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미소원정대 이야기 ②-‘인술(仁術)의 나눔’
3,450m 네팔 고지에 꽃피운 '인술(仁術)의 나눔'
- 2009 푸르메재단 네팔 미소원정대 이야기 ② -
▲ 23일 새벽 카트만두 공항. 몇 걸음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안개가 뒤덮고 있다.
푸르메 미소원정대의 네팔 도착 둘째날인 지난 1월 23일. 모든 대원들은 이른 아침을 챙겨먹고 히말라야 산악지역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위해 다시 공항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설렘과 흥분 속에 길을 나선 우리들 앞에는 주위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런 안개가 걷히지 않고 계속된다면 오늘 비행기를 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몇 걸음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안개 속에서 우리의 불안감은 증폭되어 갔다.
▲ 엄홍길 대장과 미소원정대원들이 네팔의 국내선 공항 대합실에서 굳은 표정으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고 있다.
초조함 속에 공항 대합실 바닥에 앉은 채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린 지 4시간. 날이 밝고 한참 뒤에야 우리는 에베레스트의 관문 루크라 공항(해발 2,850m)으로 떠나는 경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열 명 남짓 밖에 탈 수 없는 프로펠러 경비행기였기에 출발지와 도착지의 기상이 조금만 나빠도 이착륙이 불가능했다. 늦게나마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네팔 미소원정대원으로 참가한 탤런트 정동환님이 미소원정대의 화물 앞에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공항을 둘러보고 있다.(왼쪽) 비좁은 경비행기 안에 자리를 잡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대원들.(오른쪽)
'손바닥' 비행장에 내려앉을 수 있을까
드디어 비행기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날아 올랐다. 한 30분 날았을까. 멀리 히말라야의 거대한 설벽이 마침내 그 장엄한 자태를 우리에게 선보였다. 언제 안개가 일대를 휘감았냐는 듯이 모습을 드러낸 설산의 위용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 경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히말라야 설산(왼쪽). 조종사가 전방에 보이는 '손톱만한' 활주로를 향해 비행기의 고도를 낮추고 있다.(오른쪽)
히말라야 전경에 넋을 잃어갈 즈음 드디어 산중턱에 위태롭게 자리잡은 자그마한 루크라 공항이 눈에 들어왔다. 절벽 앞 경사진 비행로를 가진 루크라 공항은 세계적으로 위험한 공항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거대한 산군에 둘러쌓인 루크라 공항.
마침내 루크라 공항 도착. 그야말로 설벽에 둘러싸인 자그마한 비행장이다. 아! 청량한 대기. 흙먼지 투성이의 카트만두와는 완전히 다른, 그야말로 대자연 속으로 공간이동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숨 쉴 때마다 받을 수 있었다. 이 공항의 해발고도는 2,850m. 백두산(2,744m)보다 100m가 높은 이 곳에서부터 3,500m의 남체 바자르까지 트래킹을 하게 되는 것이다.
▲ 히말라야 주민들.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온기가 묻어난다.
▲ 엄홍길 대장은 스틱 잡는 법 등 꼼꼼하게 사전교육을 하고 있다.(왼쪽) 오늘의 숙박지 팍딩을 향해 출발하고 있는 대원들.(오른쪽)
순박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준 고산 주민들. 카트만두 시민들의 찌든 얼굴과 사뭇 다르다. 한결 여유가 있어 보인다고 할까. 하긴 고지대와 저지대는 문화의 차이가 크다고 한다. 카트만두가 힌두교의 도시라고 한다면 고지대는 불교의 영향이 크다. 대자연과 밀착해 있다는 사실 자체도 그 차이를 명확히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감흥에 젖을 여유가 없다. 이제 오늘의 숙박지를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남체까지는 이틀 거리다.
자연에 순응하는 소탈한 사람들
히말라야의 풍경은 병풍 같은 설벽과 험준한 지형, 그리고 곳곳에 배 있는 신앙의 흔적들로 이루어진다. 도저히 범접하기 어려울 것 같은 압도적인 자연 환경 속에서 절대적인 존재에 의탁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있었을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자연을 우러러보고 자신을 낮추며 지혜롭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꼭 필요한 만큼만 자연으로부터 얻으면서 욕심 없는 맑은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 히말라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신앙의 흔적들.
트래킹은 숨 가빴다. 말 그대로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운 높이를 우리는 종일 걷고 있었다. 터벅터벅 호흡에 맞춰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수시로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땅을 보고 힘겹게 걷다가 만년설로 뒤덮인 산과 짙푸른 하늘을 보며 가쁜 숨을 내뱉는 일이 반복되었다. 휴식시간이면 너나없이 주저앉아 피로를 달랬다.
백두산보다 높은 곳에서부터 이동을 시작했고, 고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3,000m선을 오르내리며 걷다보니 일부 대원들은 극도로 지쳐갔다. 평소 산을 즐기던 대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전문 산악인들도 피해갈 수 없다는 고산증세를 견디며 고도를 높여간다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다만, 이방인을 감싸주는 현지인들의 따스한 눈빛, 그리고 아름답다 못해 외경스럽기까지 한 경치를 벗 삼아 한발 한발 나아갈 뿐이었다.
▲ 트래킹 중에 거쳐간 고산 마을. 히말라야 사람들은 이처럼 험난한 환경을 이웃 삼아 고된 삶을 꾸려가고 있다.
'기진맥진' 대원들에게 내려진 '샤워금지령'
▲ 엄 대장이 대원중 최연소인 박창희 군(12)의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다.(왼쪽)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는 푸르메 네팔 미소원정대원들.(오른쪽)
악전고투 끝에 숙박지인 팍딩의 롯지에 도착했다. 기진맥진한 대원들은 저녁밥을 먹자마자 침낭에 들어가 곯아떨어졌다. 땀에 젖었다가 마른 몸을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고소증세를 피하기 위해 '몸에 물을 대지 말라'는 엄 대장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섣불리 씻었다가 체온을 잃으면 고소증세가 심해진다. 우리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하산을 마치기 전까지 '샤워금지령'에 순순히 따라야 했다. 당혹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지쳤다. 따지고 싶지 않았다. 쏟아지는 별빛의 낭만도 잠시. 트래킹 첫날의 일정을 무사히 마친 것에 감사하며 피로를 풀었다.
▲ 첫 숙박지인 팍딩의 롯지에서 의약품과 후원물품을 운반하는 야크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다.(왼쪽) 현지 포터가 원정대의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오른쪽)
"고도를 높여라!"
날이 밝았다. 오늘 하루만 7시간을 걸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목적지인 남체 바자르에 도착한다. 서둘러 한 끼 해치우고 장비와 짐을 챙겼다. 어제의 노곤함이 풀리지 않은 대원들. 그래도 눈을 크게 뜨고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자, 출발!" 엄홍길 대장의 거친 목소리에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나아간다.
이 산과 저 산을 잇는 다리를 수없이 건넜다. 쇠줄로 엮은 다리는 끊임없이 출렁이고, 발치 아래로는 천길낭떠러지다. 히말라야의 눈 녹은 물은 급류를 이루어 거대한 바위를 휘감고 굽이친다. 수십 kg의 짐을 지고 우리 곁을 묵묵히 걷고 있는 포터들을 보면 우리가 겪는 고통은 엄살로만 느껴진다. 다리가 점점 무거워진다. 그리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걷고, 걷고 또 걷는 것뿐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 밖으로 내기 힘들다. 걸으면 걸을수록 지형은 가팔아진다. 남체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막바지에 이를수록 고도가 치솟으면서 고산증세가 심해진다는 엄홍길 대장의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 트래킹 중반에 미소원정대를 맞이한 무지개. 선그래스를 낀 채 바라보면 마른 하늘인데도 무지개가 선명하다.
엄홍길 대장은 역시 대단했다. 대원들 전원이 허우적대고 있을 때도 한 치의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고 선두에서 이끌었다. 바닥만 쳐다보고 걷다가 문득 고개들 들어보면 한참 위에 있는 바위 꼭대기에 우뚝 서서 대원들의 상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고향 뒷산을 산책하듯이 힘 안들이고 다니는 듯 했다.
산사람 엄홍길이 빚을 진 한 셰르파 여인의 마중
▲ 미소원정대 엄홍길 대장(왼쪽)과 셰르파족 여인 라파 디기(오른쪽)
오후 들어 한층 가파른 오르막에 신음하고 있을 때 키가 크고 강인한 인상의 여인이 귤 한 봉지를 들고 우리를 맞았다. 엄 대장이 반갑게 맞았고, 여인은 엄 대장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라파 디기. 엄 대장이 세 번째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섰을 때 함께 했다가 사고로 숨진 셰르파의 부인이다. 결혼 석 달 만에 남편을 잃고 지금껏 혼자 살고 있다. 당시 이야기를 할 때면 엄 대장은 늘 목이 잠긴다. 엄 대장은 친누이 대하듯 여인을 아꼈다. 라파는 우리의 목적지 남체에서도 꼬박 하루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 팡보체(해발 3,950m) 주민이다. 거기서부터 남체를 거쳐 여기까지 엄 대장과 우리를 마중하러 내려온 것이다.
▲ 남체 바자르 입구에서
남체 바자르. 해발 3,450m. 인근 산악부족과 멀리 티벳 상인들이 주말마다 모여 장을 여는 곳. 전문 등반대가 이틀 쉬며 고소에 적응하는 에베레스트의 관문. 우리가 마침내 이곳에 도착했다.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았다. 기쁨에 넘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트래킹 비수기에 접어든 한겨울의 남체는 죽은 도시 같았다. 밤이 돼도 불빛을 찾아볼 수 없다. 산장 주인과 직원들은 월동을 위해 산 아래 도시로 내려간 뒤였다. 월동지가 따로 없는, 원래 이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과 인근 고산부족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남체에 도착하자마자 다음날 진료봉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 허겁지겁 저녁을 먹자마자 의료봉사 준비에 들어갔다. 한 팀은 하루 3번 삼일치의 약 200인분을 포장하고, 다른 팀은 진료실 구성에 들어갔다. 우리가 묵을 로지(lodge)의 주인 벰바(33)가 텅 빈 도미토리를 진료실로 내주었다. 엄홍길 대장과 오랜 인연 때문일까. 주인은 온갖 집기류부터 시작해서 진료봉사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이 로지는 엄 대장이 처음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을 때 들렀던 곳. 지금까지 로지 사람들과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고 한다.
▲ 도미토리를 진료실로 사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대원들(왼쪽)과 미소원정대 진료팀장인 이동준 원장(푸르메나눔치과 부원장·안양 수치과)
준비완료…그런데 "마취제가 없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약품상자를 확인하던 네팔 미소원정대 이동준 진료팀장이 소리를 질렀다. "뭐야, 마취제가 없어!" 맡은 일을 하던 전 대원이 한순간 얼어붙은 채 불안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앞이 캄캄해졌다. 마취제 없이 할 수 있는 치과진료는 극히 제한적이다. 썩은니 하나 빼줄 수 없게 된 것이고, 사실상 제대로 된 봉사를 할 수 없게 됐다는 의미다. 수 없이 많은 치과용 의료품을 챙긴다고 챙기다가 도리어 가장 중요한 마취제를 빼놓고 온 것이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하겠다고 왔는데!' 맥이 풀리고 한숨이 터져나왔다.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계속)
글/사진 = 정태영 푸르메재단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