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에서 복귀까지 대구산재병원을 찾아서


병원 모습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김천, 구미, 왜관을 거쳐 남동쪽으로 달리던 자동차가 중앙고속도로를 만나자 이번에는 북쪽으로 내닫기 시작한다.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대구산재병원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이 병원이 칠곡(漆谷)에 들어섰다는 말을 들었지만 칠곡이 어딘지 가늠할 수 없는 나로서는 그냥 경상북도의 외진 농촌지역으로만 짐작했다. 하지만 칠곡 인터체인지를 지나면서 <대구 북구>라고 씌여진 이정표를 보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서울만 무한팽창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구도 최근 20년 동안 인근 달성과 달서, 경산에 이어 칠곡까지 행정구역으로 편입시켰고 지금도 인근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칠곡 인터체인지를 벗어나 10분을 달렸을까. 바둑판처럼 잘 정돈된 논 위로 콘크리트와 유리가 조화를 이룬 4층 건물이 ‘두둥’하고 나타났다. 지난해 4월 세워진 대구산재병원이다. 날렵하게 건물 외벽을 지탱하고 있는 콘크리트 기둥을 지나 현관에 들어서니 먼저 반겨주는 것이 진한 커피향이다. 10년전 만해도 병원을 특징짓는 것은 소독약 냄새와 획일화된 환자복이었는데 어느 순간인가 일반 건물 뿐 아니라 병원 로비마저 커피문화로 대표되는 카페의 입주가 사회적 트랜드를 이루고 있다.



주위풍경



병원 로비


병원로비도 과거 환자와 방문객이 스쳐 지나가는 통로로만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서는 문화와 소통의 공간으로 이해되고 있다. 대구산재병원의 널찍한 로비 중앙에는 단풍나무로 곱게 깐 마루와 조명시설까지 갖춘 평면 무대가 눈에 띈다. 병원 안내를 맡은 김병규 경영기획팀장은 “병원이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곳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와 지역문화의 중심지로 탈바꿈하면서 이곳에서도 환자뿐 아니라 지역주민을 위한 훌륭한 공연이 열리고 있다”고 말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먼저 5층 옥상으로 올라가봤다. 일망무제(一望無際).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였다. 병원 밖으로는 파릇파릇한 벼를 가득 채운 논이 있고 그 건너에는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서있다. 벼가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은 행복할 것 같다. 콘크리트와 자갈, 흙길로 이루어진 옥상 정원 길을 걷다가 행복한 분을 만났다. 휠체어를 타고 온 환자가 파라솔 아래서 열심히 독서를 하고 있다. “보기 좋으니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잘 나오게 찍어달라.”고 쿨하게 대답한다. 불의의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것 같은데 밝은 미소가 보기 좋다. 행복과 불행이 모두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닌가.


어느날 갑자기 장애를 입은 환자들은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라는 절망감과 분노속에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치료를 받고 노력하면 신체기능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과 스스로의 불행을 받아들이는 연습이다. 재활병원의 중요한 역할은 신체기능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치료와 운동이지만 마음속에 '화'를 다스리고 삶에 대한 긍적적인 마음을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행복한 사람



병실 모습


4층으로 내려가니 입원병동이다. 8100평의 대지위에 250병상을 목표로 개원한 대구산재병원은 우선 1차로 180병상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삼각형 평면 구조를 따라 환자 4명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입원실이 외벽을 따라 분포해 있고 중앙에는 간호실이 위치하고 있다. 빈 병실에 들어가 봤다. 4인 병실의 중앙에는 화장실이 있다. 침대사이에는 칸막이 대신 수납장을 설치해 환자의 독립성 보장하는데 신경을 썼다. 모든 병실에서는 대형 창문을 통해 시원스럽게 외부를 조망할 수 있다. 입원실을 나와 복도를 걷다보니 구석에 더블침대가 놓인 작은 방이 하나 있다. 환자를 만나러온 가족이 쉬어가는 보호자실이란다. 환자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이 고마웠다.


그런데 한참 병실을 둘러봐도 보통 복도나 탕비실에서 만날 수 있는 환자 가족과 사설 간병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묻자 김병규 팀장은 “병원이 환자를 치료와 보호를 맡는대신 가족은 생업에 전념하라고 우리는 병원에서 채용한 간병인으로 전문적인 간병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푸르메재단이 2005년 건립초기부터 주장했던 환자중심의 병원, 내 가족처럼 돌보는 병원을 이곳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날 입원환자는 174명. 이중 뇌졸중 환자가 절반을 넘고 있고 산업 현장에서 재해를 당한 환자가 41명, 교통사고환자 12명 등이란다. 환자들은 주로 구미와 김천, 청송 등 대구에서 1시간 내의 경북지방에서 오고 있지만 최근들어 치료를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경남에서도 환자들이 오고 있다. 하지만 장기요양환자라고 해야 3개월 입원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보통 2달안에 퇴원을 한다고 한다.


다른 병원과 비교해 대구산재병원 환자들의 특징은  20대 뇌졸중 환자가 최근 증가하고 있다. 가정과 학교로부터 사회와 직장으로 진출하는 초년병인 20대들에게 취업난과 결혼의 부담 등은 너무 버거운 과제일지 모른다. 이런 물리적인 압박감이 한순간에 분출해 20대 뇌졸중 환자를 양산하고 있다면 우리사회가 이에대한 대안과 처방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잘 짜여진 수납공간



환한 중정 주위로 환자들이 산책한다


3층에 대나무를 심은 중정을 마련해 옥상으로부터 내려오는 햇빛으로 채광을 최대한 고려한 것도 마음에 든다. 그러나 복도를 돌아서니 환자와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는 거실 겸 식당이 나오는데 이곳은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하다. 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환자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을 밝게 만든다면 환자들이 모여드는 살아있는 공간이 될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3층과 4층 복도에는 휠체어와 의료 기구를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이 차곡차곡 배치돼 있다. 병실입구 천정에는 다른 병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중증환자의 보행연습을 돕기 위한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다. 환자가 치료실에서만 운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공간에서 일상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병원의 장점인 듯 했다.


복도와 복도가 만나는 모서리는 죽은 공간이 아니라 환자들이 운동할 수 있는 기구와 테이블이 설치돼 공간을 활용한 것도 돋보인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식당



보행 리프트


널찍하고 환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내려가니 안내데스크를 중심으로 소아재활치료실, 수치료실, 전기치료실 등이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다리를 다친 여성환자가 목발을 옆에 세워 놓고 근력운동을 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허리를 다친 아주머니는 균형을 잡는 기계위에 올라서 윈드서핑을 하듯 유연한 몸짓으로 운동에 열심이다. 이를 반영하듯 이 병원의 환자중 여성비율이 높다고 한다. 보통 재활병원이나 산재병원하면 남성 비율이 훨씬 높은 것이 일반적인 추세인데 지역적인 특색인지, 아님 특별한 요인이 있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이유를 모르겠단다.


그런데 환자중 어린이들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대구산재병원에는 주로 성인장애인을 대상으로 치료하다보니 장애어린이 환자가 20여명 대기해 있고 평균 한달 정도 기다렸다가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전기치료실을 돌아 나오니 본관에 연결한 통로를 통해 별관으로 지은 대규모 강당이 눈앞에 펼쳐진다. 중도장애를 가진 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인 물리치료와 작업치료실을 확보하고 있다. 강당 중앙에 놓여져 있는 매트리스와 평상 위에서는 환자와 치료사가 하나가 되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강당 바깥쪽에는 러닝머신과 운동용 자전거가 놓여져 있는데 아쉽게도 창이 없어서 벽면을 바라보고 운동하는 환자들은 지루할 것 같다. 오히려 실내를 바라보며 운영할 수 있게 배치했으면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균형치료



종합치료실


병원을 운영하는데 어려운 점을 물었더니 역시 재정 문제와 의료진의 수급문제라고 한다. 산재병원 하면 관련부처인 노동부로부터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받을 줄 알았는데 신규 기자재 구입은 지원받지만 운영면에서는 병원이 최대한 자생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산재환자를 도와야 하는 특수 병원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그래도 이 병원이 정부로부터 올해 43억원을 지원받는 것을 감안하면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민간 재활병원과 비교해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강당 치료실 아래는 환자들을 위한 수중재활치료센터. 17mX9m 4개 레인을 갖춘 하이드로싸이클과 수중 트래드밀 등 최신식 장비를 갖추고 있다. 몸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환자가 훨체어와 리프트를 통해 수영장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니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증명하듯 수영장 한쪽에는 풀장에 들어간 환자들이 놓고 간 일반 휠체어와 입욕용 휠체어가 눈에 띈다. 물의 부력을 이용해 걸을 수 없는 환자들이 조금이나마 걸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재활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수중재활치료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덕없이 낮은 치료수가에 비해 전문 수중치료사를 몇사람 고용해야 하고 일정한 수질을 유지해야하는 병원으로서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1층 영상의학과와 진담검사의학과. 64채널의 최첨단 CT와 동상영으로  음식물 섭취과정을 판독할 수 있는 X-Ray, 근골격계초음파진단기 등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최첨단 의료장비들로 구비돼 있다.



수영장



영상장비


대구산재병원을 둘러보며 이제 우리나라의 재활병원도 이만큼 성장했구나 하는 적지 않은 자존감을 가질 수 있었다. 옥에 티라고 할까. 다만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1층 현관 입구 정면에 2층 치료실로 연결되는 계단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계단을 오를 수 없거나 휠체어는 타야 하는 환자들에게 큰 장벽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오히려 1층 측면에 자연스럽게 2층으로 통하는 슬럼프를 만들고 그 옆에 계단을 만들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1층 현관 입구 계단


대구산재병원은 중도에 장애를 얻은 환자에 대한 치료뿐 아니라 독거노인,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무료진료와 국가재난구호 활동, 사회복지시설 지원, 1사1촌 자매결연사업 지원 등 국민을 위한 공공의료기관으로서 다양한 사회공헌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대구산재병원의 문을 나서며 ‘제대로 치료받고 다시 일터와 사회로 돌아가자’는 병원 구호처럼 예기치 않은 불행으로 희망을 잃은 많은 환자들이 이곳을 거쳐 하루빨리 직장과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해본다.


*글=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사진=전승배 기획사업팀 간사










       근로복지공단 대구산재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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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북구 학정로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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