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4색 취향이 담긴 방

푸르메소셜팜에서 일하며 자립의 꿈 이룬 발달장애 청년들


 


지난해 3월 푸르메소셜팜 직원 중 처음 자립한 김광채(23)․이효진(30) 씨. 그리고 올해 1월 이수연(30)·이샛별(21) 씨가 뒤이어 자립의 꿈을 이뤘습니다. 네 명 모두 경기도 여주의 발달장애인 시설에 머물던 직원입니다. 푸르메소셜팜과 여주시,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그리고 이들이 살던 장애인 시설이 ‘자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협력한 덕분이지요. 안정적인 직장을 기반으로 이들은 한 걸음씩 꿈을 이뤄가는 중입니다.


자립 1년, 광채 씨와 효진 씨의 집


경기도 여주에 자리한 어느 대단지 아파트의 고층에 광채 씨와 효진 씨가 함께 사는 집이 있습니다. 현관 너머 주방과 거실에는 1년 전 처음 자립할 때와 같은 가구와 가전들이 먼지 하나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특별히 더 늘어난 가구도 소품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있는 각 방은 서로 다른 분위기입니다.


소중히 모은 수집품들을 보여주는 김광채 씨소중히 모은 수집품들을 보여주는 김광채 씨


살림의 고수, 광채 씨


광채 씨의 방은 침대와 4단 서랍장이 유일한 가구입니다. 단출하지만 서랍 칸칸이 광채 씨의 취향이 담겼습니다. 광채 씨는 소중히 여기는 인형부터 월급을 받을 때마다 1~2개씩 모아온 팽이들, 스티커 색칠북을 차례로 꺼내 보여줍니다.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완벽한 정리상태입니다. 꺼낸 물건들을 각 잡아 다시 넣는 모습이 신중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활동보조사가 이 정도로 뭘 놀라느냐는 말투로 “빨래 개는 솜씨는 내가 배워야 할 정도”라고 넌지시 일러줍니다. 마침 건조된 빨래도 있겠다, 시연을 부탁하자 광채 씨가 능숙한 솜씨로 건조대에서 빨래를 걷어 거실 한가운데 자리를 잡습니다. 옷의 종류대로 자세를 달리하며 섬세한 손놀림으로 반듯하게 개어 종류별로 쌓아놓는 솜씨에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광채 씨가 보내온 음식 사진들광채 씨가 보내온 음식 사진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시피를 찾아 만든 요리라면서 사진을 보여주는데 군침이 절로 넘어가는 비주얼입니다. “효진 형이랑 장을 보러 가요. 돈은 반반씩 내요.” 퇴근 후 함께 집으로 이동하던 길에 나눈 대화 중 궁금증을 남겼던 대답이 이제야 온전히 이해됩니다.


Q: 자립해서 가장 좋은 점은 뭐예요?
광채: 빨래하고 청소하는 거요. 먹고 싶은 것을 직접 장 봐서 해먹을 수 있는 것도 좋아요.


Q: 귀찮은 게 아니라요? 그런 게 왜 좋아요? 
광채: 잘하니까요. 


1년의 자립 생활 동안 광채 씨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고 그만큼 자신감도 채웠습니다. 광채 씨 스스로도 놀랍고 행복한 변화입니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효진 씨매일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는 효진 씨


취미 부자, 효진 씨의 방


효진 씨는 취미 수집가입니다. 한쪽 벽을 차지한 빔 프로젝트와 사운드바, 침대 옆 협탁 위 노트북, 맞은편 벽에는 꽤 묵직해 보이는 카메라와 운동기구들이 놓여 있습니다. 집에 있을 때 심장이 울리는 리드미컬한 뮤직비디오를 늘 틀어놓는 효진 씨. 취미 삼아 배운 드럼 연주로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장애인 사진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사진 찍는 것도 즐기고, 운동 애호가이기도 합니다. 턱걸이 훈련을 위해 방문틀에 그네 봉도 설치해 놓았죠. 모두 직접 번 돈으로 산 것입니다.


취미가 많은 효진 씨 방에는 빔 프로젝트와 스피커, 카메라, 운동기구 등이 놓였다. 취미가 많은 효진 씨 방에는 빔 프로젝트와 스피커, 카메라, 운동기구 등이 놓였다.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한다고 주장합니다. 누구 말이 사실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렇게 완벽한 정리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한 사람만의 노력은 아니었을 겁니다. 감탄과 반성을 수십 번(아니 수백 번)쯤 하면서 자립 초보, 이수연·이샛별 씨가 사는 집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2개월 자립 초보, 수연 씨와 샛별 씨의 집


자립한 지 2개월 된 샛별 씨와 수연 씨의 집은 여주 시내의 경찰서 인근입니다. 마음이 참 든든할 것 같죠?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아파트여서 내외부 모두 깔끔합니다. 부엌과 거실, 방 3개로 이뤄진 공간. 공용공간에는 불필요한 가구 없이 깔끔하지만 각자 쓰는 방만큼은 개성이 분명합니다.


추억을 담은 사진으로 가득한 수연 씨의 방추억을 담은 사진으로 가득한 수연 씨의 방


추억 수집가, 수연 씨의 방


사진이 많은 수연 씨의 방에는 삶의 행복한 순간들이 녹아 있습니다. 선반 위와 벽, 침대 협탁과 문 뒤에도 수연 씨의 지난 순간들이 엿보입니다. 사진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언제 누구와 찍었는지, 그때 감정이 어땠는지 이야기하는 수연 씨. 최근 사진들은 푸르메소셜팜에서 찍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온실에서 토마토 곁순도 자르고, 수확도 하는데 모든 일이 다 재밌어요. 이건 넥슨 마비노기 직원과 저예요. 작년에 저희를 도우러 왔던 직원과 친구가 돼서 며칠 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소녀 감성을 담아 아기자기하게 꾸민 샛별 씨의 방소녀 감성을 담아 아기자기하게 꾸민 샛별 씨의 방


소녀의 시대, 샛별 씨의 방


샛별 씨 방에는 붙박이장과 화장대 등 수납공간이 많습니다. 정리정돈이 잘 된 수납장을 거침없이 열며 설명하는 샛별 씨. 그 안은 분홍 계열의 옷과 소품들, 캐릭터 조명 등에서 샛별 씨의 아기자기한 취향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 ‘지출영수증’이라는 제목이 붙은 노트 하나가 눈에 띕니다. “쇼핑 영수증을 날짜별로 모아놓은 거예요. 과자랑 라면, 예쁜 액세서리를 많이 사요.”


지난 1월 독립한 2개월차 자취 초보, 이수연(왼쪽)·이샛별 씨지난 1월 독립한 2개월차 자취 초보, 이수연(왼쪽)·이샛별 씨


평화로운 공동생활을 위해 두 사람은 집안일을 정확히 반씩 나눴습니다. 각각 아침 식사와 저녁 청소, 저녁 식사 준비와 아침 청소를 담당하고, 빨래는 교대로 합니다. 가끔 샛별 씨가 빨래 당번을 까먹는다고 핀잔하는 수연 씨. 그래도 별말 없이 그 공백을 메우는 것 역시 수연 씨의 역할입니다.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자립이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늘려가는 자유”


“요리를 잘할 수 있게 돼서 좋다”는 광채 씨, “가스레인지 작동 방법, 쇼핑 방법, 카레나 떡볶이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됐다”는 샛별 씨, “허락을 받지 못해 포기했던 미용 기술을 배우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것”이라는 수연 씨의 바람까지,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자립이란 ‘내 것’을 하나씩 늘려가는 자유입니다. 내 물건, 내 취미, 내 지식, 내 실력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이죠.


효진, 광채 씨의 체험홈 창밖으로 보이는 전경효진, 광채 씨의 체험홈 창밖으로 보이는 전경


현재 직원들이 사는 이곳은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체험홈입니다. 일상의 기술을 배우고 적용하면서 진정한 자립을 위한 훈련을 해보는 것입니다. 2년을 잘 보내고 나면 시에서 자립비용 1500만 원을 지원합니다. 그럼 이걸로 집을 얻어 1년을 보내면 자립해도 괜찮다고 인정을 받게 되고 그때부터 온전히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있게 됩니다.


지난해부터 여주에서 자립을 시작한 장애인은 총 4명, 모두 푸르메소셜팜의 발달장애 직원들입니다. 조정오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자립을 위해 취업이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유리한 점은 훨씬 많아요.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고 사회성도 키우고 성취감도 가질 수 있죠. 규칙적인 일상을 만들어가는 데에도 당연히 도움이 됩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일단 자립하면 시설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 장애인은 없다는 조정오 소장의 말에 푸르메소셜팜 직원들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푸르메소셜팜 4명의 자립청년푸르메소셜팜 4명의 자립청년


Q: 시설로 다시 돌아가면 어떨 것 같아요?
샛별: 싫어요. 
광채: 기분이 나쁠 것 같아요. 
수연: 자립 준비하던 중, 취소될 뻔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너무 충격이었어요. 절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 모든 게 다 행복해요.


자유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하늘이 내린 권리라 하여 ‘천부적 권리’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자유는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하고, 무엇보다 앞서는 권리입니다. 장애가 있는 것이, 부모가 없는 것이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할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자립을 통해 자유를 얻은 푸르메소셜팜 직원들의 뺄 것 없는 행복이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푸르메재단이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경제적 자립이 내 집, 내 취미, 내 실력… 자기 힘으로 원하는 것을 할 자유를 늘려가는 기쁨을 줄 테니까요. 푸르메소셜팜 발달장애 직원들의 자유를 향한 여정은 이제 시작입니다.


*글, 사진= 지화정 대리 (커뮤니케이션팀)
*영상= 김홍선 대리 (나눔마케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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