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그리고 무량태수의 꿈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
크기를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큰 마음을 가진 사람을 흔히 무량태수(無量泰水)라고 부른다. 사소한 이익 하나까지 조목조목 따지며 아우성치는 세상에서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려운 가운데도 긍정의 힘을 믿고 이익보다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무량태수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흔치 않는 행운일 것이다. 재단의 오랜 후원자인 천지세무법인의 박점식 회장(55)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 긍정의 힘을 믿고 이익보다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박점식 회장
그는 공장에서 해고당하고 백화점 창고에서 물건을 포장하고 나르는 일을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야간당직이 있는 날이면 경리과에서 불러 일을 시키더군요. 좋게 생각하기로 했지요. 사실 회계가 너무 재미있더군요. 그러다 경리과에 공식으로 채용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의 배려로 입사 후 6개월 동안 일대신 교육을 받았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틈나는 대로 백화점 계단에 앉아 취미 삼아 공부를 했지요. 그러다 세무사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시험 준비를 충분히 못했는데 운이 좋았던지 평소 알고 있던 내용이 문제로 많이 나와 세무사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섬마을에서 흑염소와 뛰놀던 무량태수 소년은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레 세무사가 되었고 지금은 전국에 11개의 지사를 둔 세무법인의 회장이 되었다.남도 섬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목포상고를 졸업한 뒤 보장된 은행원 취업을 거부하고 공장노동자가 되었다. “넥타이를 졸라 멘 은행원의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더군요. 넥타이가 마치 내 인생을 한계 짓고 삶 전체를 구속하는 올가미로 느껴졌습니다.” 안정보다는 의미를 쫓다가 어쩔 수 없이 내몰려 선택한 공원생활은 그에게 현실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장시간의 노동과 열악한 근로환경, 밥값 지불하기에도 부족한 급여. “무엇보다 학교 대신 공장으로 내몰린 13~14세 가량의 어린 공원들에 대한 노동착취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무슨 거창한 생각이나 노동운동적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부당한 현실에 대해 항의를 한 것인데 해고시키더군요. 어차피 그만두려고 했는데 잘됐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았지요.”
▲ 지난 4월 천지세무법인 창립20주년 기념을 맞아 전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부금을 전달하였다.
푸르메재단 : 지난 4월 창립 20주년을 맞아 전 직원들이 기금을 모아 재단에 기부해 주셨습니다. 재단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복지기관과 시민사회에 개인적으로 또 회사에서도 정기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계신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점식 회장 :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기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기업활동의 일부가 되어야지요. 노동, 환경, 인권, 민주주의, 반차별과 같은 사회적 가치가 기업의 경영철학에 반영되어 기업 내 문화로 정착되어야 진정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업무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지식정보사회에서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은 윤리경영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천지도 지난달 있었던 20주년 기념식에서 윤리경영을 모토로 한 ‘비전선포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외부 환경도 조성되지 않았고 내부적으로도 시행 초기라 실천으로 나아가는데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소통만이 해결책이겠죠.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아 기부하고 봉사활동에 나서는 것을 보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빠른 시일내에 내적 합의가 이루어지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윤리경영이 본사뿐만 아니라 모든 지사에서도 자연스럽게 시스템화 되리라 봅니다. 그것이 천지의 핵심 경쟁력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푸르메재단 : 세무사라는 직업에 대해 세간의 인식이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서는 한국세무사회의 부회장 직책을 맡고 계신데 세간의 인식 전환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박점식 회장 : 세간의 인식이 반드시 틀린 것 만은 아니지만, 좀 더 투명한 세상을 만들고자 소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많은 세무사들이 억울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 전체를 흐리듯 한두 명이 항상 문제죠.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가 발각되면 자신은 모르는 일이다 발뺌하고 모든 잘못을 세무사에게 떠넘기기 십상이고 언론은 힘있는 편에 서서 진실을 왜곡하곤 하지요. 세무사회에서는 세무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회원들 스스로의 자각이 중요한데, 가장 좋은 방법은 회원들이 사회공헌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세무사회에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까지 공헌활동을 넓혀나가고 있는데, 중국 사천성에 지진이 났을 때 세무사회에서 제일 먼저 직접 찾아가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일 이후로 중국 내 세무사의 지위가 격상되고 세간의 인식도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회원들 스스로 사회적 책임과 소명감을 알게 되고 내적 변화를 겪게 되는 거지요. 나눔과 섬김의 대명사로 불리는 세무사회 조용근 회장의 리더십 하에 점점 많은 회원들이 사회공헌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푸르메재단 기부뿐 아니라 아너소사이어티에도 가입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박점식 회장
푸르메재단 : 사회복지단체나 시민사회에 대한 간접적 지원 외에 직접적 참여도 하시는지요?
박점식 회장 : 상고를 졸업하고 세무사가 된 후에 야간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으니 사회운동에 참여해 볼 기회를 갖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에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편이지요. 특히 인본주의적 이슈에 관심이 많다 보니 아동교육문제나 양심수를 지원해 온 일이 여러 해가 되었군요.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도 시민사회가 태동하기 시작할 무렵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몇 가지 일을 꾸미기도 했지만 저의 역할은 한 걸음 뒤에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간접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신 천지 내에서 그러한 가치들을 실현해 나가야지요.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품고 있는 생각과 현실이 부딪칠 때가 많습니다. 일례로 천지 직원이 100명을 넘었는데 장애인의 비율이 아직 많이 낮은 편입니다. 이럴 때면 큰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추구하는 가치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크게 느껴질 때가 가장 힘든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푸르메재단 : 직원들과 법인에서 기부해 주신 기금을 회장님의 인본주의 경영철학을 반영해 ‘천지’에 사람 ‘인’을 더해 ‘천지인기금’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푸르메재단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박점식 회장 : 26살이 된 아들이 있습니다. 근위축증을 앓고 있지요. 모두가 20살을 넘기기 어렵다고들 하더군요. 저도 그런 줄 알고 아들의 20살 이후의 삶에 대해선 아무런 계획도 설계도 마련하지 못하였습니다. 장애아이를 둔 부모나 주변사람들에게 지침이 될 수 있는 올바른 정보가 너무나 부족한 것 같습니다. 푸르메재단에서 그 점을 해소해 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데리고 몇 차례 해외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한국과는 확연히 비교가 되더군요.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다르니 정책도 제도도 다르더군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일도 무척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아이를 데리고 시골에 여행을 가곤 하는데 휄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도 드물고 많은 식당이 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곳이라 어려움을 겪곤 하지요. 그래서 나름대로 방법을 찾은 것이 테이블 위에 테이블을 하나 더 겹쳐 임시로 입식형태로 만드는 거죠. 식당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회가 장애인지적 사회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