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족의 든든한 동반자
홍지연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부원장
소아재활은 마라톤 경기와 같습니다. 지루하고 긴 치료 마라톤은 장애어린이와 부모님 홀로 감당하기에는 외롭고 힘겨운 싸움입니다. 그들과 보폭을 맞춰 함께 달리는 페이스메이커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벌써 3년째 국내 유일의 어린이재활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장애어린이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홍지연 부원장입니다.
Q.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개원 직후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셨습니다. 지난 3년간의 소회를 말씀해주세요.
아이를 하나 키우고 있는 느낌이에요. 우리 병원이 어린이재활병원이라서 그런지 딱 만 3살 된 아이라고 생각돼요. 애들도 만 3살이 되면 말이 통하고 사람 구실하겠구나 싶잖아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각 구성원들이 서로 협업을 잘 하고 있어서 병원이 더욱 풍성해지고 있지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국내에 처음 생긴 어린이 전문 재활병원이었기에 모든 것이 부족했어요. 개원 직후인 2016년 6월에 입사했는데, 그때 재활의학과 의료진은 임윤명 병원장님 한 분 뿐이었어요. 치료사도 많지 않아서 치료대기가 꽤 길었죠. 당시 언론 보도가 많이 되면서 환자와 보호자들의 기대가 높았는데,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서 갈등도 있었어요.
병원이 수익 나는 구조가 아니어서 어려움도 많았어요. 하지만 병원을 이끌어 가야한다는 사명감으로 개원 초창기 멤버들이 의기투합을 했죠. 그 결과, 갈등도 수습되고 점차 안정화되면서 지금의 시스템을 갖추게 됐어요. 여전히 적자 운영이지만 많은 분들이 노력해 준 덕분에 좋은 시설 안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Q.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은사이신 이일영 교수님께서 우리 병원 초대 병원장이셨어요. 병원 전공의 방에 있는데 어느 날인가 교수님께서 푸르메재단 관련 책과 해외 장애인 재활시설 탐방집을 놓고 가셨어요. 책을 읽으면서 학교에서 배운 대로 재활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드시려는구나 생각했죠. 졸업 후에 산재병원에서 일하고 있을 때, 교수님께서 병원이 완공됐다며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하셨고 그걸 받아들였어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해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약 100명 정도 배출되는데, 소아재활만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거든요. 마이너 중에 마이너죠. 적자가 날 것이 뻔히 보여 곧 문 닫을 것이 예상되는 병원이니, 주변의 반대가 많았어요. 가족들은 지금까지 커리어 잘 쌓아왔는데 왜 어려운 선택을 하냐고 말렸어요. 저는 아이들이 재활치료를 통해 호전되는 것을 보는 것이 즐거웠고 그 하나만으로도 이곳에 올 이유는 충분했어요. 통계적으로 성인은 회복 가능한 단계가 예측 가능한 수준인데 비해 성장기 아이들은 치료가 더해지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거든요. 다행히 이제는 가족들도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주고 있어요.
Q.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린이들을 진료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소아재활 전문의는 컨설턴트나 마찬가지예요. 가정에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으면 부모님 혼자 알아보거나 주변에 물어봐서 치료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문가는 이렇게 허비하는 시간과 돈을 줄일 수 있도록 조언하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초창기에는 많은 부모님들이 우리 병원을 복지관처럼 여기셨어요. 외래 재진 스케줄을 잡으려고 하면, 왜 진료를 해야 하냐면서 컴플레인도 많이 받았죠. 3년 정도 있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제 조언을 받아들이고, 여러 문제들을 상의하려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늘어났어요. 그 아이들이 병원에서 치료 받은 후 어린이집, 학교를 다니며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참 기쁩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어린이가 있으신가요?
KBS 뉴스에도 나왔던 주언이요. 의지도 있고 동기부여가 잘 되어 있는 아이였어요. 그런 아이가 집중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생애 최고 수준의 기능을 갱신하고 있어요. 늘 휠체어에만 앉아 있던 아이가 걸어서 친구들과 슈퍼에도 가고, 야구장에도 가는 등 그동안 못해 봤던 걸 하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됐더군요.
그러면서 주언이가 “선생님, 앉아서 세상을 보다가 서서 보는 세상이 이렇게 다른지 몰랐어요.”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요.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는 사람들도 장애아로만 바라봤는데, 이제 지팡이를 잡고 걸을 수 있게 되니 사람들이 ‘어디 다쳤나보다’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는 거예요.
그때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이런 거였구나 알게 됐어요. 어른의 생각으로만 봤지 아이들 생각은 미처 몰랐거든요. 주언이의 말 한 마디로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그 이후로는 부모님과 상담을 하면서도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고 조언하려고 노력해요.
Q. 부원장님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어떤 공간입니까?
아름다운 화합의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오후 2~3시쯤 병원을 둘러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2층에는 재활치료 받는 애들이 있고, 1층에는 동네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간식을 먹고 놀고 있죠. 그 옆의 수납 창구에서는 환아 부모님들이 수납을 하고, 모두가 함께 있어요.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도 서로를 다르게 바라보지 않아요. 그냥 다 이웃으로 생각하죠.
초반에는 지역주민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가 승강기에 같이 타면 뭔가를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셨대요.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게 우리 동네 아이를 보듯이 대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리 병원 안에서 자연스럽게 사회통합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 자체가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 아닌가요?
Q. 앞으로 추진하고 싶으신 계획이 있으신지요?
개원 3년이 지났지만 아직 보강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요. 인구 구조가 달라지고 있듯이 우리 병원을 이용하는 형태도 달라질 것을 대비해야해요. 현재 영유아 치료에 집중돼 있는 프로그램을 청소년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실에서만 잘하는 아이가 아닌 병원에서 향상시킨 기능을 집과 학교에서도 할 수 있는 아이를 양성하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 아이들이 직장을 갖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푸르메재단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면 좋을 것 같아요.
Q. 두 번째 인터뷰 대상자 추천과 건네고 싶은 질문을 말씀해주세요.
재활치료실 물리치료1팀의 이한비 물리치료사를 추천합니다. 병원이 처음으로 대졸 신입직원을 뽑을 때, 첫 직장으로 우리 병원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분이에요. 어떤 계기로 우리 병원에 지원하게 됐고, 또 첫 직장에서 느낀 여러 가지 소회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글= 이지연 홍보담당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기획팀)
*사진= 이지연 홍보담당자, 푸르메재단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