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졸업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에다가 대학교 4년까지 마쳤다. 졸업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쓴 아들은 너무나 화사하고 예뻐서 아무라도 붙잡고 자랑하고 싶은 지경이다.(여학생들 졸업가운에 어울리는 흰 리본을 파는 아주머니들만이 아들의 미모를 알아채고는 번번이 아들에게 리본을 사라고 붙잡았고, 착한 아들은 하마터면 리본을 살 뻔 했다.)
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졸업식장에 선 아들을 보며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이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했을까. 좋은 시절에서 빠져나오는 아련한 상실감, 이런 걸 녀석은 느꼈을까. 어쨌든 인생의 어떤 단계가 끝났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게다. 다음 단계는 아직 진입하지 못한 채로. 그래서 그런가, 아들은 B형 독감에 걸려 졸업식 날부터 열흘 넘게 길게 앓았다.
아무튼 장하다. 16년씩이나 학업을 수행했으니 참으로 애썼다. 어미로서 뭐라 할 말이 없다.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할 따름이다. 16년 가운데 앞선 12년은 아들에게 지옥이었으리라. 어미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는 그 지옥에다 아이를 세웠었다. 그러니 오늘은 작정하고 반성문을 써본다.
지옥에서 보낸 길고 긴 한 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들은 졸지에 자신을 지옥에다 떨궈놓고는 교실 창문 밖에서, 운동장 구석에서, 교문 앞에서 멍하니 기다리고 있는 엄마의 야속한 얼굴을 보게 되었다. 소음에 가까운 온갖 소리가 난무하는 것을 들어야 했고 영문도 모른 채 일정한 행동을 강요받았으며,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또래 집단들의 괴롭힘을 당했다.
이름이 있는데도 ‘애자’라는 별칭으로 불렸고, 언제나 예상치 않은 시간에 예상치 않은 곳에서 주먹과 할큄과 고함과 욕과 야유와 물건과 쓰레기가 날아들었다. 교실의 좁은 통로를 걷다가 ‘친구’가 슬그머니 들고 있던 대못에 종아리를 시뻘겋게 베이기도 했고, 커터 칼의 위협도 상존했다. 아이의 신발주머니는, 가방은, 체육복주머니는 교실을 날아다니다가 교실 뒤편에, 청소함 속에, 복도에, 화장실에 처박혀 있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분풀이는 제 필통 속 연필들을 몽땅 부러뜨리는 것과, 공책을 찢고 구기는 것이었는데, 야속한 어미는 그 때마다 다독이는 척하면서도 그것은 못난 짓이라고 나무랐다.
체육시간에는 아이의 머리꼭대기와 목덜미에 모래를 한 움큼씩 뿌리는 놀이를 즐기는 ‘친구’들이 있었고, 땀으로 범벅된 머리카락 속과 등짝에서 괴롭히는 모래 때문에 아이는 온 몸을 비틀며 앉아있어야 했다. ‘친구’들은 그걸 보며 즐거워했다. 체육준비실에 끌려가서는 몹쓸 괴롭힘을 당했고, 아이는 일기장에 학교에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썼다.
중학교에 가서도 여전히 화장실에 갈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강제로 문을 열어젖히거나 위에서 물이나 쓰레기를 뿌려대는 통에 화장실 가는 게 무서웠다. 어미는 교사들에게 하소연했으나 짓궂은 아이들의 장난을 일일이 따라다니며 막을 수는 없는 일이라는 딱한 대답을 들었다. 어찌어찌해서 교실에서 멀리 떨어진 교사용 화장실을 쓰도록 허락받았지만 그도 편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는 화장실에 대한 강박이 커져서 지금도 밖에 나가면 화장실부터 확인하고, 수시로 화장실에 들락거리느라 고속버스를 절대 못 탄다.
아이의 물건은 늘 그렇듯이 화장실에, 화단에, 복도에 처박혀 있었고, 점심시간에 줄을 서면 아이 앞으로 수많은 ‘친구’들이 당연한 듯 끼어들었다. 수업시간에 뒷머리를 낚아채이는 바람에 소리를 지르면 아이들은 합창을 하듯 그 소리를 따라 흉내 냈고, 화를 내면 무시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 직접적인 폭력은 줄었지만 무시와 경멸과 따돌림이 이어졌다.
아이는 일 년에 몇 번씩 학교 사물함에 있는 모든 물건을 때려 넣은 무거운 가방을 낑낑거리며 메고 와서 현관에다 내팽개쳤다. 다시는 학교 따윈 가지 않겠다며. 가방을 열어보면 필통은 깨져있고 연필은 토막 나 부서졌으며 공책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어미는 다음날 새 필통과 새 공책을 넣은 가방을 메어주었고, 아이는 가방을 메고 등교했다.(절대로 그 다음날 가방을 메어주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두고두고 무한 미안하다.)
딱한 어미는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교사들을 찾아다니며 사정하고, “교사로서 어려움이 많아요, 어머님이 잘 하셔야 해요”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들으면서는 비굴한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학부모들에게는 “아이들이 짓궂어서 그러는 걸 어쩌겠느냐, 자기방어력을 키우시라”는 소리를, 아이들에게서는 “장난을 받아주지 않고 이상한 반응을 해서 어쩐지 밉고 싫어서 그런다”는 당당한 항변을 들으면서도 당신들이 이해해 주면 안 되겠냐고 굽실거렸다.
딱 한 번, 당신네 아이들 때문에 우리 아이의 사회성 훈련과 치료에 악영향을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는 편지를 써서 담임교사에게 맡긴 적이 있었다. 그 다음날, 괴롭히던 아이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심지어 어떤 아이가 “나는 너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라는 말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기가 막혔다. 이놈의 사회란 어쩌면 이렇게 속속들이 저열하단 말인가.
어미는 대체 무엇과 타협했던 것일까
내 아이에게 통합교육이란 이런 곳이었다. ‘친구’들에게 괴롭힘과 무시와 멸시와 배제와 냉정함을 당하는 교실에 고통스럽게 앉아 있는 것이 통합교육이었다. 그 교실에 아이를 12년을 앉혀두었다. 극단적으로 파국이 나지는 않았기에 그저 한 해 한 해 버텨보자 했다. 특수학교도, 도움반도 적합하지 않았던 자폐3급인 아이는 사회성 훈련이 중요하고, 그 아이가 편입되어 살아갈 사회란 어차피 그다지 친절한 곳이 아닐 것이기에 어렵지만 통합학교‧통합학급에서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어리석은 생각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그 생각 때문에 아이는 겪을 필요가 없는 일, 겪으면 안 되는 일을 겪었다. 아이를 위해 그 잔인한 교실 말고 다른 곳을 찾아 나섰어야 했다. 대안학교가 어렵다면 홈스쿨링을 해서라도 그 잔인한 교실을 떠났어야 했다. 그렇지도 못한다면 날마다 학교에 찾아가서 항의하고 소리치며 내 아이의 등 뒤에서 파수꾼이 되었어야 했다. 내 아이에게 맞는 개별화된 교육과정을 찾아내서 요구하고 관철시켰어야 했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장애 인식교육과 인권교육을 받도록 했어야 했다.
12년 동안 날마다 아이는 어떤 심정으로 가방을 메고 등굣길에 나섰던가. -나는 도저히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왜냐면 장애인이라서.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괴롭히거나 모른 체 한다, 왜냐면 내가 장애인이라서. 세상은 나를 이렇게 대접한다, 왜냐면 내가 장애인이라서- 어미는 이미 장애인이라는 분류로 대접받아 너덜너덜해진 아이에게 앵무새처럼 세상에 장애인이라는 종족은 없다고 입바른 말만 했지 아이 손을 잡고 그 무지와 무례를 돌파해주지 못했다.
나는 대체 무엇과 타협했던 것일까. 어떤 비겁한 핑계를 댔던 것일까. (기껏해야 내가 한 일이란, 아이가 점심시간에 여전한 새치기를 당하던 끝에 보온병을 복도바닥에 집어던졌는데 그것이 튀어 올라 학교 유리창을 깼다는 말을 듣고는 너무나 통쾌해서 ‘내 새끼, 잘했다’고 속으로 박수를 친 일밖에 없다.)
모든 교육은 통합교육이다
통합교육이란 말은 우습다. 굳이 통합이란 말을 붙이지 않아도 교육은 통합교육이다. 아이들을 그저 한 공간에 넣어두고 통합이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나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 모두 의미 있어야 한다. 그런 교육적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곳으로 아이를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
특수학교를 세우기 위해 무릎까지 꿇어야 했다는 사건은, 오히려 이 땅의 통합교육이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누군들 내 집 앞 학교를 보내고 싶지 않으랴. 그럼에도 특수학교라는 곳에 보내야 하는 현실적 절박함이 있다. 특수학교가 이슈가 되면 통합교육이 뒷전으로 밀린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의 우리 아이들이 통합교육을 위한 투사로 도구로 나서야 하는데 그건 또 아니지 않나.
통합학교냐 특수학교냐의 논쟁은 불필요한 소모다. 교육은 당연히 통합이어야 하고, 특수학교가 통합교육을 가로막거나 뒤로 밀리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현실에서 특수학교는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다만 통합교육의 원칙이 모든 교육현장에서 자연스러운 환경이 된다면 특수학교 또한 자연스런 환경 속의 일부가 될 것이다. 교육형태의 다양성 차원에서 포용될 것이라는 말이다.
요컨대 통합교육이라는 이념을 갖되 다양한 형태의 여러 학교 학급 모델을 갖는 것이다. 지역 내에 다양한 학교가 실험되고 구현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통합교육의 이상이 아닐까. 특별한 시설과 특별한 과정이 있는 특수학교도 있고, 완전통합교실과 개별교실이 섞여 있는 통합학교도 있고, 모든 교실이 통합교실인 학교도 있고, 그 모두를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는 교육환경, 이것이 통합교육의 이상이다. 이것이 저것을 배제하고 저것이 이것을 배제하는 구조가 아니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본다.
뭣이 중헌디, 우리 아이들이 그 안에서 존중받으며 의미 있는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다는데. 뭣이 중헌디, 장애가 있건 없건 모든 아이들이 품위 있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품격 있는 시민으로 성장한다는데.
덧붙이기
오는 3월 5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에서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통합교육을 위한 정책 요구안을 낸다. 나는 손팻말을 들고서 내 아이에게 빚진 12년을 곰곰이 생각할 것이다.
*글=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김종옥은, 가끔 철학 인문학 관련 책을 쓰지만, 가장 쓰고 싶어 하는 SF소설은 아직 쓰지 못했다. 가끔 인문학 강의도 하고 지역 내 마을사람들 일에 두루 참견하며 바쁜 척하고 지내고 있다. 쓰임과 즐김이 있는 좌파적 삶을 살고 싶어 하며, 매일같이 세월호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지은 책으로 <철학의 시작> <처음 만나는 공자> <공자 지하철을 타다(공저)> <장자 사기를 당하다> <지구는 생명체가 살만한 곳인가>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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