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간의 일본 여행기

장애인이 살기 좋은 국가를 꼽자면 어디가 있을까. 장애인이 거주를 희망하는 곳으로 유럽국가 다수, 캐나다, 일본을 꼽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만이 거의 유일하게 선진적인 장애복지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소문 나있다. 나 역시 지체장애인으로서 일본의 복지시스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직접 일본을 여행하며 그들의 장애복지시스템을 체험하고 싶었다. 결국 계획 끝에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 지난 12월, 3박 4일간 오사카를 여행하였다.


▲ 오사카 남바 거리
▲ 오사카 남바 거리

여행을 떠나기 전, 우선 오사카에서 방문하고 싶은 여행지들을 중심으로 각종 장애혜택에 대한 사전조사를 시작했다. 또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카드가 한글만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외국에서 장애인으로 배려받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므로 가까운 동사무소에 방문해 영문 장애인 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영문 장애인 서류는 대다수의 장애인 여행객들이 쉽게 포기하고 마는 사안이다. 한국에는 아직 영문 장애인복지카드가 없기 때문에 관련 서류 역시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운 동사무소에 방문하면 동사무소 관계자의 자필로 작성된 ‘영문 장애인 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물론 그 임시등록증의 효력이 해외에서 얼마나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출국을 앞두고 있다면 이 증명서를 발급받기를 권장한다.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동사무소에 다녀오고, 동사무소 직원도 잘 모르는 영문 장애인 등록증 간이 서류를 같이 찾느라 함께 헤매면서 절실히 느낀 것은 하루빨리 국내 장애인 유학생, 여행객 등을 위한 ‘영문 장애인 복지카드’가 발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준비해야 할 것은 비행기 탑승 과정에서 장애인과 동반 보호자가 함께 나란히 앉을 수 있을지에 대해, 또 비교적 앞좌석에 배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점이었다. 이번 여정지는 인천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날아가는 일본이어서 부담이 적었지만, 최소 다섯 시간 이상 비행해야 할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동반자가 옆에서 수시로 건강상태 등을 체크하며 함께 동행해야 혹시 모를 건강상태와 비상사고에 따른 대처 등을 계획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저가 외국항공사의 경우에는 좌석을 지정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추가금액을 내야 하므로 선뜻 요금을 내면서 동반 좌석을 지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여행을 앞둔 장애인과 동반보호자는 반드시 해당 항공사에 미리 전화해 동반석으로 배려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미리 상황을 설명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경우에는 출국 당일, 인천공항 해당 항공사 카운터에 미리 도착해 관계자 분께 상황을 설명해드렸고 또 같이 붙어있는 좌석으로 배정받을 수 있었다.


만반의 여행 준비 끝에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하였고, 밤 10시 40분 경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했다. 문제는 입국한 외국인들끼리 입국심사를 받는데, 줄이 너무 길어 그 복잡한 열 사이에 간신히 서있기도 너무 벅찼다. 한국의 경우에는 장애인과 그 보호자가 따로 입출국 수속을 밟을 수 있도록 전용 심사창구가 따로 설치되어 있다. 일본에서도 혹시 장애인을 위한 입국 심사 창구가 따로 있을지 몰라서 입국 사무소에 찾아갔다. 내가 장애인임을, 또 지금 장시간 서있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먼저 알렸고 입국 심사를 장애인 창구에서 받을 수 있을지 여쭤보았다. 처음에 이들은 공항 내 장애인 창구가 오직 일본 자국민 장애인을 위한 창구임을 알려주었고, 나는 단념했다. 다시 입국심사를 받으러 돌아가던 길에 그들이 다가와 장애인 창구에서 입국심사를 진행해주겠다고 했다. 결국 장애인 창구에서 입국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일본으로의 입국을 계획하고 있다면, 공항 입국심사과정에서 본인이 장애인임을 알리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참고했으면 한다.


공항에서의 모든 절차를 끝내고, 간사이 지하철을 타고 숙소에 도착해 잠들고 나서 다음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먼저 대중교통요금이 비싼 일본에서 장애인 요금감면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궁금했다. 사전 여행 준비 중 한국 인터넷에서 찾아본 바로는 감면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고, 반드시 일본 장애인수첩이 있어야지만 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정확한 정보가 없어 우리는 일본 지하철 역사무소에 찾아가 영문 장애인등록증과 장애인복지카드를 함께 보여드리며 요금 감면에 관하여 문의했으나, 일본 장애인수첩이 있어야만 요금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관계자의 답변을 듣고 역무소 밖으로 나왔다.


지하철 티켓을 발권하고서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았는데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이 높은 위치와 낮은 위치에 나란히 있었다. 아마 혼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 혹은 키가 작은 사람들을 배려하여 성인 위치에 버튼 하나, 또 그 아래에 버튼 하나를 나란히 디자인해놓은 것으로 보였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키가 작은 나에게 굉장히 편안했고 손쉽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역내 화장실에 반드시 낮은 위치의 개수대가 하나씩은 설치되어 있었다. 지체장애인 혹은 어린 아이들이 개수대가 너무 높아 손을 씻기 어려울 일이 없었다. 지하철역 내에 골고루 장애친화적 유니버셜 디자인이 잘 적용되어 있었다. 또 리프트를 거의 찾아 볼 수 없었고, 승강장까지 가는 엘리베이터가 대부분 설치되어 있었다.


▲ 장애인을 배려한 엘리베이터 버튼
▲ 장애인을 배려한 엘리베이터 버튼

다만 모든 부문에서 일본이 우수한 것은 아니었다. 먼저 지하철 내 스크린도어가 없어 몇 달 전 용산역 시각장애인 승강장 추락 사고가 떠올랐다. 실수로 발을 잘못 딛는다면 크게 위험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기도 했다. 또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는 굉장히 빨리 닫혔다. 한국의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배려해 반드시 2~30초가량 문이 열린 채로 유지되고 나서야 닫히는 안전한 시스템이다. 여기에 적응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본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문이 너무 빠르게 닫혀서, 보행이 느린 노약자들로서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을 여행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을 위한 낮은 높이의 ATM 등이 다 설치되어 있어 전반적으로 선진적인 장애친화적 환경과 시스템을 지녔음에도 굉장히 자국민 중심의 한정적이고 폐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장애인이기 이전에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선진적인 장애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못한 대부분의 이유는 내가 일본 장애인으로 등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장애정책은 한편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다. 일본 지하철 역사무소에서 장애인 신분으로 티켓팅을 하려는 과정에서 정중하게 영문 장애인 등록증과 한국 장애인 복지카드를 건넸음에도 철도 관계자는 시큰둥하게 읽다가, “나니고레[이건 뭐야].”라고 말하며 짜증을 냈다. 그러다 연신 “노! 노! 노!”만을 외치며 나를 창구 밖으로 얼른 내쫓았다. 이 과정에서는 모욕감을 느끼기도 했다. 마치 장애를 빌미로 그들에게 각종 혜택을 구걸하는 것으로 비추어졌던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일본 장애인수첩’이 없다는 이유로 나를 정중하게 거절할 법도 했는데, 짜증나는 듯 외국인 관광객에게 이건 뭐냐며 짜증을 낼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본다.


이처럼 사전 인터넷 조사를 통해 장애인 혜택 등을 각 일본 홈페이지에서 찾아 갔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장애인수첩’이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야경을 보러 간 시내 전망대에서도 매표 과정 중 ‘일본 장애인수첩’이 없기 때문에 장애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이들 공식홈페이지에는 ‘일본 장애인수첩’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을 뿐더러 오직 장애인을 위한 혜택만을 영어로 명시해놓았을 뿐이다. 나는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한국도 이렇게 외국인 장애인을 냉대하고 있을까. 막연한 판단이지만 아마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전반적인 장애복지 환경은 일본보다 잘 되어있지 않을지언정, 담당기관 관계자들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도와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의 장애시스템은 거의 오직 ‘일본 국적의 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이었다.


장애인이기 이전에 외국인이라는 것은 외국 생활을 하는데 있어 치명적으로 보였다. 3박 4일의 여행 기간 동안 나는 ‘장애인등록증을 지니지 않은 외국인’ 정도였다. 따라서 외국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을 대다수 받을 수 없었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여행객으로 방문한 내가 일본의 모든 것을 다 판단하기에는 무리일 수도 있지만, 일본 관계자들이 ‘장애인수첩’을 근거하지 않고 나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사람 대 사람으로서 판단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아쉬움이 너무도 컸다. 매뉴얼에 의존하지 않은 인권친화적 가치로서 말이다.


▲ 오사카 우메다
▲ 오사카 우메다

이번 여행을 통해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로 혹시 장애인 복지카드를 소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혹은 장애등급 등을 이유로 차별받고 있는 내외국인 장애인이 있다면, 이들을 안아줄 수 있는 전반적인 장애 인권교육과 보완할 수 있는 관련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국경과 국적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국제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미래에는 자신의 장애를 증명서로 증명하지 않고도, 또 국적 등의 제한을 받지 않고도, 모든 장애인들의 인권적 가치를 세계 어디에서나 동등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로 발전할 수 있기를 더욱 바라게 되었다.


+ 끝으로 단지 3박 4일만의 일부 지역을 여행한 경험만으로 일본의 전반적 장애정책에 대한 소감과 평가를 말하는 것은 주관적 경험에 의존한 잘못된 지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앞서 나의 여행소감과는 다른 긍정적인 장애인을 위한 편의 제공을 받은 여행객, 유학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한 경험을 한 독자 여러분들의 지적을 언제나 환영한다. 나 역시 일본이 국내외 장애인들에게 모두 차별없이 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국가이기를 손꼽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글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우리말로 된 장애인 해외여행과 관련한 정보가 너무도 전무한 상황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사전 지식들과 또 경험을 근거로, 향후 여행을 계획하는 장애인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향후 더 많은 정보가 모일 수록 국내의 장애인들이 다양한 출국 관련 정보와 소식을 공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글, 사진= 변재원 작가










변재원 작가는 1993년 10월 30일생으로 생후 10개월에 불의의 의료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있으며,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칼럼들을 기고하고 있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회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꿈.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존레논과 아웅산 수지 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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