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믿는다


방귀희 방송작가


고등학교 때였다. 교실에 쥐 한 마리가 들어왔다.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쥐를 피해 도망갔지만 내 다리는 도망갈 힘이 없는 탓에 난 무섭지 않은 척 해야 했다. 쏜살같이 달려오던 시커먼 쥐가 내 앞에 멈췄다. 그리고 나를 응시했다. 난 쥐와 눈싸움을 했다. 난 네가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어서 썩 물러가라고 속으로 호통을 쳤다.사람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섰는지 쥐가 방향을 틀어 도망갔다. 난 그때 커다란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한 살 때 걸린 소아마비로 두 다리는 물론 두 팔도 온전치 못한 나는 일상적인 행동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엔 내가 할 수 없는 일들만 빼곡히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 이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것은 큰 변화였다.


우선 내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재산인가를 깨달았다. 내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한 능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걸을 수 없다는 것은 그저 내 삶의 한 가지 조건일 뿐이지 그것이 내 인생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인식했다. 용기가 생겼다. 세상과 부딪혀 보기로 했다. 그러자 할 수 있는 일들이 하나씩 늘어났고 그것은 곧 새로운 능력으로 자리 매김했다.


가끔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피디들이 있다. "다큐멘터리라 현장에 나가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내일까지 콘티를 짜서 보내 드릴게요." 였다.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니까 바로 일을 시작하자는 의미였다. 난 지금도 한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치고 있다. 두 손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난 한 손으로 하루 수십 장의 원고를 써 내고 있다. 만약 한 손마저 쓰지 못했다면 입에 타자 봉을 물로 자판을 쳤을 텐데 한 손으로나마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나는 분명 달리기 선수는 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육상 선수를 하겠다고만 하지 않으면 나머지는 다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건강한 사람들도 모든 일을 다 하며 살지 않는다.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돼 있다. 그렇다면 장애 때문에 못하는 일이 있다 해도 그리 억울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못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할 수 있는 일만 골라서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행복한 동행 2008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방귀희_<솟대문학>발행인·방송작가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난 방귀희 씨는 첫돌 즈음 소아마비를 앓고 지금까지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무학여고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동국대학교 불교철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81년 방송작가로 입문해 KBS, EBS, BBS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1991년 봄에 우리나라 유일의 장애인 문예지 <솟대문학>을 창간해 현재까지 결간 없이 발행해오면서 우리나라 장애인 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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