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부부의 쌍둥이 육아 12화] 약: 안전을 위해 융통성을 포기하다
전에도 잠시 언급한 적이 있지만 해는 신생아중환자실을 졸업하면서 9종류의 약을 받아왔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약인 부신피질호르몬 (하이드로코티솔)은 하루에 4번씩 시간 맞춰 먹여야 했다. 달콤한 향이 나는 이 약은 (실제로 맛도 달콤해서) 먹이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해는 자면서도 꼴깍 꼴깍 잘 받아먹었다.
하지만 해가 어린이집을 종일반으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정이 복잡해졌다. 시간상 한 번은 어린이집에서 약을 먹어야 하는데,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약을 관리하는 지침은 정말이지 지독하게도 융통성이 없었다.
보통 약병을 들고 가면, 다음과 같은 확인 절차가 있었다. 우선 약병에 아이의 이름이 적힌 라벨이 있어야 했고, 이 라벨은 꼭 약사가 붙여주어야 했다. 라벨 확인이 끝나면 서류(Medical consent form)를 작성했다. 서류 양식은 기간에 따라 조금 달랐으나 약의 보관 방법, 약의 유통기한, 부작용 여부, 복용량, 복용시간을 부모가 직접 적고 서명해야 한다.
좋아. 안전을 위해서 확인 또 확인하는 게 최고지.
하지만… 융통성을 발휘할 때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첫 번째는 약병이 아니라 약병상자에 라벨이 붙어있어 퇴짜. 두번째는 복용량이 중간에 바뀌었는데 (의사 진료 후 바뀐 용량) 라벨에 적힌 대로만 줄 수 있다며 퇴짜. 세번째는 항생제의 경우 집에서 미리 먹어보고 부작용이 있는지 없는지 24시간 관찰해야 하기 때문에 어린이집 문 앞에서 퇴짜.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작은 문제인데, 이를 원칙대로 처리하기 위해서 엄마인 내가 약국에 동네병원에 전화하고 뛰어다닌 시간이 상당했다. 약국, 어린이집, 동네 병원이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약국에서 약병에 라벨을 다시 붙여오는 것도 최소 30분 이상이 걸렸다. (약국에 사람이라도 많은 날에는… 으….)
그래도 이건 약과다. 복용량이 중간에 바뀐 경우에는 시내의 어린이 병원에서 받은 진료기록을 동네병원에서 다시 확인 하고 약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제출, 아예 약병을 새로 받아야만 했다. 이건 최소 3일이다. 이 3일 동안 해는 어린이집을 가지 못하거나, 내가 시간 맞춰 어린이집을 방문해 직접 약을 주어야 했다.
가장 답답했을 때는 전에 복용한 적이 있는 항생제인데도, 처방을 새로 받았기 때문에 집에서 24시간 관찰을 해야만 한다고 했을 때였다. 해의 만성편도염 문제로 의사가 적은 용량의 항생제를 조금 오래 복용해보자고 해서 처방 받은 것이었고, 심지어 해의 상태는 어린이집에서 콧물을 흘리고 있는 친구보다도 멀쩡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하기엔 다 알면서도 굳이 ‘원칙상 안 된다’ 라고 할 때면, 책임소재를 면하려고 만들어 놓은 원칙인 것만 같아서 내적 고함을 내지른다.
끄아아아아아아~~~~
이제는 조금 익숙해져서 처음부터 철저하게 약병을 준비하는 편이다. 그리고 뭔가 안 맞다 싶으면 그냥 ‘안되려니..’ 한다. 스스로 스트레스 레벨을 줄이고 있다. 어쨌든 아이들 안전이 일 순위니까.
*글, 그림= 나나 작가 (@honey_nana_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