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타고 떠나는 수원화성 여행

[경계없는 탐방]


 


진정한 여행은 발견하는 것이다.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간다. 낮선 여행자의 발길이 닿으면 싱싱한 경험들이 펄떡이기 때문이다. 낯선 길을 떠날 때마다 천국을 만난다. 여행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데 묶어 놓은 실타래 같다. 낯섦을 익숙함으로 품으러 오늘도 길 위의 천국으로 발길을 돌린다.


가을이 익어갈 무렵 전철을 타고 무작정 떠나본다. 발길을 옮긴 곳은 1호선 수원역. 수원은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이 있는 곳이다. 수원화성은 정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명물로 대대손손 길이 남을 소중한 장소이다.


▲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수원화성은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수원화성은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수원역에서 내려 건너편 버스승강장으로 간다.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행 버스를 탄다. 북문까지 가는 버스는 많기 때문에 특별히 어렵지 않게 버스에 오른다. 몇 정거장을 지나니 장안문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수원에는 저상버스가 많고 기사들도 매우 친절하다. 기사님이 장안문 앞에 버스를 세우고 리프트를 내려 주신다. “다 왔습니다, 손님. 장안문입니다. 여기서 내리시는 거 맞죠?” 친절한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넨다.


장안공원으로 더 잘 알려진 장안문은 성곽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성곽 밖은 돌담으로 잘 조성된 공원으로 여행객에게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북문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내내 그 웅장함과 위용에 주눅이 든다. 북문을 통과하니 성의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화성은 예부터 지금까지 성곽 안에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한다. 옛 모습 그대로의 민가는 아니지만 성 안에 주민이 살고있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북문을 통과해 행궁(行宮) 쪽으로 향한다. 행궁은 왕이 지방에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곳이다. 행궁 앞에 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의 모습을 한 마네킹이 관광객을 맞는다. 신풍루를 지나 궁 안으로 들어간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는 마음이 얼마 컸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화성을 만들고 그 안에 행궁을 만들어 아버지의 넋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애썼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행궁을 나와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한 낮의 기온은 후덥지근하고 수직으로 내리는 햇살은 눈이 부시다. 가벼워진 발걸음을 재촉한다. 서장대로 가는 길 곳곳에 화성을 아끼고 알리고자 했던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동장대(연무대)로 가기 위해 대천을 건너 화홍문 쪽으로 올라가니 조금 가파른 길이 나온다. 화성박물관으로 가는 길도 있지만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을 보고 가야하기 때문에 이 길을 선택했다.


▲ 수문인 화홍문 바로 옆에 위치한 행궁 벽화마을은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 수문인 화홍문 바로 옆에 위치한 행궁 벽화마을은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우선 방화수류정에 들렀다. 방화수류정은 국내의 사진작가들이 찾는 필수 코스로 그 명성이 높다. 사진을 찍을 때는 해질녘과 해뜨기 30분 전부터 자리를 잡고 일몰과 일출 시간을 기다려 작품을 건져내야 한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방화수류정은 화홍문 뒤쪽에 자리한다. 화홍문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미술작품을 연상시킨다. 지금도 화홍문 아래 대천에는 광교산에서 흐르는 물길이 통과한다.


▲ 아름다운 정취에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방화수류정
▲ 아름다운 정취에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방화수류정

연무대로 발길을 돌린다. 연무대는 활을 쏘는 장소이다. 지금도 국궁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어 화랑들의 솜씨를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국보인 동북공심돈이 있다. 동북공심돈을 보기 위해 성곽을 따라 올라간다. 수원화성에서 유일하게 휠체어로 올라갈 수 있는 곳들 중 하나이다. 동북공심돈의 자태를 가까이에서 보니 얼마나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는지 감탄사가 절로 쏟아진다. 동북공심돈은 노대의 서쪽으로 60보쯤 되는 거리에 있다.


▲ 휠체어로 올라가 관람이 가능한 동북공심돈. 화포를 쏠 수 있도록 원통형으로 축조되었다.
▲ 휠체어로 올라가 관람이 가능한 동북공심돈. 화포를 쏠 수 있도록 원통형으로 축조되었다.

동북공심돈에서 동문인 창룡문을 지나 동포루에 이른다. 동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의 동일치와 동이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인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포루는 모두 벽돌로 만들어졌고 안을 비워 위와 아래에서 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휠체어로 성곽을 갈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다. 다시 내려와 봉돈(봉화) 쪽으로 간다. 봉돈 쪽으로 가는 길목의 왼쪽에는 성곽이, 오른쪽에는 민가가 있다. 이 길의 끝은 계단으로 돼 있어 더 이상의 접근이 어렵다.


그래서 서장대로 향한다. 가는 길에 화성홍보관에 잠시 들린다. 화성과 관련된 각종 전시와 교육 등을 하고 장애인 관광객을 위해 전동휠체어와 수동휠체어를 무료로 대여해 주는 곳이다. 또 화성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해 휠체어 보행이 자유롭다.


수원시의 대표적인 축제인 수원화성의 정조대왕 능행차도 체험할 수 있다. 정조의 효심이 깃들어 있다. 능행차에는 관광객도 전통복장을 입고 연무대를 시작으로 동문지구대, 남향동사무소앞 매향교, 행궁광장, 신풍로까지 참여할 수 있다. 이밖에도 행궁 광장엔 무예24기 공연이 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오전 11시 행궁 신풍루 앞에서 펼쳐진다. 토요 상설공연과 장용영 수위식 광장기획공연, 궁중문화축제 등 화성은 볼거리, 느낄거리, 체험거리 등 오감을 만족하는 체험거리들로 가득하다.


▲ 빨간 가마모양의 화성열차를 타면 수원화성을 한 바귀 돌아볼 수 있다.
▲ 빨간 가마모양의 화성열차를 타면 수원화성을 한 바귀 돌아볼 수 있다.

행궁 광장을 지나 서장대로 올라간다. 서장대는 팔달산의 정상에 있다. 굽이굽이 산길처럼 휘돌아 올라가야 한다. 경사가 급하고 높아서 보조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서장대에 오르니 수원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오른쪽으로 경기도청이 있고 왼쪽으로 경기대와 성 내부의 모습이 살아 움직인다. 한참을 머물며 발 아래의 세상을 관망해 본다. 티끌처럼 작은 세상이 속절없고 덧없게 보인다. 무엇 때문에 발버둥치며 아등바등 살아가는지 아득하게 느껴진다.


▲ 밤에는 조명이 비추고 있어 운치있는 야경을 자아내는 수원화성
▲ 밤에는 조명이 비추고 있어 운치있는 야경을 자아내는 수원화성

아득한 세상으로 다시 내려온다. 서문 쪽의 이름 없는 주막에 들러 동동주 한 사발에 도토리묵을 시켜놓고 세상의 시름을 잊어본다. 주인장이 세심한 배려와 후한 인심을 덤으로 얹어준다. 달짝지근한 동동주 한 모금에 금세 취기가 돈다. 어둠이 내려앉은 수원화성은 황금성이 되어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 채 밝게 웃는다.



가는 길

• 지하철 1호선 천안행 승차, 수원역 하차

• 수원역 광장 건너편에 장안문이나 행궁으로 가는 저상버스 승차 (행궁이나 장안문 가는 대부분의 버스가 저상버스임)

• 수원역 북측 : 11번, 13번, 13-3번, 36번 39번. 화성행궁 하자 후 3.0km 거리

• 수원역 건너편 : 60번, 66번, 660번, 66-4번, 7번, 700-2번, 77-1번, 82-1번. 화성행궁/장안문 하차


화성여행휠체어동선

• 장안문(장안공원) → 방화수류정 → 화홍문 → 연무대 → 동북공심돈 → 창룡문 → 봉돈 → 화성박물관 → 행궁

→ 홍보관 → 서장대 → 화서문 → 주막 → 팔달문

• 참고 : 화성열차를 이용해도 위의 코스대로 여행할 수 있다. 요금은 천원(할인 적용), 전동 휠체어 두 대 탑승 가능


장애인화장실

• 행궁 앞 공중화장실, 연무대 앞 공중화장실, 화성박물관 내, 장안공원, 서장대 오르는 길 중간


먹을거리

• 화서문 앞 이름없는 주막, 화성사랑채 내, 사랑채 뒤편 먹자골목, 행궁광장 내

• 참고 : 휠체어가 접근할만한 곳이 많으니 골라먹는 재미를 즐겨보자.


잠잘 곳

• 수원화성 홍보관 뒤 화성사랑채 유스호스텔 www.sarangchae.org (편의시설 완비)


문 의

• 다음카페, 휠체어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글, 사진= 전윤선 여행작가










전윤선 작가는 지체장애 1급으로 휠체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합니다. 한국장애인문화관광센터(휠체어배낭여행) 대표로서 인권•문화 활동가이자 에이블뉴스 '휠체어 배낭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BS 3라디오 '함께하는 세상만들기, 휠체어로 지구한바퀴'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자유롭고 즐거운 여행길을 안내하기 위해 오늘도 전국을 누빕니다.


“신체적 손상이 있든 없든, 사람은 자유롭게 이동하고 접근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길 원한다. 손상을 가진 사람이 이동하고 접근하는데 방해물이 가로막지 않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나의 동그란 발은 오늘도 세상을 향해 자유로운 여행을 떠난다. 자유가 거기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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