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재활 병원 설립, 그 푸른 꿈을 향해 항해합니다
[행복이가득한집 10호]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백경학 씨
어린이 재활 병원 설립, 그 푸른 꿈을 향해 항해합니다
푸르메재활센터에서 본인이 쓴 책 <효자동 구텐백>을 들고. 개인 회사 넥슨은 기부금과 함께 캐릭터 벽화와 소품으로 병원의 인테리어를 지원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독일 사회 보장 제도와 기부 문화는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질병과 사고로 인한 불행은 국가와 지역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인 까닭이다.” _ 백경학의 <효자동 구텐백> 중에서
“그 사람, 고래 같아!” 캐나다 태평양 연안의 한 해변에서 어린 솔피고래 한 마리가 보트의 프로펠러에 부딪쳐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어른 솔피 두 마리가 잠수해 그 어린 솔피를 끌어 올립니다. 허파로 호흡하는 고래가 수면 위에서 호흡하며 생명을 유지하도록 어른 고래 두 마리가 부상당한 어린 고래를 등으로 받치고 있습니다. 보름 후, 해변의 관광객들이 그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고,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한국의 유명한 고래학자인 故 박구병 교수가 한 기고문에서 고래들의 이러한 이타적 행동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장애 어린이들을 치료하는 푸르메재단의 백경학 상임 이사를 만났을 때, 오랜만에 ‘고래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운명이라는 프로펠러에 부딪쳐 장애를 갖게 된 어린아이의 인생이 무관심 속에 가라 앉지 않고 숨을 쉬도록 떠받치는 일을 그와 재단 직원들 그리고 많은 기부자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수년전 ‘백경학’이라는 개인의 결심으로 시작한 이 일은 세상이라는 관광객들이 소문을 내든 말든 묵묵히 이어져왔고, 드디어 2012년 7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기부 장애인 재활 센터인 ‘푸르메센터’가 서울시 종로구 신교동 66번지에 문을 여는 소중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루 3백 명, 연간 7만 5천여 명의 장애인이, 특히 조기에 치료받을수록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어린 장애아들이 푸르메 센터의 어린이 병원에서 새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우리 엄마 다리가
다시 자랄 거예요
오래전, 신문기자이던 백경학 이사는 언론 재단의 도움으로 가족과 함께 독일 유학을 떠났습니다. 서울시청에서 근무하던 아내와 네 살짜리 딸이 함께한 독일에서의 시간은 내내 행복하고 자유로웠지요. 그런데 1998년 여름, 귀국을 앞두고 떠난 스코틀랜드 여행에서 어느 영국인의 차가 그들의 차를 덮쳤습니다. 다행히 백 이사와 딸은 이내 회복되었으나, 아내는 스코틀랜드 외곽 병원에서 생사를 넘나들었고, 결국 한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지인도 외교부 영사의 친절한 도움도 기대할 바 없던 그들을 재활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유럽 각지의 가톨릭 신자와 유학생들이 기도와 위로로 도왔습니다. 특히 스코틀랜드 병원과 이후 이송된 독일 뮌헨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정성 어린 치료와 시간의 헌신으로 그들을 놀라게 했고, 학생 신분에도 꼬박꼬박 의료보험료를 납입해야 했던 독일 의료 보장 제도의 힘과 보호는 아내를 일어서게 했고, 충격에 빠졌던 남편과 꼬마 아이의 심리와 정서까지 일상으로 데려왔습니다.
“귀국한다고 하자,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만류했습니다. 아내의 다리가 불편해 한국에서는 삶이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이었죠. 보상금을 받으면 호주나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모두들 말했습니다.” 그리운 가족과 입에 꼭 맞는 김치가 있는 한국에서라면 더욱 잘 회복될 수 있으리라 믿은 그들의 기대는 입국과 동시에 현실에 부딪혔습니다. 국내에 재활 병원이라고는 신촌세브란스 병원이 유일했고, 그나마 환자와 보호자로 넘쳐났습니다. 면회 시간 중에 보호자가 환자와 산책하거나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그 외에는 종일 전담 간호사와 치료사가 맡고 퇴원 후에는 가정 보조원까지 파견해 환자의 재활 치료를 관리하던 독일에서의 생활은 사라졌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경제력이 있으면 복잡한 병원에서라도 대기하며 치료를 받지만, 많은 장애인 환자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현실이 10년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지요.
(왼쪽) 병원 대기실에서 치료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백경학 이사.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된 기업가 이철재 기부자(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처분해 푸르메재단에 10억 원을 기부했다.
아내의 기부로 시작된 재단 설립
“재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보호자에게만 맡겨지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세상에 이럴 수 있는가 하는 절망감이 들었어요. 작은 병원이라도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그때에는 땅만 있으면 시에서 지원해주고, 후원이 이어질 것 같았습니다. 의미 있는 일이니까 시도하면 될 줄 알았지요.” 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백경학 이사는 기자직을 내려놓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 맥주를 공부하던 유학생 친구들이 모여 ‘옥토버페스트’라는 마이크로브루어리micro brewery 사업을 준비하자, 그의 취지와 설명을 듣고 59명이 평균 5천만 원을 투자해 28억 원이라는 큰돈이 모였습니다. 다행히 옥토버페스트는 경제 위기, 금융 위기 속에서도 잘 자리를 잡았습니다. 또한 부주의한 운전을 한 영국인 그리고 그의 보험사와 8년간 계속한 소송이 마침내 끝나면서, 아내는 가슴 아픈 보상금 20억 6천만 원을 받아 그중 절반을 재단에 기부했습니다. 여기에 그가 가진 옥토버페스트지분 15% 중 11%를 더해 애초에 계획한 시기에 거의 맞게 푸르메재단 설립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갖춘 거대 기업도 수년이 걸린다는 재단 설립이 하물며 개인에게 녹록할 리 없었습니다. 기자 정신을 발휘해 취재를 하고 완벽하게 준비를 해 찾아가도 담당 공무원을 만나는 것조차 어려웠지요. 하지만 김성수 성공회 주교, 강지원ㆍ박원순 변호사 등 사회 명사들이 백경학 이사의 뜻에 힘을 보태고, 3천 명의 기부자가 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일반 병원보다 적은 월급으로도 기꺼이 헌신하려는 고마운 의료진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푸르메재단과 봉사자를 상징하는 노란 유니폼을 입고 환하게 미소 짓는 백경학 이사.
민간과 정부, 기업의 조화가 필요한 일
“누군가 내게 도움을 청하면, 수중에 있는 것은 내주며 살았습니다. 대학 때 장학금을 받았는데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어 몰래 준 일이 있어요. 그 친구가 지금 우리 재단의 큰 후원자가 되었어요. 작은 베풂이 큰 것이 되어 돌아오고, 우리 사회에는 정말 좋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재단에서 일하며 절감하고 있습니다.” 재활 치료는 특성상 환자 한명에 대한 많은 시간과 노력의 지원이 필요하고, 이 때문에 재활 병원은 적자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푸르메재단 어린이 병원의 경우, 환자가 5천5백 원을 내고 국가가 8천5백 원을 지원합니다. 보통 의사와 치료사가 하루 10명 정도의 어린이를 치료할 수 있으므로, 이를 20일분으로 계산하면 병원의 수입은 겨우 2백80만 원입니다. 그러니 병원이나 기업이 적자 사업을 꺼리고, 바로 이러한 이 유로 우리나라는 OECD 경제 10위의 국가임에도 재활 병원이 턱없이 부족해 응급 환자가 생겨도 찾아갈 곳이 없는 것이지요.
한때 학교 설립에 기부를 많이 하던 미국과 유럽 등지의 부호들은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병원 설립과 그 운영 자금 기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가난한데 아프기까지 한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공평하게 치료받을 기회를 누리도록 병원 운영 기금을 기부하는 것이 복지 국가를 향한 선진국형 노블레스 오블리 주의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푸르메재단의 첫 번째 기부자 모임이 열린 날, 백경학 이사가 고마운 그들을 위해 일일 주방장이 되어 식사를 제공했다.
어린이 재활 병원을 위한 고래의 꿈
“이제 항해를 시작한 푸르메센터 어린이 병원의 적자는 연간 4억 원으로 예상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활동과 아이디어로 지속적인 후원을 이끌어내고, 이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철저하게 외부 감사를 받는 게 푸르메재단이 할 일입니다. 이를 위해 개인과 기업 그리고 정부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요구되는 것이지요.” 장애인 지원 사업의 이러한 적자 구조를 이해하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기부를 실천하는 속 깊은 후원자들이 있어 푸르메재단의 미래는 여전히 밝아 보입니다. “넥슨, 신한 은행, KB국민은행, 삼화모터 스 등의 기업이 병원 설립 자금을 기부해줬으며 조무제 전 대 법관은 은퇴 후에도 매달 수입의 10~20%씩을 모아 1년에 두 차례 보내주십니다. 소설가 故 박완서 선생은 생전 저서의 첫 인세를 보내주셨고, 사후에는 따님들과 소설가 신경숙 씨가 그 뜻을 잇고 있지요. 자녀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금을 모아 아버지와 함께 기부하는 부산대 치과대학의 정태성 교수 가족처럼 ‘기부’ 유전자로 대물림하는 가족도, 자신의 활동으로 더 많은 장애 어린이가 치료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아침 기도하는 가수 션 씨도 참 고마운 분입니다.”
푸르메재단은 이제 더 먼 바다로 항해를 시작합니다. 마포구로부터 상암 DMC 부지 1천 평을 받아 1백 개의 병상을 갖춘, 입원 환자와 외래 환자를 함께 진료할 수 있는 어린이 재활 병원을 설립하는 계획을 세운 것이지요. 푸르메 재단을 방문해보니, 어두운 바다처럼 보이던 우리 사회에도 ‘고래 같은 사람’이 참 많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세상을 향해 숨을 쉴 수 있도록, 조용히 등 위에 아이를 올린 채 쉬지 않고 헤엄치는 우리 사회의 고래들. 매달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시간을 모으고, 아이 책을 읽어주는 재능이라도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 심해처럼 갈 길이 보이지 않던 가슴에 ‘고래의 꿈’ 이 차오릅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저 고래처럼 살면 되는 것이지요. 이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여전히 푸른 것이겠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