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높이로 공을 던져라

농사와 공부의 공통점은 흘린 땀의 결과가 정직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평생 농사를 지으며 다섯 자녀 모두를 의사와 약사로 키워낸 분이 있습니다. 바로 황보태조 선생님입니다. 그 분에겐 색다른 이력이 있습니다. 13년 전, 자녀 교육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쉽고도 재미있게 풀어 낸 책 <꿩 새끼를 몰며 크는 아이들>(올림 출판사)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셨고 200회 넘는 강연회에 초청되기도 하셨습니다. 특별한 교육법을 ‘파종’해서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냈고 이제는 그 열매를 ‘수확’하여 사회에 나누고 계신 것입니다.


▲ 황보태조 선생님이 최근 발간한 두 권의 책 <가슴높이로 공을 던져라> 아이를 ‘눈높이’가 아닌 ‘가슴높이’에서 키우는 특별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 황보태조 선생님이 최근 발간한 두 권의 책 <가슴높이로 공을 던져라> 아이를 ‘눈높이’가 아닌 ‘가슴높이’에서 키우는 특별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어린시절의 경험이 낳은 특별한 자녀 교육법


황보태조 선생님의 고향은 경북 포항 구룡포읍의 한적한 시골 마을입니다.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자연을 벗삼아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박사 학위를 딴 자녀들과는 달리 그의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가 전부입니다. 핸드폰도 안 터지는 시골의 평범한 농사꾼. 하지만 황보태조  선생님의 자녀 교육법을 들여다보면 특별하다 못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마흔이 넘어서야 그 사연을 알게 될 정도로 경직된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늘 술을 마시며 화풀이를 하던 할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였고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고 숨죽이며 살아온 어머니는 너무도 왜소했습니다. 눈물이 많고 마음이 여린 소년에게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황보태조 선생님은 아이들이 자신의 우울했던 어린시절을 닮지 않도록 친구 같이 자상한 아빠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애썼습니다.


어린 그에게 학교는 무섭고 가기 싫은 곳이었습니다. 작은 잘못에도 혼을 내고 학생을 배려하지 않는 선생님들 때문이었습니다.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영어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재미있게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공부는 즐거운 놀이


황보태조 선생님은 아이들이 공부를 즐겁고 재미있는 놀이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듣기만 해도 괴로운 ‘공부’가 ‘놀이’로 탈바꿈된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부모가 정해주는 놀이가 아니라 철저히 아이들의 흥미에 맞춘 놀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딸들은 종이 인형에 이름을 붙이는 ‘인형 놀이’로 한글을 깨쳤고 막내 아들은 먹고 싶은 과일이 있으면 말로 하는 대신 종이에 글자를 써서 사 달라고 요청하게 하는 ‘편지 놀이’를 통해 한글을 저절로 익혔습니다. 어렸을 때 몸에 스며든 ‘놀이’는 한글뿐만 아니라 좀 더 커서 한자나 구구단 등을 배울 때에도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슴 높이’ 공부 놀이입니다. ‘가슴 높이’ 교육은 아이의 정서와 욕구를 들여다보고 거기에 눈높이를 맞추어 시작하는 교육입니다.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공은 부드럽게 던져 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또 ‘오늘은 익히고 내일은 잊어버려라’고 얘기합니다. 학생 시절 참고서의 앞 페이지는 여러 번 문제를 푼 흔적이 빼곡하지만 뒤쪽으로 갈수록 깨끗했던 이유. 모조리 외워야 한다는 부담감 탓이지요. 황보태조 씨는 아이들에게 내일은 잊어버려도 되니 오늘만은 재미있게 익히자고 제안합니다. 부담감을 벗어 던진 아이들은 책장 넘기는 즐거움에 빠져들게 되며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부모에 대한 신뢰의 싹을 틔웁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아이들이 신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선생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중학생 때 그의 연설을 들은 한 선생님이 해주셨던 칭찬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입니다. 칭찬 한 마디의 위력을 경험해본 터라 아이들이 공부에 대한 흥미를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칭찬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그는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책맛의 소중함


황보태조 선생님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연속극 천 번을 보는 것보다 한 권의 좋은 책을 읽는 것이 더 낫다”라고 하실 정도죠. 어릴 때부터 책 맛을 알게 되면 그 이후는 문제가 없습니다. 서점에 데려가 책을 읽고 보는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합니다. 아이들이 독서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본보기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는 할아버지가 매운 고추를 잡수시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 따라 먹었다가 매워서 혼났던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처음엔 맵지만 자꾸 먹다 보면 그 맛에 익숙해져서 고추가 있어야만 밥을 먹게 되듯 책 읽는 부모의 모습을 흉내 내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책 맛에 길들여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직접 경험한 체험만큼 책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소나기를 맞아본 사람만이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행간의 의미까지를 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책이 단순히 어떻게 하면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베스트셀러가 되고 수많은 강연회에 초청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만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배우고 성장해 가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뼈있는 가르침이 있기에 그랬던 것이겠지요. 그 좋은 가르침의 씨앗이 이곳 푸르메재단에도 뿌려져서 행복합니다.


결실을 나누는 아름다운 삶


황보태조 선생님은 최근 책의 일부 내용을 보완하고 추가하여 개정판 <가슴높이로 공을 던져라>(올림 출판사) 1, 2권을 출간하였습니다. 그의 교육법이 자녀들에 이어 손주들에게까지 그 효과를 어떻게 발휘하고 있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평소에 출판 인세를 좋은 일을 하는 곳 어딘가에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는 선생님. 그러던 터에 집이 구기동이어서 시내를 나가려면 늘 푸르메재단을 지나가게 되었답니다. 장애어린이의 재활과 자립을 힘쓰는 재단에 힘을 실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출판 인세 2천만 원 전액을 기부하시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지난 10월 8일 황보태조 선생님께서 올림 출판사 이성수 대표와 함께 인세 기부를 위해 재단을 방문하셨습니다. 서글서글한 웃음과 연륜의 깊이를 알 수 있는 이마의 주름이 보는 이의 마음을 넉넉하게 합니다.


▲ 출판 선인세 2천만원 전액을 기부하며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는 황보태조 선생님.
▲ 출판 선인세 2천만원 전액을 기부하며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는 황보태조 선생님.

책 두 권에 친필 서명을 해서 선물해 주셨습니다. 책 표지를 넘기면 ‘이 책의 인세는 장애 어린이의 재활과 자립을 돕는 푸르메재단에 전액 기부됩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자신의 기부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황보태조 선생님. 출판 계약을 맺은 5년 동안 꾸준히 인세를 기부할 예정이라는 약속까지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6월 27일은 생애 가장 잊지 못할 날이라고 하십니다. 이 날은 40년 동안의 빚을 모두 갚은 날이라고 말입니다. 뜻밖의 말씀이었습니다. 13년 전 첫 책을 출간하시면서 다섯 자녀 모두를 수재로 키워낸 성공한 부모이자 성공한 농부로 주목받으셨던 선생님. 그런 분에게 그러한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으실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편안한 노후를 보내셔도 될 듯 싶은데 빚을 갚은 지 채 반 년도 되지 않아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아름다운 나눔의 현장을 목격합니다.


진정한 교육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황보태조 선생님은 ‘한 인간이 고품질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라고 밝힙니다. 지금처럼 경쟁 위주의 교육은 아이들을 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없도록 합니다. 싹이 돋아난 후 적절한 때를 기다려 물과 거름을 주듯이, 아이들이 성장하는 우리 사회의 토양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황보태조 선생님을 통해 좋은 교육은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하는지를 배웁니다.


*글, 사진= 정담빈 간사 (홍보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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