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마을 ‘이쁜이네’
사랑과 배려로 만든 아름다운 인연
하루 동안 내린 비만 305mm,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던 작년 7월 25일은 우리복지관이 문을 연지 7일 남짓 되던 날이었습니다.
제가 일하기 시작한 이 곳, 과천에도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우면산 사태, 강남 일대 침수 등 연일 비 피해가 보도되던 그 때. 지금 생각하면 마을과 골목마다 삶의 힘겨운 순간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을 찾아뵙는 일부터 시작하라는 의미의 빗줄기였나 봅니다.
출근 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무슨 동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폭우로 비 피해를 입은 장애인 가정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방문한 곳이 과천동에 위치한 화훼단지, 그리고 과천동 주민센터였습니다.
어디에 누가 살고 계시는지 모르니 동주민센터는 꼭 찾아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주민센터로 가는 길부터가 가장 큰 미션이 되어버렸습니다. 비가 많이 오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일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차량이 통제되고, 곳곳이 물에 잠길 정도였습니다.
정말 어렵게 찾아간 동주민센터는 양수기를 빌리러 온 주민들과 비 피해 현황을 정리하는 직원, 임시 대피처로 들르신 주민들까지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그 가운데 만나게 된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것도 없이 과천동에 살고 계시는 장애인분들 중 안부나 안전 확인 차원에서 꼭 찾아뵈어야 할 곳을 알려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곳이 과천동 경마공원 맞은편에 자리한 ‘꿀벌마을’입니다.
꿀벌마을. 누가, 언제부터 그 동네 이름을 ‘꿀벌마을’이라 붙여주었는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과천에서 ‘꿀벌마을’을 여쭈어보면 모르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꿀벌마을이란 이름이 왠지 마음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찾아가보니 화훼단지로 조성된 비닐하우스 단지가 그곳이었습니다.
주로 화훼단지조성과 재배를 위한 목적으로 비닐하우스가 지어졌지만, 화훼가 아닌 사람이 그 안에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미 마을공동체로서 누구네 집, 어떤 어르신, 어떤 아이하면 알 수 있는 정도로 이웃이 있었고, 마을자치위원회도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요즘 같은 때에 이 정도면 ‘마을공동체’라 하여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꿀벌마을 사람들 중 비닐하우스 주인 또는 토지의 주인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세입자로서 살고 계신 분들이 많고, 저마다 사연들이 있으시다 하십니다.)
빗속에 찾아간 이곳에서 주소는 거의 무의미하였습니다. 동주민센터에서 알려주신 내용으로 동네 분들에게 묻거나 전화 연락드려 구조물을 의지해 찾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비닐하우스를 중심으로 주거지가 형성된 곳이 배수가 잘 될 리 없을 거라는 걱정과 달리 대체로 큰 피해는 없으셨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비 피해 가정은 있었습니다. 하수시설 문제로 물이 역류하여 집안의 짐을 모두 빼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뵙게 된 가정이 ‘이쁜이네’ 였습니다.
‘꿀벌마을 이쁜이네’라는 이름은 마을에 정착한 분들께서 지어주신 애칭입니다. 이쁜이(*글에서는 실명대신 이쁜이로 표현)는 그 가족 중 딸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 경제활동을 못하시고, 어머니 역시 건강과 여러 가지 이유로 아무 일도 못하고 계셨습니다. 이쁜이는 성인이 되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사회활동을 하지 못한 채로 동네와 본인의 제한된 대인관계 속에서만 하루하루의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이쁜이네는 소위 말하는 사회복지서비스 제공 대상자(?)가정으로 분류되어 도시락 배달, 후원품, 이동목욕, 그 밖에 살면서 드러나는 문제마다 기관이나 단체에 도움을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처음 찾아갔던 날도 이미 몇 분이 오셔서 집 주변의 배수작업을 해주고 계셨습니다. 이쁜이는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껏 이쁜이네를 도와 준 사람들마다 선한 마음으로 나눔의 마음으로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방적인 수혜의 관계가 이쁜이네를 복지서비스, 후원의 대상자 또는 이웃 간의 관계, 이쁜이의 강점을 무력화 시켰을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집에 찾아 갔을 때는 집안 곳곳에 물이 들어와 어떻게든 치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밖에는 비가 많이 오고 있어 치울 방법도 없고 해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먼저 이쁜이와 의논해보았습니다.
이쁜이의 삶, 이쁜이네 가족의 집이기에 제가 함부로 ‘이렇게 저렇게 합시다.’ 라고 말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개인마다 그 나름대로의 삶의 방법이 있다는 것은 이론이 아닌 내 삶에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이쁜이는 이번에 비가 잠깐 그치면, 짐을 빼 가구를 말리고, 도배와 장판도 교체하고 싶다 했습니다. 임시로 붕붕도서관(비닐하우스 단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지역주민들이 함께 만든 마을도서관)에서 지낼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비가 그치면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일을 거들어줘도 되는지 물어보았고, 이번에는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꿀벌마을에는 어르신이 많이 계시니까 도와주면 좋겠다는 대답을 확인했습니다.
드디어 이쁜이네 집에 수해복구활동이 계획 되었고, 푸르메재단, 우리복지관의 직원들과 봉사자들과 함께 이쁜이네를 도왔습니다.
이쁜이네는 낯선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 이것저것 치우는 순간을 잘 참아준 것 같았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당사자 집의 일을 거들어 줄 때 마다 신경이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필요한 말이 전해지지 않을지… 내부 환경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당사자의 격(格)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당사자와 그 가족이 심기불편해지지 않을지…
그 날은 모두가 힘을 합하여 큰 짐을 옮기고, 냉장고 정리며, 식기들 정리하는 것 까지도 너무 늦지 않은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사흘 안팎으로 몇 차례의 도움의 손길이 오갔고, 이내 이쁜이네도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단 직원들이나 우리복지관 직원들, 복구활동에 참여해 준 봉사자들도 낯선 환경에서 일을 하기가 어색하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 여전합니다.)
그 해 여름, 폭우가 제게 남겨 준 것은 꿀벌마을 사람들과의 인연입니다. 어려움과 문제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살아가며 당연히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쁜이가 가족의 어려움과 문제를 호소할 때 마다 당면한 어려움과 문제를 집중해서 보기보다는 귀한 만남이니 인격을 세워 의논하고 싶었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모든 문제에 대해 대신 해결주거나 자원 동원하여 당사자의 복지 대행해주는 역량도 없을뿐더러 앞으로 이쁜이네와 그렇게 관계하다가는 ‘문제’로서만 만날 구실이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쁜이네 생기는 현실적 어려움에 장애인복지관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아한 시선도 있었을 것입니다.)
몇 개월이 지나 이제 이쁜이네와는 꿀벌마을을 오갈 때마다 인사하며, 여러 일들도 의논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쁜이 어머니가 편찮으셔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도 병원비를 후원금으로 마련하기보다 이쁜이네 가족의 관계로서 해결하고, 이쁜이 스스로 문제와 어려움을 상관하게 하거나 꿋꿋하게 극복해나가는 순간을 응원해주고, 지지해주었습니다. 가족의 어려움을 낯선 사람이 해결해 준 것이 아닌 스스로 해결해내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며, 함께 의논해고 고민해주어 고맙다고 퇴원하는 날 어머니와 이쁜이로부터 듣는 영광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만한 자격도 처지도 안 되는 사람인데, 그 날은 이쁜이네가 삶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자주하고, 주체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이쁜이네와의 관계 속에서 재활의원 이일영 박사님께서는 직접 댁에 방문하시어 이쁜이 아버지께 재활운동에 대한 의지를 심어주셨고, 그래서 지금은 우리복지관 의료재활팀장님의 도움으로 일주일에 한 번 재활운동도 하고 가시며, 이쁜이는 이제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뵈며 안마로 그 시간과 힘을 나누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회적일자리 성격으로 마련된 일에도 당당히 서류전형과 면접과정을 마친 뒤, 현재는 매일 출근하여 ‘장애인생활도우미’로서 일도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장애인복지관으로 교육을 받고 오는 버스 안에서, 이쁜이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선생님, 교육 잘 받았구요~ 너무 좋았고~ 행복해요~ 열심히 일하고 싶어요~ 선생님, 힘내세요! 홧팅!!”
이쁜이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제 마당 제 삶터에서 자주하는 삶을 살고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걱정근심 없이 사는 세상 사람이 없기에 그럴 때 마다 이쁜이네와도 의연하게 의논하려고 합니다.
이 길 위에서 만나 뵙는 장애인들을 환자, 대상자로 분리, 단절, 고립되게 하지 않게 위해 늘 고민하고 학습하는 푸르메재단의 과천시장애인복지관 지역복지팀의 모습을 바래봅니다.
*글=홍정표 과천장애인복지관 지역복지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