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메재단 두 번째 시작
“장애청년의 자립을 돕는 푸르메마을 사업으로 제2의 도약을 꿈꿉니다”
어린이재활병원을 설립해 도움을 넘어 장애어린이들의 미래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던 푸르메재단. 이제는 재활을 넘어 장애청년들 스스로 돈을 벌어 일상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자활을 목표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1. 우리 병원이 올해 건립 3년차를 맞이합니다. 전반적인 조직 규모도 크게 늘었는데요. 그동안의 성과를 평가하신다면?
시민 1만 명의 나눔과 기업의 사회공헌으로 기적처럼 문을 열었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감개무량합니다. 병원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안정적인 운영의 틀을 갖추는 과정도 무척 어려웠는데, 그동안 열정을 바쳐 노력해온 재단과 병원의 임직원 모두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현재 우리 병원은 직원 140여 명이 하루 300명의 장애어린이를 대상으로 800건의 치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24시간 입원병동 40명, 6시간 낮병동 65명의 아이들이 집중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국내 유일의 어린이재활병원이다보니 어린이의 35%가 경기도를 비롯한 지방에서 가족과 떨어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6개월에서 1년 반씩 치료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실정입니다. 가급적 어릴 때 시급히 치료를 받아야 재활의 효과가 큰데, 대기하느라 지쳐가는 부모님의 심정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우리 병원은 당초 예상했던 목표 이상으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은 장애어린이가 연인원 약 10만 명이나 됩니다. 이 중에서 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에 해당하는 경우가 5.7%에 이릅니다. 우리 병원은 약 2,500명의 저소득층 장애어린이를 대상으로 치료비 약 5억5천만 원을 감면했습니다. 우리 아이들, 특히 가정 형편이 어려운 장애어린이들은 우리 병원이 아니면 치료받을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우리 병원의 존재 의미가 한층 빛나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활치료가 절실한 장애어린이들에게 훌륭한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Q-2.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병원을 모델로 전국 각지에 어린이재활병원을 짓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지요?
그렇습니다. 알다시피 우리 병원은 국내 유일의 어린이재활병원으로서 정부와 시민사회, 장애인, 기부자 등 여러 주체가 주목하는 국가적 모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인 2017년 2월에 우리 병원을 찾아 세 가지 말씀을 남겼습니다.
먼저, 우리 병원이 시민 1만 명의 기부로 지어진 것은 하나의 기적이자 한국사회가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제가 “지방에 사는 꼬마들이 우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느라 ‘재활 이산가족’이 발생하는 만큼 지방에도 어린이재활병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전국에 권역별로 어린이재활병원을 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 병원은 적자가 30억 원을 넘고 앞으로도 운영이 쉽지 않을 텐데 이는 국가적인 문제이므로 정부 차원의 지원을 부탁했고 “임기 내에 방도를 찾겠다”면서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이 시민들의 기부금만으로 온갖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우니 국가가 책임 있는 역할을 맡겠다”고 말했습니다.
재활치료의 보험수가가 너무 낮은 점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국민의 세금 부담과 연관된 문제이므로 장기적으로 해법을 찾아보자”고 당부했습니다. 모든 문제가 일거에 풀리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장애어린이 재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권역별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등 정책 현안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Q-3. 앞으로는 장애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푸르메마을 건립사업에 힘쓰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푸르메재단이 설립된 취지는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장애어린이를 잘 치료해서 우리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과 푸르메재활센터를 시민의 힘으로 세우고 국가적인 본보기로 제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생애주기별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과천시와 종로구에서 장애인복지관을 수탁해서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특히 올해는 한국 지역사회 복지계의 모델이 되고 있는 시립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까지 운영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온 중요한 기관이어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푸르메재단의 강점인 재활의료 역량을 결합시킨다면 시너지가 일어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재활 이후의 단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재활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답게 자립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삶일 것입니다.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잘 받고 청년으로 성장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마땅한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부모는 장애가 있는 자녀를 일평생 돌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그분들의 말이 얼마나 절박하게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장애청년이 자립의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을 더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Q-4. 제2의 도약을 위한 큰 사업이 될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구상하고 있습니까?
장기적으로 가칭 푸르메마을을 세우려고 합니다. 생산 기능을 중심으로 문화와 힐링이 결합된 일자리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퇴근이 가능한 수도권에서 각종 생산시설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부지를 마련하려고 자치단체들과 협의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1차 산업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쾌적한 환경 속에서 어렵지 않게 일할 수 있는 직무를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작은 규모의 스마트팜으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스마트팜은 첨단 IT기술과 작물 재배를 결합시킨 차세대 농업모델입니다. 높은 생산성과 관리의 용이성으로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고, 대규모 스마트팜을 지어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건립 중인 자립형 스마트팜 공동체마을이 눈여겨볼 만합니다. 현재 스마트팜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재배기법 등 전문지식을 보유한 여러 기관과 협의 중입니다. 중소규모 사업계획을 올해 안에 구체화시키고 부지를 확보해서 내년 중에 건립할 계획입니다.
사실 장애청년의 일자리로 가장 적합한 모델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 만만치 않습니다. 지역사회와 다채로운 방식으로 공존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합니다. 마땅한 전례를 발견하긴 어렵지만, 푸르메재단은 늘 그래왔듯이 우직하게 길을 내면서 나아가려고 합니다. 스마트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여기에 2차 가공사업과 3차 서비스사업까지 결합시킨 푸르메마을 건립을 2020년쯤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존 일자리 사업도 확장할 계획입니다. 푸르메재단이 그동안 SPC그룹과 손잡고 행복한베이커리&카페 6개점을 만들고 운영해왔는데요. 커피 판매가 중심인 기존 매장과 달리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제빵기능까지 갖춘 정식매장을 사회적기업 형태로 오픈하려고 합니다. 매장 1개당 장애청년 일자리가 3배 이상 늘어나게 되는데, 이런 매장을 향후 10년간 매년 한두 곳씩 새로 내는 방식입니다.
Q-5. 푸르메재단이 수많은 기부자의 나눔으로 여기까지 왔고, 또 그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기부자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푸르메재단은 2005년 설립 이후로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임직원의 헌신적인 노력, 재활치료의 중요성에 대한 효과적인 캠페인도 큰 몫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리를 믿고 한결같이 응원해준 기부자들 덕분이었습니다.
기부자 명단을 볼 때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구나 싶어서 뭉클해집니다. 이렇게 10년 이상 꾸준히 기부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이야말로 푸르메재단이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믿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최근에 기부단체들과 관련된 부정적인 소식들이 잇따랐습니다. 우리 기부자들은 사회 분위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분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각종 이슈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됩니다. 기부자의 높은 신뢰를 등에 업은 만큼 더 열심히, 더 투명하게, 더 고민하면서 일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외형적으로 큰 사업을 일으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낸 기부금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일상적인 소통과 교감을 강화하겠습니다.
Q-6. 기부자들의 기대와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우리 푸르메 구성원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요?
책상 두 개로 시작한 푸르메재단이 불과 10여년 만에 산하기관 10개를 아우르는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직원 수만 해도 470여 명에 이릅니다. 한국사회에서 NGO가 이토록 급격한 성장을 이룬 사례는 찾기 어렵습니다. 외부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적입니다. 앞으로 어떤 성취를 내놓을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부적으로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고 조직을 단단히 다지지 못한다면, 외형적인 성장만을 추구한다면, 사상누각처럼 무너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얼마나 성장했고 어떤 사업을 펼치는지보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자정능력을 갖추었는지, 시스템이 견고한지가 더 중요한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성찰과 각성입니다.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비영리 부문 역시 우리사회의 각종 현안과 맞물려 돌아갑니다. 책을 읽을 때나 여행을 다닐 때도 연구하고 학습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조직이 커지고 관료화할수록 도전적인 자세, ‘한번 해보자’하는 열정이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밝은 눈으로 새로운 흐름을 포착하고 좋은 점을 받아들여서 자기 업무와 조직 운영에 접목시키면 좋겠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토론해서 우리만의 길, 우리만의 전통을 만들어갑시다.
*글= 정태영 기획실장
*사진= 푸르메재단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