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인연입니다

푸르메 식구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푸르메재활센터에서 의료사회복지사로 근무했던 엄지현입니다. 푸르메에서 늘 접했던 ‘참 좋은 인연’이라는 문구가 푸르메를 떠나고 보니 더욱 절실히 와 닿습니다.


푸르메재활센터 설립 초기부터 일하며 2년여의 시간이 흐른 2014년 여름, 해외봉사차 가게 되었던 우즈베키스탄에서 맨홀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고 이 일로 푸르메를 떠나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엄지현


다음 달이면 사고가 난지 1년이 됩니다. 이제는 몸도 어느 정도 회복되어 고향에 있는 국립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모든 사람이 차별없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고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며 기획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과 아이디어는 푸르메에서의 경험이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푸르메에서 일했던 것은 저에게 자랑이 되며 동료들에게도 푸르메의 소식을 전하곤 한답니다. 참 좋은 인연은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다른 공간에 있어도 이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년 여름,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첫 날 후원물품을 나르던 중 맨홀에 빠져 현지 응급병원으로 옮겨 검사를 받았습니다. 갈비뼈 8개 골절, 발목 다발성 골절로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아무 이상이 없다는 오진으로 진통제에 의지하며 9일의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습니다.


현지에서 어렵게 목발과 휠체어를 구해 현지 비행기와 기차, 자동차로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활동을 했습니다. 혹시나 골절된 갈비뼈 중 하나라도 장기를 찔렀으면 어찌 되었을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수술 후 몇 달 동안 집에서 꼼짝 못 하고 지내며 처음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며 환자들의 죽음과 지인들의 죽음을 보며 이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제가 생각했던 깊이는 참 좁고 얕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위대한지요. 외롭다며 실패했다며 삶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떠한 이유더라도 살아있다는 위대함과 삶의 가치와는 견줄 수 없는 것입니다.


엄지현


이것을 깨달았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분은 푸르메재활센터에서 만났던 부모님이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아픈 후 여러 치료과정을 거쳐 센터에 오기까지 마음의 시련과 아픔을 겪는 가운데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고 하루하루 그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십니다.


누군가에는 하루가 습관처럼 눈이 떠지는 일상이지만, 우리 부모님들에게는 소중한 가치를 바라보고 살아내는 기쁨이지요.


한 걸음에 달려가 한 분 한 분 안아드리고 싶었지만, 몸이 당장 갈 수 없는 상태여서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보다 더 간절히 더 진심으로 부모님 곁을 지키고 있을 푸르메재단과 푸르메재활센터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엄지현

백경학 상임이사님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홀씨가 뜻 있는 몇몇 분들로부터 이 땅에 널리 널리 퍼져 3천 명의 기부자의 정성이 더해진 기적적인 사건. 그 홀씨로 세워진 첫 열매인 푸르메재활센터. 이 곳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아버지처럼 손 걷어붙이고 “뭐해줄까” 하시며 먼지가 나는 곳에 먼저 들어가 땀을 뻘뻘 흘리시는 마음 따뜻한 송재용 본부장님, 어머니처럼 다정하고 치료와 음식, 수선까지 손으로 해야 하는 모든 일에 만능이신 두정희 실장님, 의료실력뿐 아니라 마음을 어루만지는 공감능력과 센스, 감각으로 여러 가지를 디자인해주시는 송우현 센터장님, 거시적인 시각으로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사시는 늘 청년 같은 정연수 실장님. 이렇게 스승 같은 분들과 사랑스런 아이들, 존경스러운 부모님이 함께 있는 푸르메재활센터가 그립습니다.


퇴근 후에도 늘 불이 밝혀진 재단 사무실도 기억납니다. 일당 백의 역량으로 실력을 발휘하고 계시는 재단 간사님들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푸르메라는 마을은 이 땅에 있는 장애어린이, 아니 모든 어린이들이 누려야 하는 아름다운 세상의 작은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를 응원합니다.

모두 그립고 감사의 마음 또한 전합니다. 사랑합니다!


푸르메를 사랑하는 작은 홀씨 엄지현 드림.


엄지현 님은 푸르메재활센터에서 2012년 ~ 2014년 의료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장애어린이들과 부모님들이 건강한 마음으로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상담하고 적절한 지원사업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되어주었습니다. 늘 장애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해 열정을 아낌없이 펼쳤던 엄지현 님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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