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오늘도' 행복한 이유
김병두 푸르메소셜팜 대표 인터뷰
올해 3월, 푸르메재단의 가족이 되어 푸르메소셜팜의 출발에 추진력을 실어주고 있는 김병두 대표. 재단에서는 그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운명처럼 그분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졌다지요? 이유는 그의 이력에 적힌 ‘SK’ 임원 경력 때문입니다. 건립 비용 지원부터 이후의 판로 확보까지 SK하이닉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농장이기에 다양한 부서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적임자라고 보았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푸르메소셜팜 토마토 첫 수확 시기에 맞춰 SK하이닉스에 방울토마토 납품 계약을 성사한 데 이어 GS슈퍼마켓 납품까지 시작이 순조롭습니다. 푸르메소셜팜 장애직원들을 모두 품을 만큼 커다란 나무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김 대표가 그리는 푸르메소셜팜의 현재와 앞으로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먼저 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푸르메소셜팜 여주농원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초보 농부 김병두입니다. 푸르메소셜팜이라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늘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으로 푸르메소셜팜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오랫동안 몸담았던 기업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곳을 찾던 차에 푸르메소셜팜의 채용공고를 발견했어요. 전 직장과 밀접한 곳이기도 했지만, 그즈음 여주의 자그마한 농막에 머물며 농사를 짓던 터라 더 눈에 띄었죠. 평생 책상 앞에 앉아서 일했기에 땀을 흘리며 노동하는 가치를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 만큼 푸르메소셜팜은 저에게 딱 맞는 직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들어오니 생각과 다른 부분도 많았을 것 같아요.
첫째로는 푸르메소셜팜이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모델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자체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부담과 고민이 컸어요. 그런데 푸르메재단을 포함해 SK하이닉스와 여주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여러 곳의 지원과 응원 덕분에 큰 부담 없이 순항하고 있습니다. 고마운 마음이 크지요.
또 하나는 같이 일하는 비장애인 직원들의 높은 역량과 자발적인 헌신이에요. 기대 이상이었어요. 푸르메재단이 가진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영리기업과 비교하면 대우가 좋지 않음에도 직원들이 자기 일처럼 헌신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동력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아마도 선한 가치가 있는 곳에 선한 뜻을 가진 이들이 함께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 푸르메재단의 가치를 그대로 이어 푸르메소셜팜 역시 직원이 자신의 일에 의미를 가지고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힘이 닿는 한 같이 하고 싶습니다.
푸르메재단을 긍정적으로 봐주신 것 같아 참 고맙습니다. 장애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처음이시죠?
맞아요. 처음에는 비장애인 직원들의 부담이 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장애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요즘은 이들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낼 때가 훨씬 많습니다. 오히려 긍정적인 부분들을 발견하기도 해요.
한번은 SK텔레콤의 지원으로 쪽방촌에 토마토 수천 박스를 급하게 보냈던 적이 있어요. SK하이닉스에 스낵토마토를 막 납품하기 시작한 때라 일손이 부족하고 마음도 급한 상황이었지요. 전날까지도 도저히 납기일을 맞출 수 없겠다 낙담하고 있었는데 장애직원들이 수시로 남은 물량을 체크하면서 큰소리로 알리더라고요. 그때마다 파이팅을 외치며 서로를 응원한 덕분에 약속한 물량을 제때 납품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포장을 끝냈을 때 환호성을 터트리는 장애직원들 얼굴에서 뿌듯함과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을 봤어요. 드디어 돌봄의 대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의 자리를 되찾은 것이죠. 그 모습을 보면서 푸르메소셜팜이 하나가 되고,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1기 직원들이 입사한 지도 거의 10개월이 됐어요. 그 사이 직원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가장 큰 변화는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는 거예요. 처음 왔을 때는 쉬는 시간이 조용했어요. 그냥 멍하니 앉아 있거나 근로 지원 선생님들의 질문에 대답만 하는 정도였지요. 지금은 서로 모여서 놀고 장난치느라 늘 소란스러워요. 힘들어 보이는 동료가 있으면 먼저 다가가서 도와주려고 하고요. 오후반 직원이 일찍 출근해서 오전반 업무시간이랑 겹칠 때도 있어요. 그러면 자기 업무시간이 아닌데도 같이 일하고 먼저 나서서 청소해요. 처음에 재단이 추구했던 가치 그대로, 이곳이 장애직원들에게 아침에 눈 뜨면 출근하고 싶은 농장이 되고 있구나 싶어요.
대표님이 장애직원들에게 바라는 점도 있으실 것 같아요.
복지시설에서 보살핌을 받고, 혜택을 누리는 이용자가 아니라 자신이 노력을 다해 일을 하고 그 성과로 회사에서 급여를 받는 직원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해요. 조금 덜 이해받을 테고, 그래서 조금 더 힘들지도 모르죠. 하지만 자신이 우리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보람을 느끼고 자신감도 차오를 거예요. 그런 감정을 공유하면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진정한 홀로서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푸르메소셜팜이 그들에게 안정적인 울타리가 되어야겠네요. 농장의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경쟁력이죠. 상품가치가 높은 생산물에 장애인 일터라는 좋은 가치를 더하면 다른 곳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정적인 수익으로 연결된다면 푸르메소셜팜이 지속가능한 사업모델로 자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직원들 사이에 이런 가치를 함께 실현하고자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거예요. 가치를 공유하는 직원들이 강력한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만들어가기 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현재 SK하이닉스와 GS슈퍼마켓에 납품하고 있는 방울토마토의 수요처를 늘리려고 해요. 한정된 수요처에만 의지하면 판로가 끊길 경우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으니까요. 농장의 토마토 생산량을 늘리고 타 농가와 협력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농작물 납품은 수익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2차, 3차 가공상품을 개발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일 방법을 찾는 것이 그 다음입니다. 그리고, 표고버섯의 안정적인 판로 및 상품개발을 하는 것이 그보다 앞선 과제가 되겠네요.
푸르메소셜팜이 장애청년들을 위한 특별한 농장인 만큼 수익성 확보 외에도 다른 계획들이 있으실 것 같아요.
지역주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만들고 싶어요. 최근 여주대학교와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중학생부터 대학생, 그 이상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자원봉사를 위해 농장을 찾고 있어요. 봉사시간이 필요해서 온 이들도 많겠지만 단순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직원들과 교감할 수 있도록 짝을 만들어줘요. 팀을 이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관심사를 얘기하다 보면 장애가 있다는 것은 함께 어울리는데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믿어요.
대표님, 같이 일하는 실무자로서 정말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요.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들이 있잖아요. ‘빨리 빨리’ ‘그래서 언제 오는데?’ 이런 말들이요. 이렇게 재촉하시는 건 원래 성격이신가요? (웃음)
성격이 원래 급한 것도 있지만 약속한 날짜를 지키는 게 계약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에서 빨리 해줘야 중간에 잘못되어도 방향을 틀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요. 저에게는 ‘빨리빨리’가 오히려 여유와 긍정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이에요. (웃음)
김병두 대표는 가장 좋아하는 말로 ‘새옹지마’를 꼽습니다. 화가 곧 복일 수도 있고 복이 화가 될 수도 있기에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면서요. 푸르메소셜팜을 운영하는 데 딱히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가치관 덕분이 아닐까요? 재단의 이상과 농업의 현실을 조율하면서 40여 명의 직원을 책임지는 대표로서의 부담까지 무겁게 얹고도 유쾌한 농담을 던지는 김병두 대표가 있어 푸르메소셜팜은 ‘오늘도’ 행복합니다.
*글, 사진=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