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숙 의원]  너는 멋지고 아름답다.

한겨레-푸르메재단 공동캠페인 <희망의 손을 잡아요- 우뚝 선 장애인>



④ 여성 장애인의 희망, 곽정숙 의원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섰던 다음날 ‘목욕탕으로’

...장애여성 약자 중에서 최약자…신앙으로 극복


» 곽정숙 의원

여기 장애와 가난, 그리고 절망의 끝자락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일으켜 세운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희귀 질환과 중증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이 땅에 우뚝 선 장애인들입니다. <한겨레>와 푸르메재단이 공동으로 펼치는 캠페인 <희망의 손을 잡아요-우뚝 선 장애인> 시리즈를 통해 이들을 소개합니다.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씨의 이야기 <산으로 간 ‘말아톤’>를 시작으로, 한국의 ‘스티브 호킹’이라고 불리우는 이상묵 서울대 교수, 전동휠체어로 35개국을 횡단한 최창현씨, 운동 도중 하반신 마비가 됐지만 존스홉킨스대학 재활의학과 의사로 우뚝 선 이승복 박사 등 20여명의 장애인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 고통을 딛고 일어선 장애인들의 이야기는, 독자 여러분들께 왜 우리 삶이 소중하고 희망을 가져야 하는가를 말해 줍니다. 이 캠페인을 통해 우리 사회가 새로운 희망을 움켜쥐길 기대합니다.


깊은 밤, 나는 큰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옷을 모두 벗고 알몸으로 서서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스무

살 때였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닌데요? 멋지지도 아름답지도 않아요. 절대 아니에요.”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찬찬히 보아라.”


마찬가지였다. 130cm인 키도 그대로, 등이 굽은 모습도 그대로, 야윈 팔다리도 그대로다. 이런 몸이 어디가 아름답다는 것인가. 하지만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내가 보기엔 참으로 예쁘구나. 너는 어떠냐? 다시 보아라.”


 “예쁘지 않아요!”


 “다시 자세히 보아라, 참 멋지구나.”


 벗은 몸으로 서다


»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곽 의원이 박달나무 아래서 기타를 치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었다. 차츰 내 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굽은 등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예쁘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평범하지 않고 뭔가 독특한 느낌이 들었다. 싫고 부정하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안쓰러운 마음이 일었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을, 등을, 가느다란 팔을 만져봤다. 웬 일일까? 내 몸은 정말 멋지지 않은가!


 창조주가 이 세상을 만드신 뒤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셨다는 말씀. 나를 만드신 신은 내 모습을 보고도 기쁘셨을까?

대답이 궁금해서 거울 앞에 알몸으로 섰던 나는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새우고, 다음날 새벽 내 생애 처음으로 대중목욕탕으로 갔다. 벗은 몸을 남에게 보이다니, 전 같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다섯 살 때 결핵성 척추염을 앓고 척추장애인이 되었다. 부모님 덕분에 다행히 병을 일찍 발견하고, 수술과

약물로 치료했기에 그나마 휠체어에 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정도로 지내고 있다. 지금이야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지만 철없는 사춘기 시절엔 그렇지 않았다. 툭하면 쓰러지는 허약한 몸 때문에 휴학을 반복하면서 동급생들과 학년이 달라져 버려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나 자신이 가족과 이웃에게 부담스런 존재라는 점을 참을 수가 없었다. 흘러내리는 눈물로 베개는 늘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스무 살 때, 나는 신앙을 통해 장애가 있는 내 몸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새벽에 찾은

대중목욕탕이 내게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출정식과 같았다. 나의 장애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내 눈에 다른 사람들, 특히 장애 때문에 아파하고 절망하는 장애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밖으로, 내가 갇혀 있던 장애의 굴레 밖으로 힘차게 뛰어 나갔다.


» (왼쪽) 첫돌에는 온 가족의 기대 속에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했다. (가운데) 4살 때 오빠, 언니와 함께 집 마당 카메라 앞에서 수줍어하고 있다. (오른쪽) 중학교시절 몸이 아파 얼굴이 샛노랗다.

장애 여성, 내가 당사자 


지금 나는 대한민국 18대 국회의원이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정치인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나는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가? 바로 여성 장애인이다. 여성 장애인 당사자로서, 국회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고, 그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나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이유일 것이다.


 ‘당사자’라는 말은 참 중요하다. 어디서 어떤 아픔을 느끼는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지 당사자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당사자가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그 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수 있다.


스무 살 때 대중목욕탕에 간 것을 시작으로 나는 거리낌 없이 세상 속으로 들어갔고, 1987년부터 한

기독교단체에서 만든 중증 여성장애인 공동체에서 이십 년 정도 생활했다. 광주에 있는 실로암재활원이 그곳인데 나는 국회로 들어오기 직전 그곳의 원장으로 일했다.


 거기서 만난 많은 여성 장애인들, 나를 따라 줄줄이 목욕탕을 들어섰고, 당당히 대중 속으로 들어갔으며 먼 여행길도

행복함으로 나서며 연애도, 결혼도, 취업도 나섰다. 장애인은 무성적 존재가 아니라 분명 여성이라는 성적 존재로, 장애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인간의 다양함 속에 불편하고 힘겨움이 있지만 강한 개성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서로 배워가게 된 것이다.


» (왼쪽) 실로암재활원장으로 일할 때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과 함께 따듯한 양지에서 웃고 있다. (오른쪽) 여행을 좋아하는 곽 의원, 동료들과 함께 소양호 여행길에 행복해하고 있다.

 장애 여성이 활짝 웃는 그날까지 


나는 몹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병을 앓은 이들 중에는 끝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사람도 많다. 병을 늦게 발견했거나, 가정 형편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친 이들은 나보다 훨씬 심한 장애를 떠안아야만 했다. 옆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다. 나는 오히려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다른 형제들은 보리밥을 먹는 동안 나만 흰쌀밥을 앞에 두고 밥투정을 하는 호사를 부렸다. 중학교 다닐 때, 어머니는 점심 도시락 대신 별식으로 라면을 끓여 식을세라 뜨거운 냄비를 가슴에 품고 학교에 오신 일도 있었다.


 장애여성 공동체에서 같은 처지의 여성들과 함께 생활하고 부딪치며 고통과 꿈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행복한 일이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다른 장애 여성들과 삶을 공유하는 시간이 장애인 인권운동으로 이어졌다. 1999년 광주여성장애인연대를 세웠고, 이후 전국 조직인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로 일했다. 이와 함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상임 공동대표로 뛰며 장차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 (왼쪽) 서울에서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창립식을 마치고 광주지역회원들과 함께. (오른쪽)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대표 시절 전국의 활동가들과 함께.

어떤 사회가 행복한 사회일까? 답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가장 약한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살 때 우리는

모두가 행복해진다. 장애 여성은 약자 중에서도 최약자다.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남성과는 다른 여성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다. 무력하고 무성적인 존재로 세상의 모든 잔인한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다.


 나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지 못했지만, 국회에서 일하는 것이 그 이전의 생활과 크게 다를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평범하고 성실한 삶의 원칙, 소수자의 편에 선다는 지금까지의 원칙을 지켜나가고, 장애여성계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 열심히 일하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글=푸르메재단 전미영 사무국장

※ 이 글은 곽정숙 의원과의 인터뷰를 기초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 곽정숙 의원

“장애는 나를 나누는 능력”


 -장애가 곽 의원의 삶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내게 장애는 ‘나를 나누는 능력’을 뜻합니다.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적극적으로 다른 장애인을 만나러 다녔어요. 예전의 나처럼 세상과 등지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장애인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달려갔습니다. 만나서 막 큰 소리를 쳤죠. ‘장애가 뭐 어때서요? 못 걸으면 휠체어 타면 되지. 이렇게 앉아서 울고만 있으면 뭐가 달라지나요?’


생각해보세요. 비장애인이 이런 얘기를 하면 설득력이 있겠어요? 내가 같은 장애인이니까 상대방도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내게 장애가 있으니까 거부당하지 않는 거죠. 장애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과 삶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겁니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이 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 장차법제정추진연대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던 경력에서 장애여성계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신뢰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저를 추천한 분들이 진보 진영에서 신망이 높은 분들이기도 했구요.”


 -국회의원이 되기 전, 혹시 다른 계획이 있었습니까?

“마침 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었어요. 조금 쉬기도 하고, 한숨 돌린 뒤 긴 호흡으로 인권교육 쪽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18대 국회에서 반드시 이루고 싶은 일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은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여성장애인지원법을 제정하는 것입니다. 장애여성의 생애주기별로 제도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을 만들고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곽정숙 의원 프로필

1960년 전남 나주 출생

광주장애인단체총연합회 이사

한국여성단체연합 이사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

광주여성장애인연대 상임대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상임공동대표

실로암재활원 원장

현 제18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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