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해 달리는 기부천사

푸르메재단 후원자 이야기_가수 션


 


몇 년 전 아침 6시가 되면 핸드폰이 울렸다. “이사님, 오늘 박찬호 선수와 송은이 씨를 만나는 데 1m당 100원씩 기부하는 10km 기부마라톤을 제안할 계획입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시작하겠지만 앞으로 백 명, 천 명, 만 명으로 확대되면 우리가 꿈꾸는 어린이재활병원을 지을 수 있지 않겠어요?” 밤 11시가 넘으면 또 전화가 왔다. “지금까지 15명을 모았습니다. 내년 봄에는 정식 마라톤대회를 열었으면 합니다.”


장애어린이와 놀아주는 션, 정혜영 부부장애어린이와 놀아주는 션, 정혜영 부부


홍보대사 션 씨였다. 잊을 만하면 전화벨이 울렸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직접 만날 기회가 있어 한마디 했다. “션 씨, 병원건립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션 씨는 잠도 없나요. 이른 새벽이나 한밤중에 전화하는 이유가 있나요?” 션 씨가 급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그 시간이 네 아이가 잠자고 있는 시간이라서요. 여유 있게 통화를 할 수 있습니다”


‘아, 그랬구나!’ 올망졸망한 아이 넷을 키우려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 도움받지 않고 부인 정혜영 씨와 두 사람이 온전히 네 아이를 돌보고 있으니 이해가 됐다. 연예인으로, 또 네 아이의 부모로 살아가기가 쉬운가. 금쪽같은 시간을 쪼게 푸르메재단을 위해 애쓰는 션 씨가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났다. 나에겐 은인이었다.


이른 새벽 션 씨에게 전화를 받은 날이면 푸르메재단에서 따박따박 월급 받고 일하는 내가 과연 션 씨보다 더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반성을 했다.


김구 선생이 쓰신 <백범일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울분을 참지 못한 김구 선생이 황해도 주막집에서 만난 일본 장교를 살해한 뒤 공주 마곡사에 숨어 승려 생활을 했다. 잠잠해지자 고향으로 돌아와 학교를 짓고 민족계몽운동을 시작하지만 이를 탄압하는 일본경찰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다. 일본 순사가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자신을 악독하게 고문하는 것을 보면서 김구 선생은 한탄한다. “일본 제국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일개 순사가 자기조국을 지키겠다고 밤낮 가리지 않고 나를 고문을 하는데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한다는 내가 그보다 더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는지 반성하게 됐다”고 말이다.


배우 박보검과 함께 마라톤 완주하는 모습지난 4월에 개최한 '미라클365 푸르메런'에서 배우 박보검과 함께 뛰고 있는 모습


션 씨를 만난 건 지금은 이화여대 교수가 된 이지선 씨를 통해서였다. 2005년 재단설립 직후 첫 홍보대사로 위촉된 지선 씨는 아쉽게도 그해 연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출국을 서두르고 있는 지선 씨를 만나 엄포를 놓았다. “지선 씨보다 더 열심히 푸르메재단을 위해 일해줄 사람을 찾지 못하면 유학을 가지 못한다”고 말이다. 지선 씨가 부랴부랴 추천한 사람이 션 씨였다. “션 오빠는 푸르메재단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 션 씨를 만났다. 그가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사가 있는 이태원의 작은 카페였다. 약속 시간이 되자 청바지 차림에 야구모자를 눌러 쓴 청년이 들어왔다. 사실 나는 션이 누군지 몰랐다. 우리가족이 외국에 나가 사는 동안 지누(김진우)와 션(노승환)의 힙팝 듀오 <지누션>이 큰 인기를 얻었지만 정작 그가 무슨 곡을 불렀는 지 조차 알지 못했다.


션 씨가 자리에 앉자, 나는 우리 장애어린이의 현실을 설명한 뒤 어린이재활병원을 세우는 데 도와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당연히 수락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결과는 거절이었다. 이미 다른 세 단체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어 버겁다는 이유였다.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까지 맡으면 기존에 단체의 일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물러설 수 없었다. 헤어지는 션 씨에게 한가지를 제안했다. 다른 곳의 홍보대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그때는 꼭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가 되어달라고 말이다. 그는 흔쾌히 약속했다.


2012년 서경덕 교수와 토크콘서트2012년 서경덕 교수와 토크콘서트


그로부터 넉 달 뒤, 잊고 있었는데 션 씨에게 전화가 왔다. 한 단체의 홍보대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면서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겠다는 것이었다. 첫 만남에서 올곧은 거절 이유를 들으며 ‘이 사람이라면 열심히 일할 수 있겠구나.’ 기대했던 터였다.


그런데 하나 조건이 있다고 했다. 단순히 기념사진만 찍는 홍보대사가 아니라 자신이 캠페인을 만들면 푸르메재단이 물심양면 도와주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란 말을 이때 쓸 것 같다.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션 씨가 말했다. “어린이재활병원을 짓는데 400억 원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하루에 1만원씩, 1년 동안 365만원을 기부하는 사람이 1만 명 모이면 병원을 세울 수 있지 않습니까?” 나는 마음속으로 ‘기부를 받는 일이 그렇게 쉬운가, 모금이 그렇게 쉽다면 세상에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하고 생각했다.


1억 원 수표 기부하는 션, 정혜영 부부1억 원 수표 기부하는 션, 정혜영 부부


그런데 이튿날 새벽부터 션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앞서 설명한 기부마라톤과 하루 1만원씩 365일 기부하는 ‘만원의 기적’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만원의 기적’ 캠페인은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회원이 600명으로 늘어났다. 1만원이 부담스러운 분들에게 매일 1000원씩, 1년 동안 36만원 기부하는 ‘천원의 기적’ 캠페인이 생겼고 2350명이 동참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모두 그의 선한 영향력 덕분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이른 아침 션 씨가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은행에서 갓 발생한 따끈따근한 1억원 짜리 수표가 들려 있었다. “지난해부터 마라톤뿐 아니라 철인3종경기에도 출전했습니다. 이를 위해 매일 아침 30㎞씩 연습했어요. 마음속으로 1㎞를 달릴 때마다 1만원씩 기부하기로 결심했는데 1만㎞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약속대로 1억원을 기부하러 왔습니다.” 이건 뭐지, 철인의 모습을 한 성자일까.


병원 건립후에도 션 씨는 국내 마라톤이란 마라톤은 모두 참가했다. 처음 10㎞를 달린 뒤 자신이 생기자 하브와 풀코스에 도전했고 이어 철인3종경기에 나갔다. 아이들이 자는 새벽이나 한밤중에 달렸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에 어린이재활병원의 취지를 알리고 기부를 호소했다. 그러자 매번 1000명의 기부자가 모였다.


부인 정혜영 씨는 마라톤 전날이면 후원자 1000명의 이름을 남편의 유니폼에 새겼다. 션 씨는 늘 1000명의 기부자를 업고 마라톤을 했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동안 발톱도 3개나 빠졌다. 부인 정혜영 씨는 남편에게 자식들을 생각해 정신 차리고 그만 달리라고 야단치는 대신 “당신 뒤에 장애어린이 30만명이 있으니 더 열심히 달리라”고 채찍질했다. 그녀도 잡지 모델료를 모두 재단에 기부했다.


정혜영 씨가 유니폼에 직접 쓴 후원자 이름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큰 뜻을 같이한 부부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션 씨와 정혜영 부부를 통해 실감했다. 훌륭한 사람의 뒤에는 반드시 더 훌륭한 부인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션 씨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하려 해도 부인 정혜영 씨가 동의하고 격려해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 부부가 모금한 기금이 총 37억원에 이른다.


몇 년 전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유명 연예인을 홍보대사로 위촉한 뒤 이들 활동비로 몇억 원을  지원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기획재정부에서는 홍보대사로 위촉한 가수에게 2년간 5억7000만원을 지출했다. 입이 딱 벌어진다. 국민 세금으로 연예인들에게 불법적인 ‘모델료’를 지급했다는 비난을 받을만하다. 홍보대사와 모델은 개념부터 다르지 않은가. 받은 사람도 문제지만 정부기관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판공비처럼 지불했다니 기가 막힌다. 우리 같은 비영리재단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지선 홍보대사와 토크 콘서트를 열고 모금에 나선 가수 션 이지선 홍보대사와 토크 콘서트를 열고 모금에 나선 션 홍보대사


우리 재단에는 션 씨와 이지선 교수, 산악인 엄홍길 대장을 비롯해 최근 위촉한 축구 김민재와 야구 이정후 선수 등 여덟 명의 홍보대사가 있다. 이들은 재단 행사 때 차비는 커녕 자기 시간과 열정, 그리고 기금을 아낌없이 내놓는 분들이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해마다 장애어린이 가족을 이끌고 국내외여행을 떠난다. 발달장애어린이와 백두산여행을 갔을 때 두 어린이가 계단오르기 힘들다고 하자 한 꼬마를 목마 태우고 다른 친구는 등에 업고 백두산에 올랐다. 산정상에 오르자 눈물바다가 됐다. 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는 재단 홍보에 앞장서고 이지선 교수는 모든 강연을 통해 재단을 알린다.


온 정성을 다해 활동하는 홍보대사가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장애어린이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는 션 씨를 포함한 모든 홍보대사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글=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사진= 푸르메재단 DB


 


션 홍보대사와 함께하는 '만원의 기적'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