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다르고, 또 같아요
웹툰 <소녀의 세계> 모랑지 작가 기부자 인터뷰
연재 9년간 네이버 월요웹툰 인기 상위권 자리를 지켜온 <소녀의 세계>의 작가 모랑지.
2018년부터 정기기부를 하며 추가로 매년 500만 원씩 툭툭 보내던 최유경이라는 기부자가 기부를 중단한 날, ‘스튜디오 모랑지’라는 이름으로 거액의 정기기부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뜻밖에도 이미 잘 알고 있던 웹툰작가입니다. 미디어 노출이 없던 터라 조심스레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푸르메재단과 함께하는 건 뜻깊을 것 같다’고 흔쾌히 허락해줍니다.
고마운 마음을 안고 찾아간 곳은 용인에 위치한 작업실...이라기엔 부엌과 거실, 방 하나를 갖추고 있어서 집처럼 아늑합니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그의 작품과 꼭 닮았습니다. “소호 사무실에서 이곳으로 옮긴 지 얼마 안 됐어요. 주로 작업을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공간이기도 해요.”
웹툰작가의 세계
<소녀의 세계>는 자존감 낮은 평범한 학생 나리가 완벽한 외모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겪는 다양한 감정과 관계에 대한 갈등을 통해 결국 자존감을 찾고 아름답게 성장해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온갖 자극이 일상화된 치열한 웹툰시장에서 ‘여자들의 우정’이라는 건전한 일상을 소재로 실패 없이 롱런할 수 있었던 모랑지 작가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미술학원 강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2~3년간 웹툰을 준비했어요. 시장조사를 하고 주제를 정해 스토리를 완결까지 다 짜놓고 웹툰시장 문을 두드렸죠. 당시에는 여자들만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감정선이 섬세하고 깊은 여자들의 우정을 다루면 흥미와 공감을 줄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 주효했어요.”
웹툰작가는 최근 학생들이 가장 되고 싶은 인기직업 중 하나입니다. 많은 장애어린이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머릿속은 늘 공상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모랑지 작가에게 웹툰작가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자질을 물어봤습니다.
“작가들 각자가 걸어온 길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이 스토리텔링이에요. 그림이 아무리 뛰어나도 재미가 없다면 외면받을 수밖에 없죠. 저는 그 능력을 독서로 키웠어요. 특히 권장도서는 다 읽으려고 노력했어요. 다른 사람들의 창작물을 많이 읽어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풍성해진다고 생각해요.”
조명 밖의 세계
다큐멘터리를 즐겨본다는 모랑지 작가는 조명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만화를 그리나 봐요. 푸르메재단에 기부를 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어요.”
온라인 광고를 통해 우리나라에 어린이 재활병원이 거의 없다는 것, 그 심각성이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고 기부를 결심했다는 작가. “그 후 웹툰 <열무와 알타리>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장애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면서 기부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기부를 시작하고 나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관심이 생겼다고 말하며 되레 묻습니다. “제가 기부를 시작했던 때보다 장애어린이들의 재활치료 여건이 조금 더 좋아졌나요?”
오랫동안 기부를 해온 그 마음을 알기에 ‘그렇다’고 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재활난민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 장애가족들을 생각하니 쉽사리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니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이 없어지지 않도록 오랫동안 잘 유지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나눔의 세계
모랑지 작가는 <소녀의 세계>를 연재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엄마가 일을 그만뒀을 때를 꼽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엄마가 온갖 일을 하느라 고생하셨는데, 드디어 쉬실 수 있게 됐어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시대를 잘 타고나서, 많은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는데 나만 행복을 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이 사회의 안팎에서 많은 장애인들과 마주치고 싶다고 얘기합니다. 익숙한 존재가 되면 언제, 어디서나 불편한 시선 없이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지 않겠냐고요.
“각자가 그 자체로 인정받는 세상을 모두가 꿈꾸고 있을 거예요. 장애 역시 키와 체형이 다르고, 눈코입의 모양이 다르듯 '그저 그런 다름’과 '가벼운 고민’으로 치부되길 바라요. 장애에 가려졌던 그들 각자의 특별함이 빛을 발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요?”
만약 같은 반에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다면 웹툰의 주인공인 ‘나리’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함께 다니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했을 것 같아요.”
‘절대적인 우정’을 거름으로 나리와 친구들을 아름답게 키워낸 모랑지 작가는 진심을 가득 담은 나눔이 장애어린이와 장애청년들의 춥고 좁은 방안을 빛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가 그리고 있는 세상처럼 어둠을 몰아낼 작은 불빛들이 가득 모여 기적을 만드는 그날을 바라봅니다.
*글= 지화정 대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지화정 대리, 웹툰 <소녀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