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없는 탐방] 울릉도 우산국을 찾아서①
긴 시간을 만들어 동쪽 맨 끝자락 울릉도를 찾았다. 묵호에서 배타고 3시간 30분, 거리로는 161km다. 그토록 먼 뱃길을 열고 우리 땅 울릉도 도동항에 썬플라워 2호는 닻을 내렸다.
▲ 울릉도로 가는 길 썬플라워 2호를 타다
울릉도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들리면서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왠지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워낙 먼 뱃길을 달려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울릉도를 여행하기 위해 많은 정보를 취합했다. 숙박에서부터 이동 접근까지 기존의 여행보다 훨씬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해야만 했다.
울릉도행 뱃길은 여러 방향이 있지만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겐 포항이나 묵호에서 출발해야 한다. 강릉항과 울진후포 항에서도 울릉행 여객선은 출항하지만 배 안의 편의시설이 변변치 않아 불편하다. 그렇게 준비한 울릉도가 눈앞에 다가왔다. 여객선 터미널에 내리니 여행객을 맞으러 피켓을 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 도동항 근처 해양경찰서 내 장애인 화장실 | 드디어 울릉도에 왔다는 흥분과 안도감으로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 사내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울릉도에 온 걸 환영합니다. 숙소 직원인데요. 마중 나왔어요.” 사내는 반갑게 인사하며 일행을 안내하게 시작했다. 우선 화장실부터 들러야 했다. “여기 장애인 화장실이 있나요. 급한데요.” 사내는 새로 지어진 건물로 안내했다. “도동항에서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 저기 해양경찰서 건물인데요, 거기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요.” 사내가 안내하는 데로 신축건물로 이동해 볼일을 마쳤다.
급한 용무가 끝나고 나니까 그제야 도동항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동항은 병풍처럼 둘러싼 산이 항구를 감싸안은 것처럼 아늑했다. 태풍이 온다해도 큰 어려움 없이 도동항과 마을을 지켜줄 것 같았다. |
포항과 묵호에서 출발한 관광객들을 가장 먼저 반겨주는 곳이 이곳 도동항 입구다. 도동항에 들어서면 왼쪽의 망향봉이 오가는 이를 맞이한다. 특히 만남과 이별의 숱한 이야기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서있는 도동항의 수령 이천년 된 향나무가 인상적이다.
도동 지명의 유래는 ‘도방청’이란 말에서 시작됐다. 사람이 많이 살며 번화한 곳이란 뜻을 의미한다. 고종 때 울릉도에 개척령을 발포하면서 개척민에게 면세 조치를 내리자 점점 사람들이 입도하기 시작했다.
처음 개척민들이 울릉도에 들어와 보니 제법 시가지의 모습을 이루고 있어 이곳을 도방청이라 불렀다. 울릉 8경 중에는 도동모범이라 해서 도동항의 석양 무렵에 오징어배가 출어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 도동항의 낮과 밤 풍경
그러고 보니 도동항엔 차량들로 뒤엉켜 있고 무리마다 피켓을 보고 일행을 찾아서 차량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도동항 주변은 경사가 급한 언덕과 좁은 골목으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사내를 따라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항구에서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삼층 건물에 턱이 없고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최신식 건물이다. 여행 전 울릉 군청 사회복지과에 전화를 걸어 휠체어가 접근할 만한 숙소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니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숙소엔 정감 가는 아주머니가 우릴 반겼다. “하고야 이 먼데까지 우예왔노, 이 전동차 타고왔노, 장하데이, 이걸 타고 여그올 생각을 다했으니 올매나 장하나.” 투박하지만 살가운 말투에 더욱 마음이 가벼워졌다.
“여그가 도동항 근처에서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가 있고 턱도 읍는 호텔이데이.” 호텔이라고 하지만 모텔급 숙소다. 숙소 입구엔 턱이 없고 엘리베이터가 있어 우린 삼층 객실로 갔다. 삼층 객실 입구에도 턱이 없다. 그런데 휠체어가 한 대가 들어서니 너무 좁다. 침대는 더블이지만 워낙에 방이 좁아 혼자서 겨우 움직일 수 있다. 할 수 없이 방을 하나 더 써야 했다. 다행이 일층에 빈 객실이 있어 따로 방을 쓰라고 했다.
▲ 입구에 턱이 없고 엘리베이터를 갖춘 숙소
짐을 풀고 나와 허기를 채워야 했다. 울릉도까지 왔으니 이곳만의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주인아주머니께 울릉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다. 쥔장은 울릉 근해에서 채취한 홍합을 넣은 홍합밥을 권했다.
그런데 문제는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식당이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가만 있어봐라, 우야노 여그가 워낙에 경사지대라 턱이 있는 곳이 많데이~ 골목 쩌쪽 끝에 보믄 그 끝에 홍합밥집이 유명하고 맛난데이. 근데 턱이 약간있데이. 주인한데 살짝 들어달라케라~.” 숙소 안주인은 나긋나긋한 경상도 사투리로 친절하게 식당까지 섭외해준다.
그리고 울릉도에 왔으니 이곳만의 먹거리까지 추천해 준다. 친절한 쥔장은 식당까지 안내 해준다고 따라나선다. 따라나서겠다는 사장님께 미안해서 극구 사양했다. 그리곤 골목을 따라 일러준 쪽으로 갔다.
점심도 점심이지만 새롭게 다가온 섬인 울릉도에 대한 기대감으로 배고픈 것도 잊고 있었다. 한참을 둘러보는데 휠체어가 접근할만한 식당이 없다. 죄다 턱이 있고 배가 들어온 시간이라 식당마다 여행객으로 북적됐고 자리도 나질 않았다.
▲ 도동항을 감싸고 있는 산세
한참을 서성거리다 보니 시장기가 몰려왔다. 식당을 찾아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숙소 주변을 한 바퀴 빙 돌다보니 어느새 도동항으로 다시 내려오게 됐다. 도동항 근처 몇 곳은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식당이 있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메뉴를 보니 해산물을 이용한 메뉴들로 가득했다. 쥔장에게 울릉도에서 가장 맛있는 메뉴가 뭐냐고 물었다. 쥔장은 울릉도 삼해밥이라고 하며 이 집에만 있는 메뉴라고 한다. 삼해밥은 전복, 소라, 홍합을 넣고 갖은 야채를 잘게 썰어 압력밥솥에 바로 만들어 내는 밥이다. 밥을 바로바로 해서 시간이 걸리지만 음식은 시간이 걸려도 정성으로 조리한 음식이 보약이 된다고 한다.
이십분쯤 지났을까 삼해밥의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며 식탁 위에 세팅됐다. 삼해밥은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색깔 또한 입맛을 자극한다. 양념을 한 간장을 밥 위에 넣고 젓가락으로 비볐다. 비비는 동안 입안에 침이 자꾸 고인다. 정신없이 먹다보니 사진 찍는 것을 깜빡했다. 몇 수저 먹다 말고 사진을 찍고 다시 먹기 시작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독도행 배를 알아보기 위해 여객선 터미널과 갔다. 여객선 터미널은 항구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구에서 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지금 도동항 여객터미널은 새 단장을 하고 있는 중이어서 임시로 터미널을 옮겨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 도동항 주변 싱싱한 어시장
전동휠체어로 도동항 근처를 둘러보니 이곳 주민들에게도 새로운 볼거리인가보다. 스치는 사람마다 말을 건넨다. “이 먼 곳을 우찌왔노, 기특하데이.” 주민들에게 눈인사를 건내며 터미널로 발길을 이어갔다. 터미널은 비교적 한산했다. 독도행 표를 끊는 동안 안내원은 독도행 배가 출발하는 저동항까지 가는 길을 일러준다.
독도로 가기 위해서는 사동 항에서 배를 타고 가야한다. 도동항에서 사동 항까지 5km 정도의 거리지만 산길을 달려서 가야한다. 울릉도엔 장애인이 이용할만한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저동항까지 전동휠체어로 걸어가야만 한다. 초행길이라 미리 사동항까지 답사도 하고 섬 여행도 할 겸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울릉도 지형상 구불구불한 길의 연속이고 관광객이 이용하는 차량들로 좁은 도로가 더욱 복잡하다. 할 수 없이 사동항까지 가는 길을 포기하고 다른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리곤 근처 전망대로 발길을 이어갔다. (다음 편에 계속)
• 가는 길
묵호여객터미널에서 오전 8시 20분 선 플라워 2호 출발
요금은 복지할인적용 우등석 왕복 5만7천원/일반석 5만4천원
묵호여객터미널, 대아여객 대표전화 1544-5117 (홈페이지 www.daea.com)
• 먹거리
홍합밥, 삼해밥, 활어 및 해산물, 호박막걸리, 울릉한우, 피데기(반건조오징어)
도동항 식당 054) 791-8948
• 장애인화장실
도동항 해양경찰서 내
• 잠자리
에이스 호텔 054) 791-1090
대야 리조트 054) 791-8800
• 문의
휠체어 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글, 사진= 전윤선 여행작가
전윤선 작가는 지체장애 1급으로 휠체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합니다. 한국장애인문화관광센터(휠체어배낭여행) 대표로서 인권•문화 활동가이자 에이블뉴스 '휠체어 배낭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BS 3라디오 '함께하는 세상만들기, 휠체어로 지구한바퀴' 코너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자유롭고 즐거운 여행길을 안내하기 위해 오늘도 전국을 누빕니다.
“신체적 손상이 있든 없던, 사람은 자유롭게 이동하고 접근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길 원한다. 손상을 가진 사람이 이동하고 접근하는데 방해물이 가로막지 않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나의 동그란 발은 오늘도 세상을 향해 자유로운 여행을 떠난다. 자유가 거기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