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는 해가 달이보다 작은 600g으로 태어나 오히려 고생을 더 많이 했다. 작은 몸에 주렁주렁 달려있던 줄에 대해 말을 보태 무엇하랴. 해의 NICU 진료 기록을 보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병명이 많았다. 그 무섭다는 패혈증도 포함되어 있었다. 염증 수치가 잡히지 않아 병원에서 보낸 하얀 밤들… 반복되는 기관 삽입(Ventilator), 수혈, 항생제 투여 등등…

하지만 해는 NICU 내에서 그리 유명한 아기는 아니었다. 해 바로 옆에 400 g으로 태어난 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NICU의 슈퍼히어로 타이틀은 이 아기가 가져가 버렸다.

아이들의 입원이 길어지고 낮 시간 내내 NICU에 있다 보니 병동 내의 다른 아기 부모들과도 인사하고 지내게 되었는데, 이 슈퍼히어로 아기의 엄마, 아빠는 통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사실 아기 아빠의 얼굴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아기 엄마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NICU를 들러 아기를 보거나 안아주고 가곤 했는데, 처음 봤을 때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앳된 얼굴이 매우 어두웠던 기억이 난다. 매일 병원을 올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미혼모였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고 400 g이었던 아기도 1 kg를 넘어 인큐베이터에서 나왔고 첫 옷을 입고 동글 동글 엄마와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 즈음엔 아기 엄마의 얼굴도 활짝 핀 꽃 같았다. 슈퍼히어로 아기도 해와 달이처럼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치료가 필요했을 것이다. 몇 번이나 고비를 넘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이 그 꽃 같은 순간을 만들었을까.

전면 무상의료체계를 갖춘 영국의 NHS (National Health Service, 국민 보건 서비스)에도 단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위중한 질병이 아닌 경우, 예를 들어 감기나 가벼운 장염에 걸렸을 때에는 병원(GP- General Practice: 1차 병원)에 약속을 잡을 수도 없을 뿐더러 약속을 잡았더라도 ‘진통제(아세트아미노펜)’를 먹고 집에서 푹 쉬라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다. 이렇게 병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비교적 건강할 것이라 여겨지는 성인의 경우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슈퍼히어로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 엄마의 품에 안겨주기도 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치료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부모의 재력과 상관없이 모든 아기가 필요한 치료 및 조치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치료비뿐만이 아니다. 아기 엄마들의 모유 유축을 장려하기 위해 점심식사와 유축기구 등을 무상으로 제공 및 대여해주고, 타 지역에서 온 아기들의 부모에게는 숙소와 주차도 무료로 제공한다. 자동차가 없어 병원에 오기 어려운 부모들을 위해 무료 셔틀 버스를 지원해주거나 지역 경찰서에서 교통편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갓 태어난 아기가 중환자실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부모들은 정신적으로 힘들 수 밖에 없다. 영국 병원에서의 이러한 배려는 우리 부부에게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모든 시간을 오롯이 아이들만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다.

어느 날 저녁, NICU 복도 의자에 앉아있다가 이송용 인큐베이터에 누워 다른 병원으로 가는 작은 아기를 보았다. 이름은 로즈. 선천성 심장 기형을 가지고 태어나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주어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로즈 엄마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로즈를 위해 준비된 이송용 인큐베이터는 응급상황까지 대처할 수 있도록 장비가 더 복잡하게 달려있었고, 이송요원과 의료진이 보호자와 함께 움직였다. 작은 아기가 더욱 작아 보였다. 한 숨 작은 생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영국 의료진의 모습은 그 날 따라 더욱 커 보였다.

*글, 그림= 나나 작가 (@honey_nana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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