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리세요!” - 어린 왕자의 충고

도법 스님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지난 가을 생명평화 탁발 순례 길에서 경험한 일이다. 하루일정을 마무리하고 혼자 어둠에 잠긴 마을길을 걸었다. 초저녁 밤하늘에는 눈썹 같은 초생달이 예쁜 자태를 뽐내며 미소짓고 있었다. 쏟아져 내릴 듯한 은하의 물결이 구슬 구르는 소리를 내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산골짜기를 따라 나들이 나온 소슬바람이 한낮의 더위에 지친 순례객의 심신을 어루만져주고 지나갔다. 삶의 기쁨을 구가하는 노래인지, 조락의 가을을 슬퍼하는 울음인지 수천 수만의 풀벌레 소리들이 애잔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가슴 저리는 풀벌레 소리에 도취된 나그네는 아스라한 감상에 빠져들었다.


가을 밤하늘처럼 깊은 상념에 젖은 채 마을 어귀를 돌아 나오다 수문장으로 의젓하게 서있는 가로등을 만났다.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는 찾아온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불빛을 사랑하는 불나비들의 날개 짓은 쉴 사이 없이 파닥거렸다. 불빛과의 사랑을 위한 나비들의 몸짓은 필사적이었다. 사랑은 슬픔인가, 고통인가, 비극인가. 반가운 마음으로 불빛과 손잡은 나비는 한쪽 날개를 잃고 천길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뜨거운 열정으로 불빛과 입맞춤한 나비는 손발이 잘려나가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넘치는 기쁨으로 불빛과 포옹한 나비는 현란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뒹굴고 있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친구들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빛 사랑을 위한 나비들의 날개 짓은 격렬했다. 찢기고 잘려나가는 동료들의 비참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나비들의 불빛 사랑의 몸짓은 지칠 줄 몰랐다. 상처와 죽음으로 끝나는 나비들의 불빛 사랑은 나그네에게 충격으로 와 닿았다. 사랑의 아픔이라고 하기엔 너무 처참했고, 사랑의 결과치고는 너무 비극적이었다. 도대체 불나비 사랑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나비들은 무엇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불빛 사랑을 하는 것일까?


▲ 생명평화순례 장면 (강진)


"그래,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이야기 해주렴. 지구인들이 불나비 사랑에 빠져있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면 좋겠구나."처연한 심정으로 산 능선 너머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득히 먼 작은 별나라에서 청순한 표정의 어린 왕자가 근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짝이는 은하의 별빛 물결을 타고 어린 왕자의 청량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정신차리세요. 결과가 불 보듯 뻔한 불나비 사랑에 몰두하고 있는 지구인들이 불나비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것은 마치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잖아요."

너무나 또렷하게 들려오는 어린 왕자의 목소리에 나그네는 깜짝 놀랐다. 정곡을 찌르는 엄중한 경고에 온 몸이 오싹 떨려왔다. '피곤해서 환청을 들은 것이겠지'하며 발걸음을 돌리려고 하는데 어린 왕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린 왕자와 대화를 계속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잘 모르시는 모양이죠? 그럼 좋아요. 제가 이야기할게요. 첫째, 지구인들의 생명의 고향은 자연이잖아요. 자신들을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 자연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더 큰집, 더 큰길, 더 큰 자동차, 더 많은 돈을 위해 어머니 자연의 온 몸을 제멋대로 짓밟고 파괴하고 있잖아요. 그 결과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죠? 크게는 인류의 파멸을 몰고 올 자연의 재앙, 가깝게는 현대인들의 심신의 질병으로 인간의 생명이 병들고 죽을 수밖에 없는 심각한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잖아요? 죽기 살기로 제 무덤을 파는 불나비 사랑과 무엇이 다른가요? 어머니 자연을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불나비인 셈이죠. 둘째, 현대 도시인들의 삶의 고향이 농촌이잖아요. 자신을 품어 안고 키워준 어머니 농촌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나요? 너도나도 가난하고 촌스럽고 못났다며 어머니 농촌을 버리고 떠났잖아요. 세련되고 편리하고 화려한 도시에서 제 잘났다고 으스대며 어머니 농촌을 나 몰라라 하고 있잖아요. 그래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도시인들의 삶의 고향인 어머니 농촌의 죽음이 우리 사회의 불치병인 현대인들의 정서불안, 도시 빈민, 청년실업, 주택난, 교통난, 도시환경문제로 나타나고 있잖아요. 바로 어머니 농촌을 내팽개친 결과이지요. 죽음의 함정에 빠질 것이 불 보듯 한데도 그 길을 계속 가고 있으니 그것이 불나비 사랑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셋째 우리 인간들의 목숨 줄이 농업이잖아요. 농업이 우리에게 무엇이며, 누구입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들의 목숨이요, 삶이잖아요. 자신의 목숨이고 삶인 농업을 지금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힘들다고 돈 안 된다고 하면서 농업을 버린 자식으로 취급하고 있잖아요. 편하고 돈 되는 좋은 직업을 찾아 너나 없이 농업을 버리고 떠난 결과가 어찌 되었나요? 한반도 환경총량 붕괴, 가뭄과 홍수 피해, 수자원 고갈, 실업자 양산, 국민건강과 생명의 위협, 반생명 비인간화의 도시 등 돌이킬 수 없는 고질병으로 나타나고 있잖아요. 이처럼 파멸의 길이 분명한데도 무작정 그 길을 달려간다면 사람들이 비웃는 불나비 사랑과 다를 것이 없잖아요. 어떻습니까? 이제 지구인들이 불나비 사랑에 빠져있다는 제 이야기의 본 뜻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시는지요?" 어린 왕자가 묘한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며 입을 다물었다.


▲ 생명평화순례의 한 장면


"그래요. 제 얘기가 지나쳤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지구와 지구인들을 사랑하기 때문일 뿐 다른 뜻은 없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요. 그리고 이야기를 좀더 해도 괜찮겠지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미쳤거나 바보이거나 불구인 사람을 무시하고 외면하잖아요. 마치 불나비들의 불빛 사랑을 보며 바보 천치 같은 놈들이라고 생각하듯이 말이예요. 그런데 사실은 사람들도 바보이고, 미치광이기는 매 한가지이거든요. 왜냐구요? 생각해보세요. 경쟁적으로 자기 죽음의 무덤을 파면서 잘난 척 으스대고 있으니, 그 보다 더한 바보는 없다고 하지 않겠어요? 그야말로 바보 중에 바보이지요.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며 의기양양하게 파멸의 함정으로 달려간다면 미쳤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잖아요. ‘더 많이, 더 편리하게, 더 빠르게, 더 편안하게, 더 좋게’라는 파멸의 길을 앞다투어 달려가고 있으니 미쳐도 크게 미친 것이지요. 힘, 싸움, 승리만이 최고라며 달려온 역사가 어찌 되었는지 돌아보세요. 한마디로 20세기는 살상과 파괴라는 야만의 역사로 얼룩졌고 21세기는 생명의 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을 자초했잖아요. 역사 경험이 이러한데도 구태의연하게 살상과 파괴의 전철인 힘, 싸움, 승리를 위해 혈안이 되어있지 않습니까.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참으로 꼴불견이라구요.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진정한 의미에서 누가 바보이고, 미친것일까요? 당신들이 사랑하는 어린 왕자가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빌고 또 빌겠습니다. 제발 바보 짓, 미친 짓은 그만 하십시오. 그리고 끝으로 한가지 제안 할 것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 청소년, 노약자, 병약자, 장애우, 고령자들은 자연, 농촌에서 살도록 해야합니다. 그들의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은 자연, 농촌에서만 가능합니다. 우리 시대가 희망하는 지속가능 발전 사회도 자연, 농촌에 뿌리를 둘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21세기 지구촌,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은 이 길뿐임을 명심했으면 합니다.""오! 과연 그렇구나. 문제의 본질을 짚어 깨우쳐 줘서 정말 고맙구나.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들이 자연, 농촌, 농업의 가치와 고마움을 몰라서 함부로 취급하는 것은 아니잖아. 다만 경제성과 경쟁력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일 뿐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 그리고 자연, 농촌, 농업의 붕괴가 지금 당장 큰 문제가 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라고 생각해. 충고는 고맙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어."


어린 왕자의 이야기는 선방의 죽비소리가 되어 나그네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그래, 지금 절실한 것은 솔직, 겸허함이다. '그래 지금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린 왕자의 말대로 제 무덤을 파고 있다면 우리는 바보 중의 바보요, 함정을 향해 가고 있다면, 구태의연하게 전철을 밟고 있다면 우리는 미쳐도 한참 미친 것이다. 정직하게 현실이라는 진실의 자리에 서서 진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진실의 길을 찾아 나서는 의젓한 몸짓을 하는 것이 어린 왕자의 바람에 응답하는 일이요, 21세기 희망을 가꾸는 일임에 눈떠야 마땅할 터이다. ‘그래! 이제 미친 짓, 바보 짓거리를 더 이상은 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린 왕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금빛 은하의 물결이 되어 지구라는 별나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어린 왕자의 호소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바람결 따라 나뭇가지들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순례자의 눈과 귀가 환하게 밝아졌다. 21세기 우리 시대가 나아가야 할 길도 환하게 보였다.


"영원한 우리의 친구 어린 왕자야! 정말 고맙고 고맙구나. 오늘처럼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 있어주렴. 다시 만나자. 안녕!"


도법스님1949년 제주도에서 출생하여 1965년 금산사에서 출가했다. 승가결사체인 ‘선우도량’ 을 결성했고 대한불교조계종 실상사 주지와 불교귀농학교 교장을 역임한 바 있고, 현재 1999년에 창립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상임대표와 전국귀농운동본부 지도위원 등을 맡고 있다. 2003년 3월 1일 생명평화순례를 시작 (지리산 노고단 출발 - 제주도 - 부산 - 현재 경남 지역 순례)했고,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지리산보전운동을 비롯하여 지역생명운동, 도농공동체운동을 통해 시민환경의식 고취와 환경친화적 사회실현에 크게 이바지하여 2003년 4월 교보생명환경문화상 환경운동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화엄경과 생명의 질서>(1990), <길 그리고 길>(1995), <화엄의 길 생명의 길>(1999), <청안청락하십니까>(2000), <내가 본 부처>(200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