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비장애형제의 생존법

정신적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청년들의 모임 ‘나는’ 칼럼


 


‘나는’ 모임이 끝나고 뒷정리를 마친 후 돌아가려는 내게, 그날 처음으로 모임에 참석했던 한 비장애형제가 잠시 나와 더 얘기를 나누고 싶다며 함께 나가기를 청했다. 마침 같은 방향이라 차를 타고 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그 분이 나에게 물었다. “장애형제에 대한 감정이 어떠세요?”라고.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 두 아이


그날의 모임에서 우리는 마음에 담고 있었지만 어디에서도 말하지 못했던, 혹은 느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상생활에서 장애형제의 고집으로 인해 짜증이 날 때가 있다는 것과 부모님이 내게 거는 기대가 부담스럽다는 것, 다른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불쾌하거나 두렵고, 결혼이나 이후의 미래가 걱정스럽다는 것들까지. 우리들은 장애인의 가족이어서 행복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나씩 나열해 보면 온통 부정적인 이야기들뿐이기에 그 분은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너는 너의 장애형제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냐고. 자신에게는 장애형제가 매우 소중한데 너는 형제를 싫어하는 것이냐고.


여러 비장애형제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비장애형제가 가진 장애형제에 대한 감정은 개개인마다 참 다양하다는 것이다. 어떤 비장애형제들은 장애형제를 매우 사랑한다. 내 형제이기에 싸우다가도 챙기고, 앞으로의 살아갈 날에 장애형제와의 미래를 그리고,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애정을 쏟기도 한다. 혹은 장애형제가 밉거나 그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관심을 두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마음은 어떤가?


사실 나는 내 형제를 참 좋아한다. 밖에 나가 함께 걸을 때 기분이 좋아서 살포시 웃는 미소도 좋다. 얼굴에 화장품을 발라주면 가만히 얼굴을 들이밀 때도 귀엽다. 노래방을 좋아해서 노래방 앞에만 가면 그쪽으로 손을 잡아끄는 것도, 슈퍼마켓에 가면 꼭 포카칩만 고르는 것도, 반찬이 마땅치 않으면 냉동실을 뒤져 숨겨뒀던 만두를 찾아내는 것도. 엉뚱해서 웃기기도 하고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 마음에 대견하기도 하다.


풀밭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 두 자매


하지만 이런 장애형제와 함께 하는 삶이 마냥 행복하지 않음을, 또한 느낀다. 장애인의 형제로서의 나는 가족에 대한 연민, 그리고 죄책감과 함께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엉뚱하고 귀여운 나의 형제는 10년에 한 살씩 자란다. 그렇게 더디게 자라는 장애형제는 혼자서는 어떤 위험에 처할지 알 수 없어 항상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가족들이 여력이 되지 않아 아무도 놀아주지 못하면 장애형제는 하루 종일이라도 우두커니 앉아 종이를 자른다. 달력, 전단지, 신문지, 스케치북... 그 의미 없는 행위는 나의 형제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는 것일까? 세상의 더 많은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하는 장애형제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그 경험을 장애형제에게 주지 못하는 내가, 홀로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내가 죄스럽다.


내가 그동안 가장 불쌍히 여기고 가장 죄책감을 많이 느꼈던 대상은 바로 엄마이다. 지금의 나와 비슷했을 나이에 결혼을 한 엄마는 젊은 시절의 꿈, 청춘의 싱그러움을 나와 내 형제를 먹이고 키우는데 쏟았다. 아이가 이상하니 더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에 급히 서울행 비행기를 탔을 엄마.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이를 데리고 매일 시외버스를 타고 다니며 교육을 시켰던 엄마. 그때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의 삶’은 내게 너무나 슬픈 것이기에 더 잘 해서, 더 노력해서 슬픈 삶에서 엄마를 구해내지 못하는 나를, 나는 용서하기가 어렵다.


아이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엄마


이십대 중반까지의 나는 장애형제와 엄마를 슬픈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그것은 나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장애형제와 엄마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지, 행복할 수 있을지 골몰했다. 그러려면 내가 더 잘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내가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장애형제와 엄마는, 그 슬픈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한 명 분의 인생을 제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두 명의 삶을 끌어안고 가는 사람의 어깨는 얼마나 무거울 것인가. 죄책감을 덜어내려 노력하면 할수록, 나의 삶은 무거워졌다. 불행했다.


너무나 불행한 나머지 삶을 놓아버리고 싶어졌을 때, 나는 살아가기 위한 방법들을 찾기로 했다. ‘나는’ 모임을 통해 다른 비장애형제들과 이야기하며 장애인의 형제들에게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음을 알았다. 또 심리상담센터에서 장기간 상담을 받으며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죄책감과 싸우기 시작했다. 상담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죄책감은 비교에서 와요. 장애형제가 더 교육 받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일반인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만 자신을 책망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래야 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은 자신의 삶을 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나의 한계를 알고, 내 한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하는 것이 행복한지 내게 물어보는 것이 우선이에요. 당신이 가족을 사랑하는 것처럼, 가족들 역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바래요. 당신이 자신의 삶을 건강히 살아가는 것 역시 가족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에요.”


자유롭게 뛰고 있는 한 여성


눈을 잠시 감고 가족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지 말라는 단기적인 처방은, 삶의 무게에 눌려있던 내 숨을 트이게 해주었다. 장애형제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는 이상 나의 연민과 죄책감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죄책감이 불쑥 솟아오를 때는 진통제를 투여하듯 나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가족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고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고. 내 삶을 건강히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가족을 돕는 것이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행복한 일이라고.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이제 그만 나를 용서해 주자고.


“장애형제에 대한 감정이 어떠세요?”


흔들리는 차 안에서 들은 그 질문에 그동안의 고민들, 힘겨웠던 스스로와의 싸움을 미처 전하지 못한 채 “좋아하죠.”라고 말하며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비장애형제는 장애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명제를 믿는 이에게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도 내 마음이 전달되지 않을 테니까. 장애인의 형제인 비장애형제는 형제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미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외면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왜 장애형제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외면하느냐고 묻고 싶지 않다. 그것은 비장애형제자매들 각자가 생존하기 위한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에게 말해 본다. 우리의 삶은 우리들의 것이기에 사랑도, 미움도, 슬픔도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가보자고.


*글= 겨울



겨울에게는 발달장애를 가진 한 살 차이의 여동생이 있다. 정신적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청년들의 모임 ‘나는(It's about me!)’의 운영진으로 활동 중이며, 책 <나는,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의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정신적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청년들의 모임 ‘나는(It’s about me!)’은 2016년 비장애형제들에 의해 만들어진, 비장애형제를 위한 모임이다. 자조모임, 스터디, 세미나 등을 통해 비장애형제를 비롯한 장애인 가족의 건강한 삶을 모색하고 있다.

http://www.nanu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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