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부부의 쌍둥이 육아 30화] 여행을 가자, 비행기를 타고! (2)


여행 첫날은 비행기를 타고 벨파스트의 예약 숙소까지 가는 것이 목표였다. 공항에 도착하여 맞은 첫 관문은 렌트카 업체를 찾아가는 것. 신랑이 미리 예약을 하긴 했지만, 산더미 같은 짐과 아이들을 챙겨 공항 옆 렌트카 업체까지 이동하려니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달이의 카시트를 놓고 왔는데도 이 정도라니…


신랑은 렌트카 업체의 직원과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한숨을 쉬며 차와 함께 빌려주는 카시트 두개를 들고 나왔다. 으아… 낡은 것은 둘째치고, 세탁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 말라붙은 과자며 사탕 찌꺼기들이 얼룩덜룩 묻어 있었다. 대안은 없었다. 후우……. 게다가 카시트는 우리가 직접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속에서부터 화가 끓어올랐으나 업체에서 카시트는 빌리는 사람이 꼭 설치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 어쩔수 없다며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건네니 꾹 참았다. 낡아서 벨트 끈도 잘 움직이지 않는 카시트를 낑낑거리며 설치하고 짐들을 차곡차곡 싣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벨파스트도 영국인지라 운전은 쉬웠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아이들과 간단한 점심을 먹고 나니, 그제서야 ‘내일부터 뭐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벨파스트로 여행을 가게 된 것은 사실 신랑의 학회 참석 일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위도상으로 벨파스트가 우리가 사는 곳보다 북쪽이라 휴양지의 따뜻한 날씨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우리가 머물렀던 그 일주일은 유독 날씨가 안 좋았다. 긴소매를 입지 않으면 추울 정도의 온도에 비바람까지 부니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애들을 데리고 바다나 다녀와야겠다는 안일한 계획은 모두 엎어졌고, 급하게 온라인 검색으로 실내 관광명소들을 찾았다.


좋아, 타이타닉 뮤지엄이 유명하군. 그리고 또... 과학 놀이체험관, 공립박물관… 동물원! 하루에 딱 한 군데씩만 다녀오자.



여행 자체는 하루하루 극히 평범했다. 아침에 일어나 느긋하게 조식을 먹고, 신랑을 학회장에 내려주고 나면 우리끼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똑똑한 우리 쌍둥이는 아빠가 없을 때 엄마 말을 더 잘 듣는 편이라 관리가 가능했다. 카시트는 여전히 불만이었으나, 5점식 밸트라 달이가 쓰기에 그럭저럭 괜찮았다.


휠체어를 차 트렁크에 싣고 관광지(예를 들어 타이타닉 뮤지엄)까지 가면, 입구와 가까운 곳에 장애인용 주차장이 줄지어 있었다. 뮤지엄은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경우 무료입장이라 보통 아이 둘의 입장료만 내고 들어갔다. 이 부분은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해주는 정책인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보면 장애인이라고 입장료를 할인해 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다만, 장애인은 활동보조인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무료'가 맞다고 본다.



아무튼, 대부분의 관광시설들이 최근에 지어졌기 때문인지 달이의 휠체어를 밀고 다니기에 조금의 불편함도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방문한 곳 대부분이 성인용 체인징베드와 호이스트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휠체어를 타지만 화장실을 스스로, 혹은 약간의 도움만으로 이용할 수 있는 분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넓은 장애인용 화장실은 (정말 작은 규모의 카페나 소매점 등을 제외하고는) 당연히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앉아서 용변을 볼 수 없어서 기저귀를 사용해야 하는 어린이나 성인 장애인에게는 체인징베드 시설이 꼭 필요하다. 특히 장시간 외출 시에 더욱 그렇다. 우리가 간 곳들은 평균적으로 머무는 시간이 긴 관광시설들이라 그런지 체인징베드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이제 곧 만 6세, 키도 훌쩍 커져버린 달이라 내심 화장실이 걱정이었는데 전혀 문제 없었다.



문제는 아이들의 활동반경과 체력이 너무 다르다는 점이었다. 해는 새로운 곳을 방문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방방 뛰는데, 달이는 좋아하면서도 금세 피곤해했다. 이 둘의 요구사항을 맞춰 주는 게 제일 힘들었다.


그 외에는 조금 이른 저녁이 되면 학회장에서 신랑과 합류해 숙소 근처 맛집을 찾아 저녁을 먹고, 씻고, 오늘도 고생했다 토닥이며 보내는 그저 그런 소박한 가족 여행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벨파스트 동물원이다. 딱 하루 비가 오지 않는 날, 시내 중심에서 좀 떨어진 벨파스트 동물원에 갔는데... 산을 반으로 깎아 만든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경치는 기가 막히게 좋았지만, (동물 복지 레벨이 매우 높았다.) 예상치 못한 등산에 다리와 팔이 후들거렸다. 길이 울퉁불퉁하지는 않으나  경사가 꽤 높아서 달이 휠체어를 밀고 올라가는데 꽤 쌀쌀한 날씨에도 땀이 쏟아졌다. 물론 아이들은 좋아했다. 달이는 바다사자와 펭귄이 수영하는 모습에 까르르 웃었고, 해는 그 넓은 동물원을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며 만나는 모든 동물들과 인사를 했다. 침팬지, 고릴라, 기린, 플라밍고...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다른 의미로 잊지 못할 하루가 되었다.



덧붙이자면, 동물원에는 체인지베드와 호이스트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고 산꼭대기 (동물원 정상)까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태워주는 카트도 제공했다. 그 카트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오르고 내려오며 보는 동물들이 달라 그냥 열심히 등산하는 것을 선택했을 뿐. 헉헉…;;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다함께 그 유명한 자이언트 코즈웨이Giant Causeway (주상절리 해변)에 다녀왔다. 영국은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 라는 곳에서 자연자원과  문화재들을 관리하는데, 자이언트 코즈웨이도 그 중 하나다. 유명 관광지라 사람도 많았지만, 생각보다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방문자센터 건물에도 당연히 체인지베드 시설이 있었고, 해변까지 내려가는 전용버스에 탑승할 때도 휠체어나 유모차를 위한 경사면을 버스 기사님이 매번 챙겨 설치해 주셨다. 덕분에 흙길을 따라 내려가지 않고도 편하게 해변 바로 근처에서 멋진 주상절리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육각기둥의 울퉁불퉁한 돌틈으로 휠체어가 갈 수는 없으니 조금 아쉬웠지만, 정말 유명하다 할만한 절경이었다.



벨파스트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은 순조로웠다. 공항에 좀 더 일찍 도착했고, 스폐셜 어시스턴트 팀의 도움을 받아 지정된 곳에서 기다렸다. 리프팅 트럭을 타고 매우 편안하게 비행기 탑승. 그렇게 우리는 첫번째 비행기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출발 전에 걱정했던 것보다 즐겁게 잘 보내고 온 것 같다.  누구 하나 아픈 곳 없이 다녀온 것이 제일 감사하다.


여행기 끝!


*글, 그림= 나나 작가 (@honey_nana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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