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선 장애인 캠페인] 김세진 군, 똑바로 서 있으면 그림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한겨레-푸르메재단 공동캠페인 <희망의 손을 잡아요- 우뚝 선 장애인>
똑바로 서 있으면 그림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⑮ 김세진 군과 어머니 양정숙 씨의 희망 도전기
» 미국 록키산맥 만년설 위에 우뚝 선 김세진(11) 군.
“엄마, 도저히 못 뛰겠어요.”
“네가 결정해. 여기서 그만두면 앞으로 아무 것도 네 힘으로 할 수 없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한참을 서 있던 아이는 앞서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힐끗 보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단호한 그 한마디에 아이는 무엇을 느꼈을까. 뙤약볕 아래 고통을 참아내며 마침내 골인. 2005년 의족을 한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연소로 10km 단축 마라톤을 완주하는 순간이다.
김세진 군. 올해 나이 11살. 무릎 아래가 없었고, 오른손은 손가락이 두 개 뿐인 장애아로 태어났다. 친부모는 알 길이 없다. 대전의 한 보육원이 세진 군의 ‘고향’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못하는 운동이 없는 의젓한 어린이로 자라 한국 장애인 수영계의 대들보라고 불리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입양 결심보다 힘겨웠던 ‘편견의 벽’
세진이 엄마 양정숙(40) 씨는 아들을 공개 입양했다. 1998년 12월 자원봉사를 나가던 보육원에서 ‘울보’ 세진이를 처음 만났다. 장난감을 움켜쥐고 물끄러미 자신을 처다보던 세진이를 보고 양 씨는 ‘내 아이구나’ 했다. 마치 운명처럼 다가온 아이. 생후 18개월 되는 때 입양을 결정했다. 1999년 8월 1일, 양정숙 씨 가족은 조촐한 환영식을 열고 세진이를 식구로 받아들였다.
» 보육원 시절 세진이는 툭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울보’로 통했다.
입양을 결심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였다. 제일 먼저 시집 식구들의 반대에 부닥쳤다. 양정숙 씨 부부는 불임수술로 맞섰다. 아무리 반대해도 소용없다는 뜻이었다.
법적인 입양절차도 까다로웠다. 관청을 찾았더니 절차가 복잡하다면서 법무사에게 일을 맡기라고 했다. 비용이 3백만 원이었다. 세진이 엄마는 수십 차례 담당자를 만나가면서 혼자 서류를 준비했다. 공무원들은 기를 쓰고 장애아를 입양하려는 그녀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고아원에서 붙인 이름을 바꾸는 데 또다시 몇 달이 걸렸다. 나라로부터 ‘세진이 엄마’로 인정받기까지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높은 ‘편견의 벽’을 절감했다.
어렵사리 새 가정을 꾸민 양정숙 씨 가족은 본격적으로 세진이의 재활에 나섰다. 먼저 무릎으로 걷는 것을 가르쳤다. 식구들 모두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본을 보였다.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넘어지는 법도 배워야 했다. 일부러 넘어뜨리면서 크게 다치지 않도록 훈련시켰다.
“돈 많으면 한 번 걷게 해보세요”
엄마는 세진이를 10년 넘게 키워오면서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일이 없다. 친딸 은아를 배가 아파 낳았다면, 세진이는 가슴이 아파 낳은 아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세진이가 엄마의 아들로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들의 자립을 냉정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했다. 세진이가 4살이 되던 해 의족을 채우려고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엄마, 돈 많아요? 이 아이는 못 걸어요. 평생 휠체어 타야 돼요.”
“가능성이 전혀 없나요?”
“돈 많으면 한 번 걷게 해보세요.”
엄마는 어린 세진이를 업고 나오면서 신발을 한 켤레 샀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 아들은 반드시 걷는다, 걸을 뿐 아니라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그리고 전국의 병원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의족을 착용할 수 있게 해보자는 의사를 만났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세진이 다리 모양 그대로는 의족을 사용할 수 없었다. 무릎 아래를 잘라내야 했다. 엄마는 자신의 뼈를 갈아서라도 발과 다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 간절함으로 5차례의 수술을 진행했고, 세진이는 새 다리를 얻었다.
“세진이는 할 수 있어!”
» 8살 때 5km 단축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세진군.
처음 착용한 의족은 무게가 3.5kg이나 됐다. 당시 몸무게 13kg의 세진이가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익숙해져야 했다. 그것만이 세상을 향한 도전의 열쇠가 된다는 것을 세진이 엄마는 알고 있었다.
의족을 하고 걷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계단 오르내리기 연습을 하면서 두 모자는 얼마나 눈물로 서로의 얼굴을 부볐는지 모른다. “세진이는 할 수 있어!” 엄마의 응원에 세진이는 힘을 얻었고, 마침내 새 다리로 걷기 시작했다. 희망의 싹을 틔운 것이다.
세진이 엄마는 아들이 당당하게 세상을 헤쳐 나가려면 집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스키와 승마, 댄스, 드럼 등 다양한 체험을 통해 시야를 넓혀주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고통스러운 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세진이는 8살 때 5km 마라톤을 완주했고, 9살 때는 록키산맥 3,870m 고지를 밟았다. 주위 사람들은 걱정했지만, 엄마는 사자가 새끼를 키우듯 했다. 나약함은 자식에게 물려주는 최악의 유산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 덕에 세진이는 벌써 한국 장애인 수영계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다. 더 높은 곳을 향한 도전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장애인 수영의 박태환’을 꿈꾸며
세진이가 수영을 접한 것은 3년 전이다. 재활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시작했고, 물장난 수준에 불과했다. 물에 들어갈 때는 의족을 벗는다. 짧은 다리와 불편한 손으로 물살을 가르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아이가 소질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돌고래가 헤엄치듯 ‘물을 만났다’.
» 한 국내 수영대회에서 힘차게 출발하고 있는 세진 군. 어느덧 국내무대는 좁게 느껴진다.
2006년 일본에서 열린 아태 장애인 수영대회 6위를 시작으로 2007년 독일 세계 장애인 수영선수권대회 2위에 올랐다. 장애인 부문에서 50m 종목은 세진이가 독보적이다. 현재 38초대를 기록하고 있는데 다음 달 열리는 호주 캔버라 월드챔피언 수영선수권대회의 유력한 우승후보다.
누나 하나 뿐인 세진이는 커가면서 형제가 그립다. 지난 2008 베이징 패럴림픽 때 현지에서 박태환 선수의 활약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형을 삼았다. 세진이의 꿈은 ‘장애인 수영의 박태환’이 되는 것. 2012년 런던 패럴림픽 때 그 소원을 풀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
세진이네는 얼마 전 경기도 일산에서 수원으로 이사했다. 현재 수영코치인 이경희 씨가 엄마를 찾아와 세진이를 맡겨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일주일 만에 짐을 옮겼다. ‘맹모삼천지교’가 무색할 지경이다. ‘가슴으로 낳은’ 아들 세진이의 자립에 모든 것을 걸고 열정적으로 추진해나가는 어머니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매년 의족교체비만 4천만 원
» 세진 군의 두 다리가 되어준 엄마와 누나. 세진 군은 가족이 있어 세상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진이의 무거운 의족은 최근 티타늄 소재의 첨단 제품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이 최근 화제가 되었고 한국의 ‘애덤 킹’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그 뒤편에는 남모를 고통이 숨어있다. 만만치 않은 비용 탓이다.
석 달에 한 번 무릎과 의족을 연결하는 소켓을 갈아야 하고 1년에 한 번 의족 전부를 교체해야 한다. 각종 부품과 소독약품 값까지 합하면 매년 들어가는 돈이 4천만 원이 넘는다.
한 때 여행사를 운영하기도 했던 세진이 엄마는 밤에는 대리운전, 새벽에는 세차장 일까지 하면서 아들 뒷바라지를 해왔다. 엄마의 빈자리는 큰 딸 은아가 대신했다. 어린 세진이를 업고 학교를 가기도 했던 대견스런 누나는 어려운 집안 형편을 고민해서였는지 검정고시로 일찍 학업을 마치고 여군 입대를 준비하고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남들보다 더디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 초등학생 세진이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강인한 사랑’으로 자신의 등을 받쳐주고 있는 엄마. 세진이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엄마를 너무도 사랑한다. 엄마를 위해,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세진이는 힘을 낼 것이다. 그리고 그 큰 사랑이 준 희망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며 살아갈 것이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엄마와 아들. 그러나 두 사람은 피보다 짙고 고귀한 사랑으로 서로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되어주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유행처럼 말하는 ‘나눔’에는 ‘너와 나’의 구분이 살아있다. 나눠주는 사람과 나눠받는 사람이 엄연히 갈린다. 이들 모자의 삶은 ‘너나 없는 일치’를 통한 진정한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글=임상준 푸르메재단 팀장 / 사진=양정숙 씨
김세진 프로필
- 1997년 11월 출생
- 1998년 4월 대전 보육원에 맡겨짐
- 1998년 12월 양정숙 씨 공개 입양
- 2005년도 록키산맥 최고봉 러브랜드 패스 등정(3,870m)
- 2005년도 테리폭스 마라톤대회 5Km 완주
- 2005년도 10Km 완주(세계최연소)
- 2006년도 일본 아태 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 6위
- 2007년도 수원 시장배 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 1위
- 2007년도 독일 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 2위
- 2007년도 KOC-맥도널드 챔피언 키즈 홍보대사
- 현재 수원 매화초등학교 5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