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작업장도 이익을 내야한다-일본 복지공장 마호로바(まほろぼ)
일본의 대표적인 복지공장 마호로바(まほろぼ)는 평범한 농촌 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마호로바의 산하시설로 홈마호로바 등 3개의 그룹 홈과 함께 고베 시와 미키 시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구사다니 강 상류의 자연림에 아늑하게 둥지를 틀고 있다.
마호로바 복지공장의 정원은 30명. 일본의 복지공장은 우선 규모 면에서 소규모 작업장과 구별된다. 대다수 소규모 작업장에서 생활시설과 일터의 개념이 혼합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복지공장은 말 그대로 일터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하다. 그러다 보니 일의 결과나 효율이 한결 중시된다. 장애인의 노동 능력에 맞춰 일감을 정하는 소규모 작업장과는 달리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쪽으로 방향이 달라진다.
마호로바 복지공장 옆에 있는 그룹 홈
마호로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복지공장이란 이름표를 떼내고 작업장의 모습만 본다면 일반 생산라인과의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숨 쉬는 것도 워크(work)”(7.클라라 베이커리 참조)라든지, “낮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주는 것”(10. 로쿠유 참조)이라는 개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빵은 빵일 뿐..똑같이 경쟁
복지공장이 일반적인 일터와 다른 점은 장애인 위주로 인력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사회복지법인에서 복지공장을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장애인 고용창출이기 때문. 지속적으로 고용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수익을 내는 게 관건인데 쉽지 않은 일이다. 마호로바 복지공장에서 생산된 빵이 판매대에 놓였을 때 그 빵은 일반적인 공장이나 제과점에서 만들어진 다른 제품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장애인 복지를 위해 빵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빵이 맛있어야 사기 때문이다.
마호로바 복지공장은 이런 점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복지공장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수익을 내는 곳으로 많은 사회복지단체에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다.
마호로바에 도착했을 때, 마침 이동판매 차량이 공장에서 막 나온 따끈따끈한 빵을 차에 싣고 있는 참이었다. 이동판매 차량에는 먹음직스런 식빵과 바게트가 그려져 있다. 차에 씌어진 광고 문구는 “직접 손으로 구운 빵 맛을 댁으로 배달해 드립니다”라는 것. 그림에서도 글에서도 장애인이 만든 빵이라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판매 준비를 하는 사람들 속에서 장애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몬구치 준이치(門口淳一) 시설장은 장애인에게 이동판매 일을 맡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동판매 차량을 운전해 주택단지 등에서 자리를 잡고 파는 일을 모두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장애인에게 적당한 일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함께 한다’ 혹은 ‘나도(당신도) 할 수 있다’란 의식이 일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는 소규모 작업장들의 인식 기반과는 전혀 다른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이동판매 차량에 빵을 싣고 있는 모습
마호로바 이동판매 차량의 모습
이동판매 차량이 부산하게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동판매 차량에서 빵을 팔 때, 설사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할지라도(물론 전혀 없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과 함께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장애인이 만든 빵이라는 표시를 전혀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빵 판매에 지장이 있는 것일까. 같은 값이면 복지공장에서 만들 빵을 사려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이익이 나야 일자리 늘릴 수 있다
마호로바 측의 생각은 달랐다. 장애인을 많이 고용하는 것이 복지공장의 목표지만 그것도 이익을 낸다는 전제가 충족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익을 내기에 가장 효율적인 구조로 가야 한다는 게 전제가 된다.
(표) 마호로바 복지공장
설 립 | 1991년 4월 1일 | |
고 용 | 정 원 | 30명 |
대 상 | 만18세 이상 지적장애인으로 작업능력은 있으나 대인관계, 건강관리 등의 문제로 일반적인 취업이 어려운 사람 | |
생산품 | 빵, 쿠키 등 | |
판매망 | 점포판매 | 2곳 |
이동판매 | 고베시 북구 등 13곳 | |
통신판매 | www.mahoroba.or.jp |
마호로바의 빵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모두 48명이다. 32명이 장애인이고, 이 가운데 15명은 마호로바의 그룹홈에서 생활한다. 복지공장에서 낸 수익이 복지재단 기금으로 들어가고, 다시 그룹홈과 같은 비생산적인(?) 시설에 투입된다. 몬구치 시설장은 “복지공장이 이익을 내기는 상당히 어렵다. 우리는 지난해 400만엔의 순익을 올렸는데, 복지공장으로서는 아주 예외적”이라고 밝혔다.
마호로바 빵 공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
빵 공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의 작업 모습은 여느 장애인 작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업공정을 세분화해서 정신지체 장애인이 반복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신체 장애인은 신체적 능력에 걸맞는 일을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을 한다는 점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를 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몬구치 시설장은 “작업 시간 중에 개인적인 상담을 요청해 오면 일 끝나고 얘기하자고 할 정도로 시간 관리에 엄격하다”고 털어놨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마호로바 공장의 업무 테이블에 놓여 있는 판매 계획서다. 매일 매일 판매처로 공급되는 수량, 이동판매 차량에서 직접 판매하는 수량 등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좀 더 규모가 작은 작업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교감이나 인간적인 배려와는 다른 분위기를 이 도표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이다.
몬구치 시설장은 “빵은 발효 시간이 생명이기 때문에 밤 12시에 출근하는 팀도 있고, 새벽4시에 출근하는 팀도 있다. 장애인을 너무 착취하는 것 아니냐고 우리끼리 우스개 소리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시설에서 운영하는 복지공장 가운데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있는 곳은 마호로바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착취’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동 점포와 일반 제과점에 공급할 분량을 꼼꼼히 기록한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시설장(왼쪽). 공장 안에서는 작업원 외에 누구라도 위생캡을 써야 한다.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그래서 이익을 더 많이 내겠다는 것만 봐서는 일반 기업과의 차이점을 알기 어렵다. 이렇게 규모를 키우려는 이유가 장애인 고용을 늘리려는 데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과연 장애인을 위한 일터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몬구치 시설장은 “매출액 대부분이 인건비로 나간다”면서 “경영 컨설팅을 받으면 감원하라는 말부터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매출액 대부분은 인건비로 지출
마호로바 복지공장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월 16만엔. 여기에 장애연금 8만엔과 후생연금(회사가 절반 부담)을 합하면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 그리고 퇴직 후에도 비교적 여유 있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가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실제로 마호로바는 일하는 사람들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한편 이익을 내고 있는 복지공장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후쿠이 현에서 복지공장을 세우려는 사람이 경영 컨설팅을 의뢰해왔다고 한다.
천리교 교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마호로바는 복지공장과 그룹홈 5곳 이외에 어머니집과 지적장애인 소규모 작업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처음 마호로바가 세워진 것도 종교와 연관이 깊다.
몬구치 시설장의 집안과 가까이 지내던 한 천리교 교우의 아이가 장애인이었다고 한다. 18살에 학교를 졸업한 뒤 갈 곳이 없다는 교우의 하소연이 몬구치 시설장의 아버지(현 마호로바 이사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장애아의 부모는 격리된 수용시설에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으며, 아이가 능력에 한계가 있다 할지라도 그 한계를 충분히 끌어내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마호로바 복지공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
처음엔 특별히 사회복지시설을 만든다는 의식도 없었다고 한다. 1983년, 몬구치 시설장의 집에 사설 작업소를 설치했다. 몬구치 시설장의 누나가 나서서 “빵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만들 수 있으니 집에서 일단 함께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아마 이 누나가 음식 솜씨가 좋은 분이었나 보다. 담백하고 달지 않은 빵, 첨가제를 쓰지 않는 빵을 찾는 사람이 차츰 늘어나 오늘 날 50명이 일하는 빵 공장으로 성장했다.
일본 복지공장의 성공적인 모델로 꼽히는 마호로바에도 고민은 있다. 비교적 장애의 정도가 덜하고 일의 숙련도가 높은 사람들이 자꾸만 빠져나간다는 것. 일본에서 만나본 많은 복지시설 운영자들이 같은 고민을 털어 놓으며 “사회복지 계에도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런 고민마저도 부러워지는 면이 있다. 다양한 형태와 수준의 일터가 존재하고, 그런 일터들이 장애인을 끌어가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글/전미영 사무국장, 사진/백은영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