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이동
보통 사람들은 ‘여행’이라는 행위를 두고 ‘떠난다’고 표현한다. 여행을 ‘한다’라고 말하지 않고 왜 ‘떠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까. 국어사전에서는 여행(旅行)을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을 가는 일”이라고 한다. 즉, 여행이라는 행위에서 공간의 이동이 매우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여행을 한다고 표현하기 보다는 ‘여행을 떠난다’는 표현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왜 보통 사람들은 여행이라는 행위를 생산적이라고 여기지 않고 사치나 유희, 혹은 일탈 행위로만 간주하는 것일까. 일상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일탈’이라고 하는데 일탈이 꼭 나쁘거나 비생산적인 행위인 것일까. 그렇다면 다가오는 ‘추석’은 일상인가 일탈인가. 많은 사람들은 명절 혹은 휴일을 평소와 다른 테마가 있는 시기로 인식한다. 추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귀성길에 오르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년 반복되는 명절이 일상 같겠지만, 귀성길조차 오르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행렬 자체가 즐거운 일탈일 수도 있다. 특히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귀성길은 매년 반복되는 정례적인 연중행사가 아닌 고향을 갈 수 있는 특별한 기회로 인식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이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각인해야 한다.
매년 꽃피는 4월이면 버스를 타게 해달라는 장애인의 목소리에 사회 전체에서 이목을 집중한다. 일 년 중 한 달여 남짓 집중되는 관심 속에서 몇 년째 장애인의 시외 이동권 보장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이동권은 장애인 복지의 발달과 함께 일정 부분 발전을 이뤘다. 버스, 지하철, 택시, 항공기, 자가용 등 여러 측면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물론 과거와 비교하자면 나름의 성과가 분명 존재한다. 10여 년 전부터 저상버스가 도입되어 도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내버스의 일정 비율이 저상버스로 채워지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작년 기준 전체 시내버스의 약 38%가 저상버스로 도입되었다. 물론 목표한 50%를 달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전국에서 저상버스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반면, 소규모 단위의 지자체에서는 저상버스가 한 대도 운영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나라의 장애인 이동은 여.전.히 부족하다. 버스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승강기도 없던 지하철 역사에 승강기가 생기기 시작했고, 택시를 탈 수 없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특별 교통수단과 자가운전을 돕는 기술의 발전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은 열악한 수준이다. 가끔 장애인 여행에서 무엇이 가장 힘드냐는 질문에 ‘이동의 연계성 부재’라는 답변을 한다. 짧은 한마디로 함축해서 언급하였지만, 이 글자를 뜯어서 꼬집어본다면 우리나라 장애인 이동권 발전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반영하며, 이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자가용을 권장하는 사회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무엇일까. 주로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의 경우 ‘버스’ 혹은 ‘지하철’이라고 대답하는 반면, 일반적인 경우에는 ‘자가용’이라는 대답을 흔히 한다. 실제로 경기연구원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민의 62.1%가 도내 주요 통근 교통수단은 ‘승용차’라고 답했다(아시아뉴스통신, 2017.8.3). 자가용의 편리성 때문에 보편적인 교통수단으로 발전했다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지만, 자가용 운전이 불가능하여 그 편의성조차 누리지 못하는 집단이 있다면 과연 자가용을 권장하는 것이 옳은 사회인지 의문을 던져봐야 할 것이다.
특히 자가운전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이나 노인의 경우 자가용보다 대중교통이 더 절실하게 필요할 수 있다. 최근 미디어에서 신체반응이 느린 노인 운전 안전사고를 집중 조명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 중 신체 기능이 저하된 경우 취득한 면허를 반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형성되고 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면허를 반환하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렇다면 자가용을 포기한 그들이 어떤 교통수단을 사용하도록 사회가 준비되어있는지는 논의해본 적이 없다. 즉, 편의성과 효율성을 앞세워 교통약자의 이동 문제를 면밀히 살피지 않는 사회 구조가 사실은 가장 큰 문제이다.
둘째는 이동의 연계성 부재이다. 이동 연계성 해결을 위해서는 대중교통의 발전이 핵심적이다. 필요에 따라 장애인이 자가운전을 하는 것은 이동성을 폭발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자가운전이 가능하면 시내와 시외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동의 단절을 쉽게 경험하지 않게 되며, 이동의 연계성이 부재하다는 것 역시 크게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장애 유형이나 신체 상황에 따라서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이동의 연계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버스와 지하철을 타다가 환승하여 택시를 타는 과정이 순탄하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출발지점에서부터 도착지점까지의 이동 경로를 머릿속에 한번만 그려봐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예컨대, 2018년 3월 동계 패럴림픽이 열리는 평창에서 산수유 축제가 펼쳐지는 전라남도 구례로 가고자 한다면 장애인은 어떤 경로로 이동해야 할까. 머릿속에 물음표로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다. 비장애인의 경우 평창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환승을 한다면 구례 버스 터미널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반면 장애인의 경우 고속버스를 탑승할 수 없기에, 평창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 다시 KTX를 타고 구례역으로 가서 그 곳에서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된다. 그러나 특별교통수단 차량이 많지 않을 경우 상당시간을 대기해야 할 수도 있고, 어떤 지자체의 경우 지역 주민이 아닌 경우 특별교통수단 이용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산수유 축제에 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것이 장애인 이동 연계성의 현실이다.
셋째는 비용 효율성만 따지는 대중교통 발전 방향이다. 현재 준공영제로 운영되고 있는 버스나 코레일 철도는 매년 적자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매년 적자를 면하기 위해서 감차를 하거나 인원을 감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보니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요구하면 항상 ‘비용’이 없다는 대답을 꺼내놓기 바쁘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장애인들은 적자가 수익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적자의 문제와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를 동일선상에 놓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 필자는 몹시 불쾌하다. 적자는 운영상의 문제인 것이고, 장애인의 이동권 확보는 운영 적자와 별개의 문제로 더 심도 있게 다뤄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는 ‘대중교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한다. 살아오면서 단 한번이라도 버스나 택시, 기차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해보지 않은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국민의 발로서 공공성을 가지고 그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대중교통인데, 장애가 있는 국민에게는 왜 발이 되려고 하지 않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장애인 여행이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가장 근원적인 ‘이동권’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장애인이 여행하기 좋은 나라는 결국 그 나라의 이동 수준과도 맥이 닿는 부분이다. 특별히 여행이라고 해서 장애인 여행자에게 더 나은 교통수단을 요구하거나 보장하지 않는다. 즉, 그 지역의 장애인 혹은 그 국가의 장애 시민들이 이용하는 이동 수단을 여행자들이 잠시 빌려 쓸 뿐이다. 그렇기에 장애인이 여행하기 좋은 나라라고 표현되는 경우에는 대개 장애인의 이동권이 상당 부분 발전해 있었다.
대개 사람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이동을 하며 산다. 현대사회에서는 더 방대한 이동이 가능하도록 버스, 철도, 항공, 선박 등의 다채로운 이동수단이 확보되었는데, 그러한 이동수단을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쉽게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공평하지 못한 사회이다. 교통의 문제, 이동의 문제를 비용이나 경제적인 논리에서만 생각한다면 장애인의 이동권은 매우 더딘 속도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중교통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공공성’이니만큼, 교통은 국민의 보편적 복지를 위한 정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글, 사진= 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
홍서윤은 장애인여행작가이자 현재 한양대학교 관광학 박사에 재학 중이다. “당신이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나도 갈 수 있다”는 생각. 장애인 여행이라고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장애인만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장애인도 함께하는, 모두를 위한 여행(Tourism for All)이 뿌리내리길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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