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이 경쟁력이다

[박을종/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전남 해남의 땅끝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한 시간이 넘는 통학길을 매일 걸어서 다닌다. 버스 타면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이지만 불평을 하거나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없다. 오히려 비가 오거나 날씨가 나빠 버스를 타게 되었을 때 아쉬워했다. 그 아이들이 그렇게 힘든 통학길을 선택한 이유는 1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한 해 동안 버스비를 아껴 모은 저금통 들고 2010년 1월말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남지회를 찾아왔다. 정성으로 모은 27만5천5백10원. 동전의 무게만큼 아이들의 보람도 컸고 묵직한 감동을 주었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이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은“우리 아이들이 서로 먼저 저금통을 채우려고 경쟁하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아이들의 이러한 열정이 훗날 더 큰 나눔으로 성장해 우리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아름다운 물결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땅끝지역아동센터는 한 때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가 영화배우 문근영 씨의 아름다운 기부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2006년부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야간요보호아동 프로그램과 기능보강사업을 지원받아 이 지역 아이들이 이곳에서 내일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2009년에 10명의 대학생을 배출했다. 이 학생들은 사회복지학과, 해양대학교, 보건대학, 항공정비학과에 진학하거나 기업체에 취업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나눔'이다. 나눔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하는 큰 선행이나 어려운 도덕적 행동이 아니다. 마음으로 나누고, 그 나눔이 또 다른 나눔의 파장과 고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나눔의 기본 속성이며,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우리는 보통 '나눔'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이타적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보다는 보다 살기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만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눔은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라고 할 수도 있다. 나눔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와 자존감을 높이는 정신적인 만족감과 도덕적 지능을 계발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경쟁력을 높여 존경받고 성공한 사람으로 만든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와 하버드경영대학원 연구진은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에서 '다른 사람의 선물을 사거나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는 등 ‘친사회적’으로 돈을 쓴 사람들이 자신에게 돈을 쓴 사람보다 훨씬 더 행복감을 느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면 자신이 행복해질 수가 있다. 절대빈곤층에게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심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이를 해결해주면 행복감이 급격히 올라갈 것이고 고소득층은 나눔으로 정신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성장으로 이룬 부를 사회적으로 순환시킨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눔은 나와 공동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옥탑방 할머니'로 불리는 김춘희 할머니가 지난 2월4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로 정부보조금을 받으면서 옥탑방에서 생활하던 김춘희 할머니는 2005년 1월 전세보증금 전액인 1천6백만원을 유산으로 기부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또한 한국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시신기증도 했고, 이후 250만원, 500만원 등 추가로 기부를 하면서 “더 줄 수 없어 미안하다. 그렇지만 나눌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며 마지막까지 나눔의 삶을 사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외롭지 않았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아왔기 때문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들이 상주 역할을 했고, 교회 지인들과 할머니가 젊은 시절 돌봤던 고아원에서 자란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주었다. 또한 많은 언론사에서 할머니의 나눔과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다.



▲ 강아지를 안고 있는 故 김춘희 할머니


또 하나 나눔은 개인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등 실질적으로 큰 이익을 줄 수 있다. 나눔교육을 한다고 하면 으레 따분한 도덕 교육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눔은 인간친화지능이나 자기성찰지능을 높여,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리더적 자질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른바 IQ 테스트는 언어지능이나 논리수학지능 등 지적지능에 국한되어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것이 교육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가드너 교수는 '다중지능이론'을 통해 인간은 무한하고 다양한 지능을 가지고 있기에, 극히 일부분만 측정하는 IQ 테스트로는 인간의 능력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모든 개인은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음악지능, 자연친화지능, 공간지능 등 각 개인마다 다른 지능을 타고 났다는 것이다. 공부를 못해도 운동을 잘하는 아이는 공간지능이 높은 아이이며, 공부를 못해도 친구들이 많은 아이는 인간친화지능이 높은 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눔'이야말로 법정 스님 말씀대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인 것 같다. 자신의 것을 나누기까지 마음의 변화와 행복의 깊이는 직접 해본 사람만이 알 수가 있다. 김춘희 할머니처럼 나눔은 실천하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겉으로는 재물만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들고 싶다는 인간의 의지가 내재해 있다. 할머니는 어쩌면 이러한 행복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타인에 대한 이해와 도덕성은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런 감성지능은 내면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힘이 되며, 상황판단에 근거를 이루게 된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이 많다보니 전체를 보는 통찰력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공부만 잘하는 이기적인 아이는 지적능력만을 검증하는 시험에는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는 감성지능과의 조화가 큰 역할을 한다.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는 "감성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는 결코 미국 명문대인 아이비리그에 못간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학습에 필요한 기억력, 계산력, 추리력도 알고 보면 감성을 다스리고 조절해야 100% 발휘될 수 있기에, 창의성 없는 단순 지적지능만으로는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설사 지적능력과 대학 간판을 인정받아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 해도 그리 오래 못가거나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타인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정책을 만들어도 실패하기 쉽고, 소통할 수 없으니 자신의 뜻을 잘 전달하지 못해 낭패를 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매며 열심히 일한 덕에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깊은 그늘이 있다.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한 기회의 불균형 등과 같은 사회문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더 심각한 점은 이런 계층간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경쟁과 변화를 통해 성장을 추구하면서 한편으로, 서로 나누고 함께 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사회의 화합과 균형을 유지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눔이 필요하다. 나눔이 개인과 사회를 위한 경쟁력의 하나로서 받아들여지고 조화를 이룰 때 우리 사회는 기회의 평등을 통한 계층간의 이동성이 높아져, 활기차고 건강한 사회, 더불어 행복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또한 사람은 누구나 살다보면 실패와 좌절을 겪게 된다. 이럴 때 감성지능이 부족한 사람은 어려움을 이기고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한 번의 좌절이 영원한 실패가 되고 마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를 살면서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돌아 볼 겨를이 없다고들 한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운 것이라고는 경쟁에 이기는 방법뿐이었으니 그러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는 보다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고, 그 시대에 맞는 시대정신을 가진 사람이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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