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난치 자녀의 엄마로 산다는 것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 희귀난치어린이 지원사업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민혜. <서울재활병원 제공>
“처음 발병한 건 5살 때였어요. 그때까지 발달도 전혀 문제없었고, 소문난 수다쟁이였죠.”
2010년, 평소와 같은 10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밥을 잘 먹지 않는다고 아빠에게 혼이 난 민혜(가명)는 그날부터 갑자기 손을 축 늘어뜨리더니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오른팔이 거기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정신과, 정형외과, 손에 관한 진료만 하는 병원까지 온갖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았지만 어디서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말뿐이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늘 종알종알하던 아이의 말수가 줄어든 것도 그날부터였던 것 같아요.”
또 다른 증상이 나타난 것은 그해 12월, 집으로 찾아온 선생님과 학습지를 풀다가 일어났습니다. 언니에게 답을 먼저 얘기하라고 양보하고는 그날 저녁부터 울기 시작해 밤새 눈물을 쏟는 것입니다.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는 민혜의 말에도 엄마는 ‘낮에 있었던 일이 무척 억울했나 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2월 11일. 엄마는 유치원에서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화장실에서 넘어진 민혜가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형외과에 데리고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뇌수막염을 의심하며 여러 검사를 해보던 의사가 뇌 MRA를 찍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때 ‘모야모야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모야모야병: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뇌혈관이 좁아지는 병. 인구 10만 명당 18명 정도의 유병율을 보이는 희귀질환이다.
병명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엄마는 수술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픔을 만나다
민혜의 병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2011년
1월 03일 뇌혈관조형술 검사
1월 20일 좌측 뇌혈관 간접문합술 수술
1월 25일 목을 가누지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함.
경련 시작. 중환자실 이송.
1월 26일 수술하지 않은 오른쪽 뇌가 부음. 뇌경색이 옴.
12년 전, 한 달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엄마는 어제 일처럼 날짜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모야모야병도 연령이나 발견 시기에 따라 증상이 천차만별이에요. 암처럼 진행기를 6기로 나눈다면 민혜는 4기 정도에 알게 됐어요. 제가 직장에 다니느라 발견이 좀 늦었죠.”
민혜를 낳은 후 두 달 만에 직장에 복귀할 만큼 일 욕심이 많았던 엄마는 민혜의 재활치료 시작과 함께 10년 넘게 이어온 직장생활을 포기했습니다. “경력을 지키겠다고 민혜에게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한 것이 후회돼요. 발병 후에야 부족했던 사랑을 몰아서 주고 있죠. 남들에게 뒤처질까 봐 늘 조급했는데 이제는 ‘조금 늦으면 어때?’라는 생각이 들어요. 민혜 덕분에 철이 든 거죠.”
희망이 피어나다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민혜의 모습. <서울재활병원 제공>
민혜의 발병은 가족 모두에게 고통이었지만, 그 속에서 희망이 함께 자랐습니다.
“만화책을 모으고 따라 그리면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던 첫째 딸이 고1 때 자퇴 선언을 했어요. 그때 마음고생을 많이 했죠. 그러더니 검정고시 합격 후, 최근 만화창작 전공으로 대학에 가기 위해 공모전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받아 오더라고요. 외로움을 달래려고 그리기 시작한 만화가 결국 꿈으로 이어진 셈이지요”
엄마는 민혜의 병이 가족 모두에게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다고 얘기합니다. 이 말을 담담히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을 넘어야 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재활치료를 꾸준히 하면서 몇 발자국 걷기 시작했을 때 경기를 시작하면서 퇴행이 왔어요. 이제는 혼자 서지도 못하죠. 민혜가 걷기 시작할 때 서지도 못하던 아이가 걸어서 나가게 됐다고 영상을 보내왔는데 축하한다는 말이 도저히 안 나오더라고요. 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축하한다고 얘기해줬어요.”
도움이 다가오다
푸르메재단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의 희귀난치어린이 지원사업으로 보조기구와 재활치료비 지원을 받은 민혜는 삶의 질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특히 중증 뇌병변으로 보조기구 없이는 혼자 앉아있기도 힘든 민혜에게 새 보조기구는 튼튼한 척추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답니다.
푸르메재단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에서 보조기기를 지원 받은 민혜
“기존의 보조기구는 민혜의 몸에 잘 맞지 않아서 양쪽에 인형을 끼워놨었는데, 보조기구를 바꾸고 나서 자세가 예뻐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치료할 때나 일상을 누리는 데 불편함이 훨씬 줄어든 거죠.”
힘든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힘들 법도 한데, 엄마는 늘 감사한 일을 함께 찾아내 마무리합니다.
“민혜가 순하고 긍정적인 아이라 참 고마워요. 인지는 정상이라 갑작스러운 병에 힘들었을 법도 한데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 법도 없고, 걷는 연습을 하자고 해도 잘 따라와 주거든요.”
“경제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최근에 이사할 거주지가 생겨서 너무 기뻐요. 눈물이 펑펑 나더라고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남편이랑 둘이 산책하면서 쌓아놓지 않고 그때그때 풀고 있어요. 남편이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 참 감사하죠.”
민혜와 엄마가 가진 긍정의 힘이 곧 기적의 다른 말은 아닐까요? 느리지만 가슴 가득 꿈을 품고 세상을 향해 웃으며 나아가는 민혜 가족을 응원해주세요.
*글= 지화정 대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지화정 대리, 서울재활병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