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사에서
남도 여행길에서 만난 호사
어린 시절, 학교의 소사아저씨가 비오는 날 하늘로 올라 용이 되려는 이무기를 삽으로 쳐서 떨어뜨리는 바람에 소풍날마다 비가 온다는 저주(그리고 그 소사아저씨는 대체로 한쪽 다리를 절었다!)를 꼭 믿었던 건 아니지만, 아무튼 강렬하게 각인된 그 추억 덕에, 나는 어른이 되고도 되도록 간절히 바라는 일은 오히려 잊어버린 듯 짐짓 외면하는 척하는 유치한 습관이 생겼다. 살다보면 벼르고 벼르던 일은 그르치기 십상이고, 오히려 준비 없이 불쑥 나서야 이룰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사실도 그 연장선상에서 깨친 진리다.
이렇게 서두가 장황한 건 자랑질의 효과를 배가하기 위해서이다. 다름 아니라 가족과 함께 템플스테이를 해보는 것도 그렇게 외면하듯 갖고 있던 소망이었는데 우연히 기회가 생겼다는 말이다. 여행! 촛불과 함께 주말을 기록하고, 졸지에 가짜뉴스 감별하는 일까지 보태져 피곤에 찌든 시민의 일상을 털어버리는 신통약은 여행 말고는 없었다.
산사의 겨울 끝자락, 남도의 이른 봄기운을 함께 누려보자며 가방을 대충 꾸려 나선 김에 덜컥 예정에 없던 템플스테이까지 하게 된 것인데, 아름답고 오래된 겨울 산사에서의 템플스테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겨울산을 내달리는 차가운 바람소리, 계곡물소리, 부지런한 새소리에다 온 산천을 채우는 저녁 법고소리, 범종소리가 어우러진 소리의 향연이 있었고, 차밭을 지나오는 샘물마다는 그 맛이 향기롭고 달았다. 이부자리만 있는 선방에 누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래된 문이 삐거덕거리며 사람 오가는 소리, 멀리 고양이 싸우는 소리를 듣다가 별빛 아래 잠드는 호사를 누렸다. 바람이 불어서, 바람이 머물러서, 바람이 적당해서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다.
예정 없이 불쑥 산사에서 묵자고 하는 바람에 입이 댓 발 나왔던 아이들은 어쩐 일인지 저녁 법고 연주 때부터 불평이 사라졌다. 스님의 차 대접을 받으며 대책 없이 졸기도 했지만, 발바닥이 아프다면서도 고무신을 신고 소리죽여 화장실을 다녀오고, 군소리 없이 자리끼 물을 뜨러 샘물가에 다녀왔고, 새벽 5시에 먹는 아침공양에는 심지어 미리 가서(!) 듬뿍 담아 맛있게 먹어치우기까지 했다.(솜씨 좋은 공양보살님께 감사를...) 지난 저녁에 온 산을 울렸던 법고소리는 겨울바람과 어우러져 계곡마다 머물며 내려앉았다가, 아침 종소리에 새들을 감아돌며 다시 일어났다.
불편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침 산책을 마치고 나서 잠깐 툇마루에 걸터앉아 공들여 건사해 온 오래된 절집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우리 한옥이 몸이 불편한 이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곳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었다. 안팎으로 문지방들은 높았고, 부엌 바닥은 움푹했고 다락은 높았다. 몸 가벼운 아이가 아닌 다음에야 뒷간 쓰기도 여간 어렵지 않았을 게다. 부질없이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눈을 감고 예전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러고 있자니 이내 웃음이 나왔다.
내가 불편했겠구나 하고 느꼈던 것은 지금 입장에서 보아 그런 것이다. 굳이 지체장애를 가진 이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그리 살았을 거고, 그들이 느낀 불편함이란 게 어금버금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름대로 불편하지 않으려고 무언가 조금씩 고치기도 하고 그냥 적응하기도 하고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세상이 그보다 훨씬 덜 불편한 세상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을까. 긴 계단, 육중한 회전문, 장애 배려 없는 차들 천지인 지금의 이 세상 말이다.
전철역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고, 공공화장실마다 장애인용 화장실을 만들었다고, 전철에 장애인석을 만들었다고, 사업장에 장애인의무고용제가 있다고 해서 예전보다 훨씬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가졌다는 건, 당사자와 그 가족이 감수해야 할 일종의 당연한 패널티 같은 걸로 간주되고 있다. 사회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사회보장, 사회복지를 말하면 일단은 생산성 없는 투자인 양 아까워한다. 요컨대 떠맡기 싫은 짐이라는 것이다. 졸지에 짊어지기 싫은 짐이 되어버린 장애인은 그 근거 없는 모멸, 염치없는 배제와 싸워야 한다.
왜 하필이라고 말하는 사회
장애학생 의무교육은 고등학교까지인데도 지금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특수학교를 세우는 데도 일년이고 이년이고 끝없이 싸워야 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지역주민이 반대한다는 게 그 이유다. 비용이 들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국가란 권력층을 만들고 무기를 만들라고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들어진 구조다. 지역 국회의원까지 합세하는 지역주민의 반대란 한 마디로 이런 것이다. 왜 하필 우리 동네냐. 심지어는 화장터, 방사능폐기물 저장소에 빗대면서까지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고, 내 재산을 목숨 걸고 지키겠다는 사람도 있다. 목숨은 재물 따위에 거는 게 아니다.(게다가 목숨을 걸지 않아도 통계상 유의미한 폭락은 없다.) 장애학생이 즐겁게 다니는 배움터가, 그 아름다운 곳이 마을에 있는 게 왜 ‘하필’이라는 부사를 붙여가면서 밀쳐내야 하는 일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유치원에 가려고 하면 왜 ‘하필’ 우리 유치원이냐 하며 거절하고, 학교에 가면 왜 ‘하필’ 우리 애 다니는 학급이냐고 항의한다. 체육시간에 한 팀이 되면 왜 ‘하필’ 우리팀이냐고 억울해 하고, 특수학교를 세우면 왜 ‘하필’ 우리 동네냐고 막아선다. 믿기 힘든 말이지만 자기 아이가 장애를 흉내낼까봐, 장애에 오염될까봐 싫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가 이렇다.
이 속에서 장애를 가진 내 새끼가 숱하게 밀쳐지고 동네북인양 괴롭힘을 당하고 조롱받고 무시당한다. 그 궁극은 야멸찬 배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이걸 온몸으로 느낀다. 장애를 가졌으니 감수성이 둔할 거라고 생각해서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이유다. 뭔가 납득이 안 되는 낯선 세상 속에 있는 우리 아이들은 그 불안감으로 해서 주변의 배제와 무시를 더욱 날카롭게 느낀다. 어미의 눈에는 그게 보인다. 내 아이의 가슴에 푹푹 꽂히는 얼음칼들이. 그래서 어미들은 참을 수 없는 것이고, 참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장애란 무엇인가에 대한 ‘벌’이 아니지 않은가.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데 대한 ‘대가’도 아니다. 인과응보도 아니다. 경쟁해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갈 능력이 부족하고, 사회도 아직 그런 기회를 꼼꼼하게 마련하지 못했는데, 이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는 게 그렇게 아까운 일인가.
달리 말해서, 제 곁에서 누군가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고 살아가는 꼴을 보는 게 그리 좋은 일이겠는지.
이러구러 흥분해서 내달리다보니 그만 헛헛하다. 맑은 바람이 부는 절집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어울리지 않는 상념이 너무 길었다. 그러기에는 겨울 끝 바야흐로 언 땅이 녹으려는 찰나의 아침이 아까운 일이다. 범종이 들짐승 날짐승 땅짐승을 깨운 지도 한참이고, 누군가 쑥스럽게 웃으며 뒷간을 오간 지도 한참이다. 동안거를 풀고 떠난 스님들이 거처하던 선방 윗담을 따라 오래된 차밭을 지나 편백숲에 가서 앉은 그네를 타며 오전을 보낼 터였는데, 그만 내 안에서 속세의 거친 투사가 불쑥 튀어나와 버렸으니 헛웃음이 나온다.
산책길에 찻방 스님이랑 올 3월 25일날 피기로 철석같이 약속했다던 매화가 속절없이 그만 꽃망울을 몇 개 터뜨린 걸 보았다. 세상일이란 이런 것이다. 다시 도깨비의 말을 빌리자면, 기다릴 때 때맞춰 와서, 기다릴 때 오지 않아서, 기다릴 때 미리 와버려서 모든 날이 찬란한 것이다.
우리들에게 우리 아이들도 이러하다.
# 또, 사족
이 좋은 여행 호사를 끝내 못 참고 우리 열다섯살 소녀와 다섯 여인의 나들이모임에다가 자랑질했으니, 단박에 다음 나들이는 산사체험이 되겠다. 절집이 깃든 산의 적막을 우리 소녀가 망아지처럼 깨울 것이고, 스님들은 한동안 발달장애를 화두로 무언가 생각하게 되실지도 모를 일이다.
*글=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동작지회장)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김종옥은, 가끔 철학 인문학 관련 책을 쓰지만, 가장 쓰고 싶어 하는 SF소설은 아직 쓰지 못했다. 가끔 인문학 강의도 하고 지역 내 마을사람들 일에 두루 참견하며 바쁜 척하고 지내고 있다. 쓰임과 즐김이 있는 좌파적 삶을 살고 싶어 하며, 매일같이 세월호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지은 책으로 <철학의 시작> <처음 만나는 공자> <공자 지하철을 타다(공저)> <장자 사기를 당하다> <지구는 생명체가 살만한 곳인가>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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