요. 첫 여행에서는 종일 숙소에만 있었고, 일하러 갔을 때는 여유가 있음에도 곧장 돌아왔죠.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모인 것이 저의 첫 제주 여행이었어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채 만났죠. 아무 데도 못 가니까 계획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그저 만나서 얼굴 보는 걸로 감사했어요. 당시엔 저상버스도, 장애인콜택시도 없었거든요. 봉사단이라고 불리는 리프트 차량을 몇 달 전에 구해서 겨우겨우 숙소와 공항을 왕복하는 정도에 그쳤죠.


제주도 장애인콜택시. <출처= 제주특별자치도 공식블로그>제주도 장애인콜택시. 출처= 제주특별자치도 공식블로그


몇 년 뒤에는 일 때문에 두어 번 출장을 갔어요. 그땐 장애인콜택시가 생겨있더군요. 하지만 제겐 똑같았어요. 일이 끝나면 곧장 숙소나 공항으로 향했으니까요. 택시 말고는 다른 수단이 없는데 언제 잡힐지 알 수가 없고, 식당은커녕 도로도 온통 턱이나 계단이라 어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서둘러 돌아가는 편이 나았죠.


‘이번엔 다르지 않을까?’ 기대가 꿈틀댄 것은 분명 준우 덕분이었어요. 그와 함께라면 차를 빌려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요. 이동 걱정 없이 가고 싶은 관광지와 맛집을 신나게 골라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이번에야말로 진짜 제주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에 브레이크가 걸렸어요. 숙소와 식당을 찾고, 비행기를 예약하는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았거든요. 이를테면 바다가 근처에 있거나 특색있는 숙소에는 장애인 객실이 없었어요. 규모가 있는 리조트엔 장애인 객실은 있지만, 전화하는 데마다 어째선지 장기투숙객이 묵고 있었고요. 결국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은 시내에 있는 4성급 호텔 정도였죠.


한국관광공사 열린 관광 모두의 여행. 국내 베리어프리 여행지를 소개하는 사이트.한국관광공사 <열린 관광 모두의 여행>. 국내 베리어프리 여행지를 소개하는 사이트.


한국관광공사에 만든 <열린 관광 모두의 여행>이라는 것이 있어요. 장애인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여행지를 소개하는 자료죠. 우리는 제주에서 이 정보를 따라가 보기로 했어요. 현지 상황을 잘 모르는 데다 헛걸음하고 싶지 않아서요. 그러나 제주에서 맞닥뜨린 광경은 예상과 달랐어요. 식당 엘리베이터는 계단 위에 있었고, 휠체어용 경사로도 따로 없더라고요. 식당 뒤편으로 가파른 언덕이 있었는데 거기를 두고 접근할 수 있는 곳으로 소개된 것 같았어요. 그러나 언덕을 오르내릴 때 휠체어 바퀴가 위태롭게 미끄러졌어요. 애초에 휠체어용 경사로가 아니니 당연했죠. 다음으로 찾아간 카페 역시 접근만 될 뿐 일반 화장실밖에 없었고요. 아무리 흔한 일상이라지만 관광공사에서 이런 곳을 소개해 주다니 애석했죠.


가장 험난했던 역경(?)은 항공권 예매였어요. 100kg이 넘는 전동 휠체어를 수화물로 넘기는 과정은 언제나 복잡해요. 비행기의 크기나 항공사의 규정에 따라 휠체어 운송이 거절당할 수도 있죠. 그래서 티켓을 구입하고 전화로 확인을 받아요. 이미 알고 있고, 몇 번이나 겪었으면서도 그럼에도 이번에는 유독 지난하더라고요.


제주행 비행기. 결국 이번에도 저가 항공은 탈 수 없었다.제주행 비행기. 결국 이번에도 저가 항공은 탈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저가 항공부터 시도했는데 결과가 실망스러웠어요. 비행기 탑승에 필요한 휠체어 정보(휠체어 크기와 무게, 배터리 타입 등)를 넘긴 뒤 답변을 기다렸지만,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지 없는지 끝끝내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무의미한 통화만 이어졌죠. 담당자는 자신에게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길까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뜬금없이 실무직원에게나 필요할 법한 운송 규정을 제게 읊어줬을 때 확실하게 느꼈죠.


“취급 방법은 배터리의 부착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부착된 상태로 수화물로 운송 시에는 단락 방지 시 문제가 될 수 있으며 배터리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견고히 부착해야 하며, 전원을 차단해야 합니다. 탑재할 때는 배터리가 항상 위로 향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리 이용 시에는 위탁 수송이...”


“잠깐만요. 제가 타는 휠체어는 분리가 안 되지만, 비 누출형 배터리라 화물 수송에 문제가 없어요. 필요하다면 문서로 된 자료를 보내드릴게요”


“아... 그렇군요. 그럼, 제가 다시 알아보고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더 높은 금액을 들여 메이저급 항공사를 선택했어요. 그곳도 마찬가지로 배터리 타입을 묻고 휠체어 크기를 따지며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했지만, 적어도 규정집을 들고 와 제게 읽어주는 일은 없었죠.


제주도가 제게만 어려운 건 아닌 듯해요. 2020년 서울인권영화제에 출품된 <파리행 특급 제주도 여행기>에서 이건창 님도 그랬죠. 와상 장애인인 이건창 님은 항공 규정에 맞춰진 몸이 아니라서 6배의 비용을 지불했어요. 항공사에서 그를 환자 취급했기 때문에 10만 원이나 드는 의사 진단서를 끊었고, 이상소견도 없는 ‘완벽한 몸’인데도 다른 탑승자들과 격리되어 움직여야 했죠. 그가 “파리행 특급 제주도”라고 표현한 것은 너무도 적절한 것 같아요. 분명 국내 여행인데 열 시간 넘게 파리로 날아간 만큼 돈과 에너지가 드니까요.


장애인에게 이토록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 것은 ‘장애를 가진 몸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된 휠체어라도 그래도 위험하잖냐며 계속 추궁해요. 다른 형태의 몸을 가지고 있으면 타인에게 유해하지 않다는 점을 증명해 내야 하고요. 이 과정들을 거치다 보면 항공사는 장애인에게 휠체어를 타지 않는 몸으로 탑승할 것을 압박하고, 정상적이지 못한 몸은 규격에 맞추도록 얼마나 강요하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어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입도한 제주도.지난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입도한 제주도.


결국 이번에도 제주도는 유럽만큼 멀고 험난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여행은 행복하지만 감수해야 할 것이 여전히 산더미였죠. 저는 언제쯤 앱에서 최저가 숙소를 검색하고 터치 한 번으로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살 수 있을까요?​


*글, 사진= 박윤영 작가, 채준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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