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쾌히 200억 원을 기부하다
푸르메재단 후원자 이야기_김정주 NXC 대표 2편
김포를 떠난 비행기는 서해안을 따라 거슬러 내려가 한 시간 만에 제주도에 닿았다. 넥슨 지주회사인 NXC센터는 제주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심에 있었다. 검은색 유리와 나무 패널로 마감된 건물은 네 개 면 중 한쪽 면을 과감하게 생략한 대신 다리로 연결해 진취적인 느낌을 줬다. 탁 트인 외부 풍경을 어느 곳에서나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게 개방감을 높인 것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일한다면 창밖의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간간이 일손을 놓을 수도 있겠지만,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퇴근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사무실과 달리 긴 테이블만 줄지어 있었다. 고정된 자리가 없고 원하는 곳에 앉는 자율좌석제라고 했다. 한쪽에 마련된 휴게실에는 쿠션에 얼굴을 파묻고 낮잠을 자거나 시소를 타며 대화를 나누는 직원들이 보였다. 직원들은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자리를 옮겨 다니며 일할 수 있다니. 칸막이 사무실과 정해진 시간에 근무하는 것에 익숙한 나로서는 어리둥절했다.
학창 시절 내가 다닌 대학은 다른 곳보다 일찍 ‘신문물’을 도입했기 때문에 중앙도서관 지하에 가면 4, 5평 크기의 슈퍼컴퓨터를 볼 수 있었다. 가격이 학생 천 명이 내는 등록금을 합한 것보다 비싸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학생 천 명의 미래를 바꿀 만큼 기계 한 대가 값어치가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졌었다. 그런데 4.5톤 트럭 크기의 컴퓨터가 어느덧 손바닥만 한 핸드폰으로 변신해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NXC센터 옆에 지어진 넥슨컴퓨터박물관에는 카드에 구멍을 뚫어 정보를 입력했던 1세대부터 핸드폰으로 이어지는 컴퓨터 진화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다.
NXC센터와 박물관을 둘러보고 오후에 김정주 대표의 집으로 향했다. 그 집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휠체어를 타는 아내를 위해 새로 제작된 철제 경사로가 거실 입구에 설치되어 있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밀려왔다.
김정주 대표 부부와 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어린이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식사가 끝날 무렵 마음을 털어놓았다. “김정주 대표님과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푸르메어린이재활의원’이 세워졌습니다. 이곳에는 멀리 청주와 원주에서 출퇴근하는 어린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재활의원만으로 많은 어린이들을 치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차례를 기다리는 장애어린이 어머니들은 좀 더 큰 병원을 지어달라고, 우리 아이가 집중 치료만 받으면 걸을 수 있고 학교도 갈 수 있다고 호소합니다. 넥슨과 푸르메재단이 손잡고 입원과 통원치료가 가능한 통합형 어린이재활병원을 세운다면 어린이치료에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습니다.” 내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든 나무든 심지어 조직조차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 있다. 푸르메재단이 가장 아름답게 빛났던 순간은 꿈에 그리던 어린이재활의원이 세워져 걷지 못하던 꼬마가 기적처럼 첫 걸음마를 뗐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병원이 세워질 수 있다면 더 찬란히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기대가 밀려왔다.
제주도를 방문한 것은 김정주 대표를 처음 만난 이후 이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 사이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에서 오랫동안 어린이치료를 맡았던 두정희 선생님이 푸르메어린이재활의원의 치료실장을 맡으면서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환자들이 몰려왔다. 부모님들 사이에 열심히 치료하는 곳으로 평판이 높아졌다.
병원을 짓자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김정주 대표 부부는 적잖게 당황한 듯했다. “병원이 세워지면 어린이 100명이 입원하고 하루 500명이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신체가 불편한 어린이뿐 아니라 자폐와 과몰입 어린이 등 재활의학과와 소아정신과, 소아과, 소아치과 등 통합진료를 할 수 있습니다. 넥슨에서 그 기적을 만들어주십시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구상해 왔던 청사진을 제시했다. “병원부지는 취지에 공감하는 지자체를 설득해 지원받고 시민들도 사회운동차원에서 건립사업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병원건립비의 절반인 200억 원을 넥슨에서 기부해주십시오. 나머지는 푸르메재단이 책임지겠습니다.” 자신 있게 말했지만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이철재 사장과의 인연으로 푸르메재단에 10억 원을 기부했고, 호의로 제주도 집으로 초대까지 해준 분들에게 이번에는 대기업조차 엄두를 내기 힘든 200억 원의 기부를 요청한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격이었다.
김정주 대표 부부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제야 ‘내가 너무 섣불렀구나’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 부부는 김정주 대표 부부와 헤어져 서귀포에서 하루 더 묵고 서울로 올라왔다.
두 달이란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제주도를 방문했던 기억과 200억 원의 기부를 제안했던 사실조차 가물가물했다. 모든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김정주 대표였다. “푸르메재단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병원을 어떻게 짓고 운영할지 구체적인 계획서를 보내주십시오.” 행복의 문이 하나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고 했는데 병원을 지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이 열린 것이다.
일이 잘 풀리려고 그랬는지 그즈음 다른 곳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마포구 상암동에 사회복지시설용지가 있으니 푸르메재단이 구입하겠느냐”는 것이었다. 평당 870만 원, 1000평 규모였다. 종로구 신교동에 어린이재활의원을 세운 직후라 통장에 잔고가 있을 리 없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도 그 땅에 관심을 가지고 했다고 했다. 부지를 둘러봤다. 한강을 끼고 있어 접근이 쉬울 뿐 아니라 김포와 부천, 고양, 파주에 인접해 사통오달 입지였다.
서둘러야 했다. 주저하다가는 다른 곳에서 부지를 매입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애가 탔다. ‘누가 이 땅을 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마포구청에 우선 매입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앞뒤도 재지 않고 바로 달려갔다.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당시 구청장은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역임한 박홍섭 씨였다. 찾아가 어린이재활병원의 필요성을 설명하자 박 구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군사독재 시절 탄압에 맞서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아내는 오랫동안 여성운동을 했고요. 이런 경험 때문에 저도 어린이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와의 대화 속에서 병원부지 확보의 희망이 보였다.
전국을 떠돌고 있는 장애어린이들의 상황을 설명하며 마포구에서 부지를 구입해 달라고 호소했다. “시민과 지자체인 마포구, 비영리기관인 푸르메재단이 힘을 합해 짓는 방식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 없는 제3섹터 방식으로 어린이재활병원이 지어진다면 어린이재활치료 뿐 아니라 한국기부문화에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방언 터지듯 말 폭탄을 쏟아냈다.
열심히 경청하던 박 구청장이 말문을 열었다. “많은 반대가 있겠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푸르메재단에서 병원건립비를 마련할 수 있습니까.” 다행히 내게는 답변이 준비돼 있었다. “네, 넥슨에서 절반인 200억 원을 약속했습니다. 나머지는 최선을 다해 모금하겠습니다.” 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기적처럼 2년 동안 김정주 대표와 시민 1만 명, 500개 기업이 병원 건립의 정성을 모아줬다. 불치병으로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한 부부는 보험회사에서 받은 보험금을 기부했고 서울의 숭의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바자회 기금을 모아 보내줬다. 이해인 수녀님은 시집 ‘민들레의 영토’ 인세를 선뜻 내주었다. 재단 홍보대사인 가수 션 씨는 한해 20개가 넘는 마라톤을 뛰면서 기금을 모아줬다. 이렇게 나머지 230억 원이 기적같이 모금됐다.
2016년 4월 28일. 드디어 국내 유일의 어린이재활병원이 마포구 상암동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푸르메재단은 큰 마중물이 되어준 김정주 대표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병원 이름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기쁨과 보람 뒤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해마다 30억씩 적자를 보면서 힘겹게 버티던 중에 코로나 감염사태까지 터져 지난해와 올해 적자 폭이 더 커졌다. 입원환자들이 퇴원하고 외래환자도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위기가 닥쳤지만 다행스럽게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김정주 대표와 넥슨은 올해도 병원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힘을 보태줬다.
오랫동안 향기가 전해지는 아름다운 만남이 있다. 김정주 대표와의 인연이 그렇다. 그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병원을 세우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조만간 아내와 만두를 빚어야겠다. 다른 건 몰라도 만두 하나만큼은 자신 있으니 고마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지지 않을까.
*글=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사진= 푸르메재단, 넥슨 DB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