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참 많은 엄마

할 일이 참 많은 엄마


가을비가 내리는 아침. 서경주님을 만나기 위해 푸르매재단 어린이한방치료 센터를 찾았습니다. [다운증후군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 아는 정보라곤 이것뿐인데 날씨마저 잔뜩 흐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혹시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지? 어머니가 쑥스러움을 잘 타는 성격이면 인터뷰를 잘 할 수 있을까? 모든 게 기우였습니다. 지영이 손을 잡고 센터 문을 들어선 서경주님의 첫 인사는 "커피 한잔 하고 시작해도 될까요?"

한톤 높은 경쾌한 목소리에 밖에 비가 내린다는 사실까지 잊었습니다.


2002년생 지영이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 장애와 다운증후군을 앓았습니다. 건강한 첫 애와 달리 성한 곳 없이 아픈 딸을 보며 가족 모두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답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사람은 역시 어머니입니다.

"한국 사회가 유난히 그렇잖아요. 모든 게 엄마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요."설거지며 청소며 집안일을 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7년 동안 사생활을 포기하고 오로지 아이에게 만 매달렸습니다. 지영이는 재활치료와 한방치료를 병행했고 덕분에 인지 능력도 많이 좋아져 열을 알려 주면 다섯을 깨우칠 정도가 됐습니다. 물으면 새침하게 대답하고 어디론가 뛰어가는 모습도 영락없는 일곱 살 소녀입니다.

“만 6세면 활동보조인 선생님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이제 한숨 돌리고 지영이 일이 아닌 제 일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영이 어머니 서경주님은 마포구 장애인부모회 고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단체를 세운 것은 3년 전.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고 답답해 발달 장애아 부모들이 힘을 합친 것입니다."우리 아이들이 무슨 운동을 제일 좋아하는지 아세요? 수영이에요. 하지만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아요. 사람들 보는 눈도 그렇고 사고가 나면 책임 질 수 없다는 거에요.”


다운증후군을 앓거나 자폐, 뇌병변을 앓는 발달 장애아의 경우 영유아 시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상태가 악화되거나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하지만 협회를 설립하고 1년 반이 되도록 진척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 때마다 정부의 장애인 정책에 부모님들이 절망하지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어머니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EMB00000b684213


“사회는 움직입니다. 천천히 움직여집니다. 장애아부모들이 단결해서 주장하고 힘을 합치면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구청과 단체의 문턱을 넘었지요.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어 항상 데리고 다녔구요. 오줌 싸는 아이, 뛰어다니는 아이…. 구청을 찾아가면 너무 소란스러워서 나중에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 줄 정도였어요.”지영이 어머니는 개인적인 일이라고 표현했지만 밥 먹고 사람 만나고 화장 하는 일도 결국은 지영이를 위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EMB00000b68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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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를 걱정하는 서경주님은 평범한 주부이기도 합니다. 모든 활동은 자원봉사이므로 경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에는 회사를 다녔지만 그만두었고 지금은 남편의 경제력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월평균 백만 원 정도의 비용을 투자해야 해요. 워낙 고가의 치료들이어서 그 돈도 부족하지요. 하지만 지영이는 오십만 원으로 키워왔어요. 활동보조인 선생님이 생겼으니 프리랜서 일이라도 해서 생계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그렇다면 어머니가 그리는 미래의 지영이는 어떤 모습일까.


“지영이는 아이들을 좋아해요.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얼마나 예뻐하는지 몰라요. 책도 좋아하구요. 나중에 크면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거나 대출해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장애 아동들을 눈으로 접하면서 공무원들도 우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언젠가 만난 공무원은 저희에게 장벽을 깨라고 했어요. 주변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그 분 형제 중에도 발달장애아가 있기에 기존 장애인 정책에 맞서는 저희의 행보에 희열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장애아는 한 명이지만 그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한 배를 탄 셈이니 결코 방치하거나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어요. 이웃에서도,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져 주세요.”마포구는 현재 3개 거점에 언어치료교실과 특수체육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마포구 부모회는 장애인 정책 감시, 제안, 운영에 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당연히 장애인수영교실도 진행되고 있지요. 무엇보다 반가운 일은 공무원들의 시각을 바꾼 것이라고 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임산부처럼 부어 보이지 않느냐’고 ‘사진발’을 걱정했습니다. 어머니의 넉넉한 농담에 모두 웃음을 터뜨려야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서경주님의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살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듯한 예전 어머님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만난 통통한 체구의 어머니가 더 좋습니다. 지영이 키우랴, 부모회 일 하랴, 할 일이 참 많은 어머니시잖아요? 바람에 불어 날아가기보다는 지금처럼 굳건한 모습으로 계셨으면 합니다.


 


자유기고가 김진미님의 아름다운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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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가 김진미님은 서경주 후원자님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푸르메재단에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분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재능기부’를 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기부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작은 재능도 김진미님과 같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기부는 없겠지요! 왠지 향긋한 꽃 냄새가 폴폴 날 것 같은 김진미님의 ‘후원자이야기’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0^


자유기고가분들의 아름다운 재능기부를 기다립니다.

당신이 가진 작은 재능은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문의 : 어은경(02-720-7002 / seurg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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