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에서 꿈을 찾은 청년

손유린 민들레마음 대표 인터뷰


 


푸르메재단의 첫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국내의 열악한 재활치료 환경을 바꾸기 위해 직접 어린이 전문 재활병원을 건립한 재단의 그 무모했던 열정을요.


손유린 민들레마음 대표
손유린 민들레마음 대표

그때의 푸르메재단을 닮은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어린이병원의 열악한 사정을 바꾸고자 아이들이 그린 캐릭터로 사회적기업을 설립한 대학생, 머지않은 미래에 어린이 맞춤형 커뮤니티를 건립하겠다는 꿈을 향해 직진 중인 손유린 민들레마음 대표입니다.


어린이가 소외된 어린이병원


민들레마음은 희귀난치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그린 그림 캐릭터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어린이병원에 기부하는 예비 사회적기업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면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 봉사와 멀어지잖아요. 대학생 때 실컷 해보자는 생각으로 어린이병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어요.”


손유린 대표가 어린이병원에서 받은 첫인상은 ‘어린이병원답게 아기자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채로운 색의 침구와 알록달록한 환아복이 여느 병원과 달라 보였어요.” 하지만 어린이병원은 종합병원에서도 소외된 분과였고, 늘 예산이 부족했습니다. 어른에게 맞춰진 식기와 침구 등이 제공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을 가슴 아파하던 부모들이 직접 아픈 자녀에게 맞는 생활용품들로 병실의 공간을 채운 것이 곧 어린이병원다움이 됐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사회/경제생활을 내려놓으시고 자녀 간병에 몰두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병명도, 치료법도 없는 병마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시고. 형제자매는 가정에서 소외되고. 그렇게 점점 힘들어지는 가족을 보며 환아는 그 어린 나이에도 어쩔 수 없는 아픔을 두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에 의한 ‘민들레마음’


아픈 아이들에게 행복을 찾아주기 위한 손 대표의 치열한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도움을 준다는 핑계로 아이들의 아픈 모습을 자극적으로 노출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모든 과정에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민들레마음에서 만들고 판매하는 제품들. 출처: http://mindlestore.com
민들레마음에서 만들고 판매하는 제품들. <출처: http://mindlestore.com>

그때 손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미술 봉사활동 시간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잘 그렸다고 얘기하긴 힘들었지만 분명 어른들의 그림에는 없는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 아이들만의 감성이 있었습니다. “이거다 싶었어요. 바로 학교 게시판을 통해 디자이너 동료를 구하고 창업에 뛰어들었지요.”


2019년 1월,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모두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사실 아이템만 보자면 진입장벽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잖아요. 누구나 쉽게 생각하고 뛰어들 수 있는 사업이라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죠. 교내에서 열린 창업경진대회나 공모전에서도 꼴등을 도맡아 했어요.”


손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품이 나오자마자 수도권에서 하는 플리마켓과 디자인페어 등에 가리지 않고 참여했습니다. “신촌에서 열린 플리마켓에서는 100만 원대의 매출을 찍었는데 제기동에서는 고작 6천 원어치를 팔았어요. 소비자의 99%가 여성, 그중에서도 10대와 20대가 대다수더라고요.” 민들레마음이 나아가야 할 길이 보였습니다.


2019년 12월에 열린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부스비 1평에 330만 원, 부대시설과 기타 비용까지 총 600여만 원으로 대학생에게는 거액의 행사였습니다. 대출까지 받아 참석했던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민들레마음의 제품에 관심을 가졌고 5일간 1천만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습니다. 거기서 손 대표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매 순간이 위기, 그래도 견딜 수 있는 이유


“최근에는 행복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채용부터 세금, 4대 보험 신고, 판매, 특허 등 모든 게 다 처음인 민들레마음, 단 한 순간도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함. “코로나19 상황으로 직전 연도의 20% 수준까지 줄어든 매출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했어요.”


민들레마음 직원들
민들레마음 직원들

본인을 포함해 직원 모두가 대학생이라는 것도 손 대표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앞날이 창창한 나이잖아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스타트업의 시작을 함께하는데 잘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 부담감이 견딜 수 없이 무겁게 다가와요.” 사업이 한 단계 나아가는 순간들 역시 즐거움보다 공포가 더 큽니다.


그럼에도 손유린 대표에게는 강한 확신이 있습니다. “2년간의 봉사활동 경험으로 어린이병원의 어려운 상황을 저희만큼 잘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민들레마음이 잘될 수밖에 없는 힘이지요.”


제품 수익금으로 충남대학교병원 늘봄나래에 후원한 민들레마음
제품 수익금으로 충남대학교병원 늘봄나래에 후원한 민들레마음

올해는 민들레마음이 한 단계 도약하는 해입니다. 사업적으로는 캐릭터에 스토리를 입히고 세계관을 구축하는 한편 어린이병원들이 자생할 수 있도록 지역 커뮤니티 조성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각 병원의 캐릭터를 만들어 지역 기업과 연계해 판로를 구축하고 그 수익금이 환아들을 위해 쓰여지도록 병원에 돌려주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해요.”


이 사업은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여행 때 방문한 베니오프 어린이병원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병원 입구에 기부벽 대신 기프트샵이 있었어요. 디자인이랄 것도 없이 병원 로고만 찍혀있는 노트나 연필을 마을 주민들이 줄을 서서 사고 있는 걸 봤어요. 지역의 커뮤니티 기부가 활성화돼 가능한 것이죠. 우리의 사업이 병원과 지역, 환아와 지역주민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어린이 통합케어서비스를 제공하는 9개 병원을 연결하는 국가대표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입니다. “웹진이나 각종 채널을 통해 각 병원의 소식과 이야기를 전달하고 정보가 많지 않은 희귀 난치 질환에 관한 영상을 제작해 배포하려고 해요”


병원 건립의 꿈을 품다



손유린 대표는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병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안전한 침대, 보호자가 함께 생활해도 충분히 넓은 공간과 수납시설, 옷, 식사, 화장실까지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배려한 공간이 필요해요. 교육과 돌봄서비스도 있어야 하지요. 어린이병원 자체가 하나의 커뮤니티가 되었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 약 4년 후 병원의 경영을 공부하기 위한 유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10년 후 전국의 어린이병원을 돌아다니며 선진적인 운영시스템을 도입하고 직접 병원을 건립하는 것까지 단계별 계획을 촘촘히 세워놓은 손유린 대표입니다.


재단의 첫 열정을 닮은 그가 굳은 확신으로 쌓은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오를 그 길에 푸르메가 작은 주춧돌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글=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민들레마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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