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기에 용기를 냅니다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 희귀난치어린이 지원사업 인터뷰


유환이는 병원에서 첫돌을 맞았습니다.
유환이는 병원에서 첫돌을 맞았습니다.


“배를 열어보니 장이 다 썩어서 손을 댈 수 없는 상태였어요. 수술을 중단하고 배를 닫고 나와서 약도 하나씩 끊기 시작했어요.”


유환이(가명, 만 3세)는 단장증후군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장의 길이가 25cm에 불과해 음식을 먹어도 영양을 거의 흡수할 수 없습니다. 매일 10시간씩 주사를 몸에 연결해 약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부족한 영양을 보충합니다.


“더 어렸을 때는 24시간 내내 주사를 달고 살았어요. 유통기한이 짧은 약이라 이틀에 한 번씩 대학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야 했지요.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으로 방문횟수가 줄어서 한결 좋아졌어요.”


10번의 수술, 장애 또 장애


유환이는 27주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여느 이른둥이처럼 폐가 덜 자라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지만 엄마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결과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지요.


“어느 날 아침, 면회시간도 아직 안 됐는데 연락이 왔어요. 아이의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 바로 수술해야 한다고요.”


갑작스럽게 시작된 수술. 그런데 30분 만에 의사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장이 60% 괴사됐는데 혈압이 너무 낮아서 수술을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날, 유환이의 상태는 더 안 좋아졌습니다. 혈압이 여전히 낮은 상태에서 별 수 없이 다시 배를 열었는데 그때는 이미 소장이 다 썩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결국 그대로 배를 다시 닫았습니다. 약을 하나씩 끊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지요. 그런 순간에도 유환이는 생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수차례 죽음과 맞서 싸운 유환이
수차례 죽음과 맞서 싸운 유환이


“며칠 뒤 수술한 부위가 터져서 봉합을 하려고 배를 열었는데, 아직 괴사하지 않았던 장이 조금 자라있는 거예요.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나니 소장이 10cm 남았더라고요.”


세 번의 장 수술을 포함해 미숙아망막증, 패혈증, 뇌출혈 등으로 총 10번의 전신마취 수술을 하며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유환이는 태어난 지 1년이 넘어서야 병원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천천히 따라가면 결국 또래 아이들과 발맞춰 갈 것이라고 엄마는 믿었습니다. 그랬기에 유환이의 발달장애 진단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집에 오면서부터 입으로 뭘 먹으려고 하지 않아서 연하재활(음식물을 삼키는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시행하는 치료)을 시작했는데, 인지발달이 많이 늦다는 거예요. 병원에서 온갖 수술을 받느라 정신없이 쫓아다닐 때보다 그때가 더 힘들고 막막했던 것 같아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7개월 만에 걸음을 뗀 유환이는 넘어지자마자 다리가 부러져 찾아간 병원에서 오른쪽 무릎에 연골이 없어 성장이 더딜 것이라는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장을 썩게 했던 염증이 오른쪽 다리의 연골과 성장판까지 망가뜨린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것입니다. “오른쪽 다리는 아주 천천히 자라서, 유환이가 성장할 때마다 양쪽 다리 길이를 맞추는 수술을 수차례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희망을 길어 올립니다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유환이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유환이


요즘 유환이는 아침에 어린이집을 다녀온 후부터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낮병동에 입원해 매일 6개의 재활치료를 받습니다. 물리, 작업, 언어, 심리, 미술... 저녁까지 빼곡히 잡혀있는 스케줄. 이를 위해 엄마는 종일 종종거리며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마음은 그보다 늘 앞서있습니다. “정상발달을 하는 유환이 또래 아이들을 볼 때마다 조급한 마음이 들어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가?’‘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계속 자책하게 돼요.”


지금껏 비용이 높은 재활치료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유환이가 태어나기 전에 들어놨던 태아보험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 보험사에서 실사를 하더니 치료비 지급이 중단됐습니다. 외벌이인 아빠의 소득으로는 매달 주사 소모품으로 나가는 150만 원에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만도 버거운 상황이라 결국 비급여 치료를 모두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퇴행이 와서 몇 년간의 치료가 소용없어지면 어쩌나 너무 불안했어요. 다시 치료받을 방법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 알아봤어요.”


지원을 받아 구입한 특수분유
최근 지원비를 받아 구입한 특수분유


희귀난치질환 어린이를 지원하는 푸르메재단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에서 치료비와 특수분유 비용을 지원받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가뭄 끝 단비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어요. 덕분에 올해는 잠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어요.”


엄마이기에 용기를 냅니다


유환이는 태어난 후 자신이 사는 지역을 거의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매일 10시간씩 몸에 줄을 달고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엄마. 이제는 조급함을 조금 내려놓고 유환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동안 너무 겁을 냈던 것 같아요. 제가 용기를 내야 유환이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기회를 얻을 텐데 눈앞의 문제에만 집중하느라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달음질하는 마음의 고삐를 틀어쥐고 잠시 뒤를 돌아보면, 놓치기에 아쉬운 아이의 예쁜 모습을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슬며시 다가옵니다. 곁에서 함께 응원하고 공감해주는 이들 덕분에 엄마는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불어넣습니다.


“유환이도 언젠가는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이 가진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그 시기가 됐을 때 다른 사람과 조금 덜 비교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때가 되면 이 사회도 우리 아이들을 너그럽게 품어줄 만큼 성숙해지지 않을까요?”


*글= 지화정 대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지화정 대리, 김유환 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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