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부부의 쌍둥이 육아 10화] 응급실 여행기, 매운 맛


해와 달이가 모세기관지염과 폐렴, 장염을 오가며 번갈아 응급실을 왔다 갔다 한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해의 호흡수가 늦은 오후부터 심상치 않았다. 결국 저녁이 되어서는 호흡수가 1분에 60회가 넘어갔다. 물도 삼키지 못하고 헉헉거리던 해의 안색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열이 나거나 아플 때 더욱 중요해지는 부신피질호르몬 경구약을 넘길 수 없을 정도라 NICU 퇴원 시 교육받은 대로 호르몬 주사제를 준비하고, 구급차를 불렀다.


‘침착해..침착..’
‘허벅지에서 3등분하고 중간 근육에 한 번에..’


주사를 놓고 나니 곧 구급대원들이 왔고, 상태를 확인한 후 바로 산소마스크를 씌워주었다. 그대로 침대에 실려 응급실로 직행했는데 그곳은 평소 가던 진료실이 아닌, 응급실 한 켠의 응급 처치실이었다. 그곳에 5~6명의 담당의사와 간호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제야 ‘정말 급한 상황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산소마스크와 호르몬 주사제 조기 처치와 항생제 투어, 네뷸라이져 처치로 해는 금방 괜찮아졌다. 모여있던 의료진들이 하나 둘 흩어졌다. 응급 상황종료.


“잘했어요. 침착하게 주사제도 놓고 구급차도 부르시고. 지금 항생제 들어갔으니, 하루 이틀 정도만 시켜봅시다. 입원실 준비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아.. 오늘 롤러코스터는 좀 높았다. ㅜㅜ)


해와 달이는 빼먹지 않고 수두도 앓았다. 영국에서는 수두 예방접종이 무료가 아닌데, 보통 경미한 증상으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겨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해와 달이는 남달랐다. 해는 심지어 입원까지 하게 됐다. 열이 40도를 넘어가는 데다 눈꺼풀 근처에 수포가 생겨 2차 감염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열은 40도를 넘어가는데 수두를 앓는 경우 이부브로펜 계열의 해열제는 복용을 금지하고 있어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 계열의 해열제만 주는데, 열을 조절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 날 해와 함께 응급실 독방에서 긴 밤을 보냈다. 해는 기저귀만 한 채로도 열이 펄펄 끓어 한겨울에 창문을 다 열고 거기에 선풍기까지 틀어놓았고, 나는 두꺼운 코트를 뒤집어 쓰고 덜덜 떨면서 해를 안고 있었다. 당연히 잠은 잘 수 없었고 해는 울다가 기절하듯 자다가 일어나 울고 악쓰기를 반복했다.



매운맛 응급실 여행이었던 해의 수두를 끝으로 다행히 아이들의 응급실행은 급격히 줄었다. 여전히 크고 작은 감기를 달고 살았지만 응급실을 안 가는 게 어디냐 싶었다. 하지만 진짜 매운맛은 따로 있었다.


날씨가 은근히 추워지던 가을 어느 날, 달이에게 첫 경련이 왔다. 45분이 넘는 대경련이었다. 근래 아픈 일도 별로 없었고 어린이집에도 잘 적응하고 있던 터라 긴장이 많이 풀려있던 시기였다. 어린이집에서 ‘달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토를 하는데 좀 이상하다.’는 전화를 받고 그냥 뭘 좀 잘못 먹었겠거니 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달려갔을 때 달이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몸을 떠는 그런 게 아니라 눈이 돌아가 있고, 심한 구토를 하고, 팔다리가 심하게 축 쳐져 있고, 호흡이 약해지면서 입술이 파래져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그 많은 일들을 겪었는데도 눈앞이 캄캄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999를 부르고 신랑에게도 연락을 해주었다. 5분만에 구급차가 와서 산소공급부터 하고 병원 응급실에 전화해서 상태를 이야기한 후 경련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맥 주사로 약을 바로 주입했다. 그리고 바로 병원 응급실로 향했는데, 사이렌을 켜고 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다른 때보다 구급차가 더 속도를 내는 느낌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구급대원들이 이동식 침대에 달이를 싣고 뛰다시피 가고, 나도 옆에서 같이 뛰었다. 응급실에는 20명 정도의 의사와 간호사, 인턴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2차 경련을 하는 달이를 보며 응급실 담당의사로 보이는 분이 다급하게 외쳤다.
“CT, X-ray, MRI 제일 빨리 되는 것부터 다 잡아. 뇌신경외과 의사 빨리 내려오라고 해. 항경련제 준비해, 산소 올려… 염증일수도 있으니 항생제…”



 ‘침착하자. 정신차리자.’ 속으로 되뇌며 달이의 옆을 지켰다.
다행히 항경련제가 들어서 달이는 10시간을 내리 잤다. 그리고 밤 10시에 눈을 반짝 떴을 때 그렇게 고맙더니, 밤새도록 엄청난 짜증과 함께 울고 소리 지르고… 그 밤도 참 길었다. 이 때가 가장 오래 입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련의 이유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염증도 아니고, 뇌압이 높아진 것도 아니고, EEG도 찍고, 경련 후 산소포화도 떨어져서 뇌 손상이 더 심해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경련의 이유가 기존의 뇌 손상 때문이라는 결론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진짜 매운 맛까지 경험하고 나서야 ‘응급실은 익숙해질 리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휴… 응급실은 이제 그만 가자.


영국에서는 무상 의료라는 이름으로 누구나 구급차를 쉽게 부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정말 위급한 상황이이라면 번개처럼 달려오지만 그렇지 않다면 구급차가 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한다. 특히 아이들이 아플 때 그 우선순위가 높은 편이다. 그에 반해 성인이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친 경우, 예를 들어 심하지는 않지만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일 때, 구급차가 오는 데에 2시간 이상 걸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차가운 바닥에 꼼짝도 못하고 2시간을 기다렸다고… 어디에나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글= 나나 작가 (@honey_nana_2)
*그림= 나나 작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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