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장애인 전용공간으로?
<박윤영·채준우의 다르다Go?> 5화
박윤영과 채준우는 장애·비장애 커플이다. 함께 여행하고, 둘이 떠드는 게 여전히 제일 좋다. 둘은 45일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이를 엮은 여행에세이 <너와 함께한 모든 길이 좋았다(2018)>를 펴냈고, 최근에는 <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2023)>이라는 장애 인권을 다룬 책을 출간했다.
윤영
“으아아아악! 준우, 문 좀 열어줘 제발!”
이 사건은 평화로운 오후에 벌어졌어요. 몇 초 전만 해도 파리를 거니는 평범한 여행객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그저 공포에 휩싸인 여행객이죠. 바닥에는 물이 점점 차올랐고, 변기는 접혀 들어가더니 엄청난 물줄기가 튀는 게 아니겠어요? 네, 그 변기가 맞아요. 저는 지금 화장실에 갇혀있어요! 유럽까지 와서 이게 무슨 낭패인지 어이가 없었지만, 점점 더 무서워졌어요. 세차장에 맨몸으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랄까요? 열림 버튼을 연신 눌렀지만 소용없더라고요. 화장실은 금방이라도 저를 집어삼킬 것처럼 거친 물을 토해내고 있었죠. 그야말로 ‘작동’하고 있었던 거예요!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프랑스 공중 화장실
문제의 그 공중화장실은 로켓을 반으로 자른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요. 거기엔 휠체어 픽토그램도 그려져 있더군요. 그래서 반가웠죠. 파리 곳곳에 있으니, 안심도 되고요. 줄곧 눈여겨보다가 실제로 써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어요. 사뭇 긴장되어서 우왕좌왕하다가 문이 자동으로 닫혔고, 그 물난리가 시작된 거죠. 아마 화장실 센서가 사용이 끝났다고 인식하고 물청소를 시작했던 거 같아요. 거기에 제가 갇힌 거고요. 때아닌 워터쇼가 끝나고 문이 열렸을 때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준우와 눈이 마주쳤어요. 그리고 말했죠. “나 너...너무 무서워...”
강렬한 첫인상과 달리, 사실 그곳은 멋진 화장실이었어요. 거리 한가운데 있어서 찾기도 쉽고, 계단도 없고, 잠겨있지도 않았으며 공간이 넓어서 휠체어를 타고도 들어갈 수 있죠. 누군가의 ‘전용’에 그치지 않고 모두를 위한 것이라니! 정말로 멋지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한국에는 화장실을 비롯해 무수한 ‘전용공간’이 있네요. 주차장에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극장이나 공연장에는 장애인 좌석, 지하철과 기차에도 장애인석이 있죠. 도로에는 장애인 콜택시가 달리고, 장애인만 갈 수 있는 미용실과 치과도 있어요. 머지않아 장애인 전용 호텔이 지어질 거란 소식도 어디선가 들려와요.
이런 전용공간은 일단 도움이 돼요. 물리적인 공간이 넓으니까요. 일반 주차구역은 좁아서 휠체어를 내릴 수 없지만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서는 주차한 뒤 휠체어를 꺼낼 수가 있거든요. 화장실도 공간이 넓어야 휠체어로 세면기와 변기까지 갈 수 있고요. 그래서 일반 화장실은 눈앞에 있어도 없는 것과 같아요. 공연장이나 기차와 같은 좌석에는 의자가 없는 덕분에 휠체어에서 옮겨 앉지 않아도 되고요.
KTX 휠체어석에는 의자가 있고 전동 휠체어석에는 의자가 없다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어요. 이를테면 KTX의 휠체어 좌석이 그래요.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우리 커플마저 갈라놓는 곳이죠. 저는 휠체어석에 준우는 저만치 떨어진 일반석에 앉아야 하거든요. 유럽 전역을 달리는 유레일에서도 일본의 신칸센에서도 이런 규정은 본 적 없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장애인석에 장애인만 앉아야 한대요. 이런 규칙은 정작 당사자들을 곤란에 빠트리기도 해요. 언젠가 옆자리에 탄 중증의 장애아동과 보호자를 마주친 적이 있어요. 그들도 역시나 함께 앉지 못했죠. 장애아동은 휠체어 사용자였지만 보호자는 비장애인이었으니까요. 보호자는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위태롭게 선 채로 간식을 챙겼고 몇 번이고 자신의 좌석을 오가며 케어를 이어갔어요.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 함께 앉아가지 못하다니,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요?
입장휴게소(서울 방향)의 장애인 좌석. 출처: 파이낸셜뉴스
생각해 보니 확고하게 구분 지으면 지어질수록 반갑지 않은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언젠가 동료들과 고속도로 휴게소에 간 날이 그랬어요. 식당에 들어갔는데 구석에 유난히 눈에 띄는 테이블이 있더라고요. 의자도 없이 덩그러니 놓인 쨍한 파란색의 테이블. 휠체어 픽토그램이 세상 커다랗게 그려진 장애인석이었어요. 여덟 명은 족히 앉을 만큼 넓은 테이블이 휑하니까 꼭 외로운 섬 같더라고요? 픽토그램은 왜 이렇게 위압적인지 안내라기보다는 반드시 장애인만 앉아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문 같았죠.
“음...어떻게, 이런 데서 저랑 식사하실래요?”
어느새 괜한 너스레를 떨고 말았어요. 동료들 속에서 어색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요.
준우
KTX 탑승 서비스 및 경사로_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 준우와 나는 이곳에선 생이별을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가 서울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은 대부분 기차입니다. 고속버스는 탈 수가 없어서요. (서울·부산 등 4개 노선에 전동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저상버스가 시범 운행되었으나 지금은 모두 운영을 중단함) 기차에 올라서도 편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윤영이 보이지도 않는 먼 좌석에 앉아야 하거든요. 그때마다 저 역시 소외감을 느낍니다. 주변에 저 말고는 모두 함께니까요. 남들은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기도 하고, 소곤소곤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기대어 졸기도 하는데 말이죠. 장애인은 장애인석에 앉아야만 하고, 비장애인은 일반석에만 앉아야 하니 저는 윤영과 여행의 즐거움을 나눌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선 비장애인이 휠체어석에 앉는 것은 철도사업법에 따른 부정 승차입니다. 이것은 다른 장애인 승객을 위해서 휠체어석은 비워둬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죠. 얼핏 보면 맞는 말입니다. 선택지가 적은 휠체어 사용자는 기차를 택하게 될 확률이 높은데 좌석마저 없으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 휠체어석은 KTX를 기준으로 수동휠체어석 3개, 전동휠체어석 2개뿐입니다. 애초에 너무 적은 것이죠. 게다가 고정석입니다. 원하는 칸에 앉을 수도 없으니,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함께 앉을 수도 없어요. 좌석 수를 늘리거나 고객이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만, 고민은 미뤄둔 채 승객에게 책임을 떠맡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윤영은 확고하게 구분 지으면 지어질수록 반갑지 않은 감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새파란 테이블을 바라보면서 깨달았죠. 분리는 참 쉽습니다. 공간만 나눠버리고 각자 알아서 이용하면 되니까 간단하거든요. 그래서 파란색 테이블처럼 점점 더 커다랗고 명확한 표식이 생겨나는 겁니다. 내가 어디에 앉아야 합당할지 한눈에 구분 할 수 있도록요. 윤영이 동료들 속에서 어색함을 느낀 것도 그 때문입니다. 파란색 테이블처럼 손쉽게 분리할 수 있는 존재로 ‘취급’ 받는 느낌. 그러니까 자신은 일반석에는 앉을 수 없는 사람이 된 듯했던 것이죠.
장애인 주차구역은 일반 주차구역보다 넓어서 주차 후 휠체어 등 보장구를 꺼낼 수 있다.
장애인 전용공간은 왜 만들어졌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사회는 애초에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어디를 봐도 비장애인 전용 공간투성이었죠. 1998년에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 그제야 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부랴부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전부 새로 짓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장애인 전용공간 안에 장애인 전용공간을 만들었어요. 원래 있던 것에 하나둘 추가한 셈입니다. 이를테면 지하철과 영화관은 의자를 몇 개 들어낸 뒤 휠체어석으로 하고, 호텔은 일반객실을 개조해 장애인 객실을 두어 개 만드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뭘 선택하거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비장애인 공간에 장애인이 있는 것을 어색하게 만들고, KTX처럼 자리를 선택하지도, 함께 앉아가지도 못하게 하죠.
장애인과 비장애인만 이야기했지만 ‘전용공간’이란 것은 들어오지 못하게 되는 사람을 반드시 만들어 냅니다. 은행이나 공항 라운지에 있는 VIP 공간을 떠올려 보면 쉽죠. 그러나 이런 공간은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습니다. 바로 ‘모두’를 포함하지 못한다는 점이죠.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낙인찍고, 구분하고 분리할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의 공중화장실은 무척 인상적이죠. 성별도, 장애의 유무도 묻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이용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 짓지 않은 덕분입니다. 그래서 윤영도 저도 편하게 화장실을 쓸 수 있었죠. 이제는 누군가의 전용 말고 모두를 위한 공간이 생겨나야 합니다. 선심 쓰듯 공간을 따로 내어주는 그런 뻔한 방법 말고요. 상상력을 발휘한 더 재밌는 공간들이 나와야 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누구나벤치'. 출처: 푸르메재단 DB
푸르메재단의 프로젝트인 “누구나 벤치”가 아주 좋은 사례이죠. 휠체어 사용자와 보행자가 같은 방향을 보고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음료를 둘 수 있는 간이 테이블까지 있다니요! 기존의 틀에 박힌 의자들을 생각하면 무척 반갑고 흥미로운 창작물입니다.
내친김에 상상을 해봅시다. 장애인 콜택시 대신 모든 택시에 휠체어가 탈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호텔 객실이 배리어프리라면? 휠체어를 타도 기차나 공연장에서 원하는 자리를 선택할 수 있고 함께 앉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당장은 어려울지 몰라도 이런 상상이 거듭되면 그것이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아 올 겁니다.
*글, 사진= 박윤영 작가, 채준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