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봉사자의 성장을 돕는 비결
"네? 자원봉사자의 권리요? 자원봉사는 헌신과 희생이 아닌가요?"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처음 만나 교육을 하면서 내가 제일 먼저 꺼내는 말은 자원봉사자의 '권리'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듣고 자원봉사자들은 귀를 쫑긋 세운다.
약 10년 전부터 각 대학교에 개설된 사회봉사과목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봉사활동 참여를 졸업필수요건으로 정해 놓은 학교도 많아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졸업을 하기 전에 한 번쯤은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추세다.
이재원
푸르메재단 간사
학생 신분의 특성상 꾸준한 활동을 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의 구석구석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곳에 학생들의 참여가 큰 힘이 되고 있다.
▲ 푸르메어린이재활센터 자원봉사자 한영균 (서강대 기계공학과)
우리 재단에도 매 학기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 사무국의 크고 작은 일부터 행사 지원까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푸르메한방어린이재활센터에서 장애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는 대학생들은 유급 직원 못지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환자 차트를 관리하고 약침을 맞을 때 몸을 잡아주기도 하며 언니, 누나처럼 즐겁게 놀아주기도 한다.
이들은 처음에 장애 어린이를 처음 만난다는 약간의 두려움과 부담감을 가지고 재단을 방문한다. 기초 교육을 하면서 장애 어린이들의 특성은 무시해도 될 만한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고 설명해도 경험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불안해한다. 그러나 어색한 첫 만남이 지나가고 서로 이름을 익히며 친해지기 시작하면 이런 불안감은 금방 사라진다. 언어적으로 소통이 어려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눈빛과 손짓으로 감정과 생각을 나누기 때문이다. 기적이 시작되는 만남의 순간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특징은 약속을 잘 어기고 사정이 있는데 연락도 안하는 등 한 마디로 '책임감이 없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쉽고 단순한 일, 책임지지 않아도 될 작은 일들이 떨어진다.
맞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은 일반적으로 책임감이 없거나 부족하다. 하지만 이들이 책임감이 부족한 현상은 그들 자신의 책임보다는 기관(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책임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리는 자원봉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원봉사자는 (도움이 필요한) 우리를 도우러 온 사람일 뿐이고, 그러니 열심히 도움을 주면 그 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유급직원이 아니니 자원봉사자에게 큰 신경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그저 간단하게 감사 인사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물론, 자원봉사는 기본적으로 일종의 선물(gift)이다. 댓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가 자원봉사이다. 하지만 자원봉사는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신뢰에 바탕을 둔 성숙한 관계 속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기관은 자원봉사자에게 보람과 새로운 경험을 주고 자원봉사자는 기관에게 시간과 노력을 준다.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들이 ‘내가 준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얻은 게 더 많았다’고 고백하는 것은 자원봉사의 상호성 때문이다.
▲ 푸르메어린이재활센터 자원봉사자 정세희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부)
이렇게 본다면 자원봉사는 일방적인 선물로서 시작되었지만 (일종의 선순환)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가치들이 비교적 동등하게(질적인 교환이기에 엄밀하게 동일하다고 볼 순 없겠지만) 교환되는 상호적인 것이다. 그리고 자원봉사를 의미 있는 가치를 교환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기관과 자원봉사자에게 동시에 책임과 권리가 생긴다.
자원봉사자는 정해진 시간 동안 진심어린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책임) 활동하는 과정에서 가치 있게 대접받고 존중받으며 교육받아야 한다.(권리) 마찬가지로 기관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책임감 있게 활동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안내해야 하며(책임) 자원봉사자들에게 열심히 활동할 것은 요청할 수 있다.
▲ 숙명여대 자원봉사자 최단비, 손유경 학생에게 감사장 전달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자원봉사를 일방적인 헌신과 희생이라는 개념으로 보았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를 홀대해 왔다. 도움을 주러 왔으니 도움을 주면 그뿐이라는 생각으로 자원봉사자들의 참여에서 건강한 에너지와 동기의 힘을 뺐다. 나 자신이 대학 시절 수천 시간을 자원봉사에 참여하면서 직접 경험했고, 내가 관리자가 되어 수년 간 자원봉사자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자원봉사자 관리의 가장 핵심적인 비결은 바로 자원봉사자는 충분히 관리 받고 존중받을 때 즉, 그들의 권리를 알려주고 그것을 충분히 보장하고 배려해 주었을 때 가장 훌륭하게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원봉사자에게 지금 하고 있는 작은 일들이 전체적으로 어떤 맥락과 닿아 있는지를 반드시 설명하고, 기관에 사정이 생겼을 때 미리 연락해서 양해를 구하며, 책임과 권리를 함께 교육할 때 자원봉사자는 스스로 동기를 찾으며 변화한다. 선하고 건강한 관계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성장한다.
이것이 내가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들의 권리를 설명해주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의 긍정적인 효과는 어떤 대학생 봉사자가 기록한 다음의 자원봉사 활동 소감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푸르메어린이재활센터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오한나 학생(사진왼쪽)
"푸르메 재단의 한방어린이재활센터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대하면서 그 아이들을 통해서 제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조금은 안됐다고 느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점은 아이들은 동정이나 연민을 받아야 할 '대상'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처음엔 어떻게 다가가야 좋을지 몰라서 걱정도 되었고 나의 작은 행동의 실수가 혹여나 아이들 혹은 아이의 가족에게 상처가 될까 많이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매주 아이들을 만나면서 저는 그저 도움을 주는 입장, 봉사를 베푸는 입장에 선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네 언니나 누나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오한나 / 서강대학교 영미어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