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병원 너무 부족하다

박은수 변호사


‘나의 왼발’이라는 제목의 명화가 있다. 지체 가운데 오직 왼발만이 자유로운 한 영국인의 재활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의 장면 중에 주인공이 재활의학 전문의에게서 치료받는 모습이 나온다. 처음에 주인공 크리스티는 재활치료를 거부하며 전문의를 향해 “꺼져!”라고 외친다. 그런데 그 발음이 정확하지 못하다. 재활의는 크리스티에게 외친다. “내가 당신에게 ‘꺼져!’라는 그 말 한마디만이라도 정확하게 발음하도록 해주고 떠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재활의학이다.


제 힘으로 또렷하게 발음을 못하는 장애인을 거듭 애정으로 훈련시켜, 해독이 가능한 발음으로 교정시켜 주는 것, 이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교통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된 환자가 의사와 간호사·물리치료사·가족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걷기 연습을 한다. 일주일 전에는 막대기를 짚고 겨우 설 수 있었던 그 환자가 막대기 없이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러 사람들의 손에 땀이 고인다. 드디어 그 환자가 완전히 두 발로 서는데에 성공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터지는 큰 박수. 이것이 재활의학이다.


자기 입으로 제대로 의사표현이 불가능하던 사람이, 어눌하지만 의사표현이 가능해지는 일,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들 수 없던 사람이 혼자서도 식사가 가능해지는 일, 혼자서는 돌아누울 힘도 없어 욕창 방지를 위해 보호자까지 잠 못 자게 하다가, 최소한 누운 상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누울 수 있게 되는 것, 이거 정말 예삿일이 아니다.




“구조된 생명을 살 가치가 있는 생명으로”


지금까지 우리의 통상적인 의료가 그게 그것 아니냐며, 장애인이나 중풍노인의 그 절박한 고통을 외면해 온 반면에, 재활의학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구조된 생명을 살 가치가 있는 생명으로.” 이것이 재활의학의 철학이다. 의학의 발달이 장애인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이제 인간의 생명은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구조 받는다. 그 다음이 문제인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운것은 자유·자립에 있거늘, 살려놓고 지옥같은 생활 속에 방치할 것이었으면 차라리 죽도록 버려둠이 옳지 아니한가? 라고 장애인은 외친다.


사고를 당한 환자, 뇌성마비 장애인, 뇌졸중 노인은 간절하게도 재활치료를 원하건만, 우리나라에는 이들을 만족시켜줄 재활병원이 너무 부족하고 재활의학 전문의가 너무 부족하다. 서울대학병원에조차 재활병동은 따로 없다. 가까운 일본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너무나 후진적이다. 의사 중에서도 재활의학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 지방으로 내려오면,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재활병동이 따로 설치된 국립재활원,연세대 재활병원에는 만성적으로 대기환자가 몇달씩 기다린다.


재활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장애의 조기발견과 조기치료인데, 우리네 상황은 조기치료 시기를 놓쳐 만들지 않아도 될 장애인만 자꾸 양산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는 장애인 재활을 설립목적으로 하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있다. 사회연대책임의 이념을 반영하여 장애인을 고용하지 아니하는 사업주로부터 고용부담금을 징수하여 그 기금으로 각종 장애인 고용지원 사업을 한다. 이미 일산 대전 부산에 장애인직업전문학교를 설립하여 장애인직업교육에 나서고 있다.

장애인에게 더욱 절실한 것은 취업 이전에 고쳐주는 것


그런데 장애인에게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취업이전에 고쳐주는 것이다. 제발 치료에 조금 더 최선을 다해 달라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장애인의 신체기능이 향상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직업교육과 취업의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는 현재 대구와 광주에도 추가로 직업전문학교 설립을 계획중이다. 나는 지금이라도 과감하게 재활병원 설립으로 방향을 바꾸기를 희망한다. 직업전문학교의 내실있는 운영을 위해서는 계속 추가예산이 요망되지만, 재활병원은 수익성도 기대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장애인을 돕겠다는 기관이라면 장애인 입장에서, 그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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