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부부의 쌍둥이 육아-마지막화] 6살 달이와 우리 가족
어쩌다 보니 엄마와 아빠가 일하는 영국에서 태어나 지금껏 이 나라를 떠나본 적 없는 우리 쌍둥이. 이제 제법 머리가 굵어져서 엄마 아빠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고, 왜 영어가 아닌 말을 쓰며, 왜 친구의 부모들과 다르게 생겼는지 아는 나이가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외국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모국이나 마찬가지인 영국.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은 거의 대부분 행복했다. 해와 달이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과연 한국에서 낳고 길렀다면 이 시간들이 이렇게 행복했을까? 물론 한국에서 달이가 좀 더 집중 치료를 받았더라면, 입원해서 물리치료, 작업치료, 수치료 등을 빼곡히 받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낫진 않았을까, 혼자 앉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곱씹으며 후회하기엔 시간이 아깝다. 어차피 비교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영국에 살면서 특히,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는 배려를 참 많이 받았다. 누군가는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라지만 난 이 두 단어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사회 안에서 모든 사람들의 ‘권리’란 서로를 조금씩 배려하며 나눈 약속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배려는 과한 친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동등한 ‘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것.
사람들의 시선이 그 첫 번째다. 달이를 데리고 돌아다니면, 그 누구도 달이를 불쌍하게 보며 이야기하거나 말을 거는 사람들이 없다.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 사람도 없다. 그저 평범하다. 다만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하면 기꺼이 도와준다.
이 사회적 배려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도록, 스스로 선택한 것을 누리도록. 달이가 친구들과 같은 어린이집이나 학교를 다니고 같이 운동회를 하고 소풍을 갈 수 있게, 주말이 되면 엄마 아빠와 함께 도서관도 가고, 마트도 가고, 동물원도 가고, 공연도 볼 수 있게 한다. 영국 사회 전반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시설들이 잘 되어있기도 하지만, 밖에 나왔을 때 마주하는 시선들 역시 평범하기 그지 없다. 그것이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거리에서 많은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장애인에 대한 높은 인식을 부러워한다고 들었다. 그들이라고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렇듯 인권에 대해, 어떻게 하면 모두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온 결과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미디어에서의 자연스러운 노출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BBC 영국 공영방송은 Cbeebies 라는 아이들을 위한 채널이 따로 있는데,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그런 노력들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Something Special 이다. 진행자인 Mr. Tumble이 특별한 아이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지체/지적 장애, 왜소증, 증후군 등 장애가 있거나 난치병으로 투병 중인 아이들과 함께 체험놀이를 하는 프로그램으로 댄스, 노래, 파티, 수영장, 캠핑, 연극, 농장방문, 바다여행 등 주제도 다양하다. 핵심은 아프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나오지만, 어디가 어떻게 왜 아픈지 어디가 불편한지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름만 물어본 후 친구가 되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여준다. Magic Hands 라는 프로그램은 성인 출연자 중 실제로 청각 장애인이 있고, 모두 수화를 쓴다. 듣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프로그램인데, 물론 비장애 아동들도 즐겁게 볼 수 있다. Biggleton 이라는 쇼는 여러 아이들이 조그마한 동네를 이루어서 아기자기하게 사는 모습을 연출한 프로그램이다. 비장애 친구들과 함께 휠체어를 탄 친구, 다운증후군 친구, 팔이 없는 친구, 보청기를 끼고 있는 친구 등 다양한 모습의 아이들이 즐거운 얼굴로 나와서 함께 프로그램을 만든다. 그 외에도 Baby Club, Toddler Club, Justin’s House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끊임없이 노출된다. 이뿐 아니라 세심하게 연출된 인형에서도(팔 한쪽이 짧은 테디베어 등) 이런 노력들을 볼 수 있다. 덧붙이자면, 장애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HeyDugee 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동물 캐릭터 중에 코끼리 아빠와 악어 아들이 나온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입양가족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감탄한 적이 있다.
또 다른 예는 초록색 해바라기 목걸이다. 영국에서 지내다 보면 이 목걸이를 건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모든 장애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초록색 해바라기 목걸이의 슬로건으로 마트나 학교, 공공장소에 흔하게 붙어있는 안내문이다. 이 해바라기 목걸이는 ‘보이지 않는 장애 – 자폐, 청각장애, 발달장애’를 뜻한다. 목걸이를 착용해 주위 사람들에게 장애가 있음을 미리 알리고 뜻하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구하도록 한 것이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만 해도 이 목걸이를 볼 수 없었다. 이 캠페인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끊임없는 노력들은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달이가 크면서 제법 무거워지니 물리적으로 내가 언제까지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요즘이다. 또래보다 작아서 아직 20kg을 넘지 않는데도 달이를 안아 들 때면 헉 소리가 난다. 신랑도 나도 오래오래 건강하자고 다짐하게 된다.
먼 훗날,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햇살처럼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득한 사진첩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행복하고 따뜻한 어린시절을 보낼 권리를 우리는 해와 달이에게 가득 쥐여주고 있을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을 때에도 달이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까마득한 미래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이란 한치 앞을 알 수 없고,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오늘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뿐. 오늘 힘껏 안아주고, 오늘 함께 웃고, 오늘 사랑한다.
그러면 우리와 해와 달이가 함께하는 모든 시간들이 빼곡히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와 신랑이 아이들을 만나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 그동안 부족한 칼럼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나와 자기, 그리고 해와 달 이야기는 인스타그램(@honey_nana_2)에서 계속됩니다.
*글, 그림= 나나 작가 (@honey_nana_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