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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도

고정욱 (동화작가)

 


“선생님. 희아가 대학을 안 가겠다네요.”
희아 어머니와 통화하다 뜻밖에 그 말을 들은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왜요?”
“자기는 이제 연주에 전념하기 위해서 대학에 안 간대요. 서태지도 대학 안 나왔지만 좋은 음악을 했다면서요.”
나는 희아를 바꿔달라고 했다. 설득해볼 요량이었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와 내가 알게 된 건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서대문종합복지관의 이청자 관장님이 나를 찾아와 대뜸 선천성 기형으로 손가락이 한 손에 두개씩, 네 개뿐인 애가 피아노를 잘 친다며 그 아이의 이야기를 글로 써달라고 부탁을 한 게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아버지도 군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다 대간첩 작전에서 부상을 당한 척수장애인이라고 했다. 손가락 열 개로도 제대로 치기 어려운 피아노를 네 개로 연주한다는 말에 나는 일단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서 만나본 희아는 손가락뿐만 아니라 다리도 무릎 아래로 없어 키가 1미터도 채 안되는 초등학생 소녀였다.

“안녕하세요?” 특유의 애기 같은 목소리로 희아는 활짝 웃으며 내게 인사를 했다. 구김 없는 표정과 말투가 장애로 인해 일찍 철든 가식은 아닐까 잠시 생각했던 나는 이내 희아의 그 밝음은 타고난 낙천적 천성임을 깨달았다. 게다가 희아의 피아노 연주는 눈을 감고 들으면 손가락 네 개로 친다고 여겨지지 않게 완벽했다. 그러니 일반 피아노 대회에 나가 비장애 아동들과 경쟁해 당당히 입상을 하곤 했던 것이다.

희아의 이야기를 취재해 작은 소책자로 낸 것이 바로 <네 손가락의 즉흥환상곡>(재활재단). 비매품인 이 책을 각 초등학교에 100권씩 보내 토요일의 특별활동 시간에 한 학급 아이들이 읽고 토론을 하거나 독후감을 쓰게 하면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이 이청자 관장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은 자주 엉뚱하게 흘러가게 마련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이 책이 비매품임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거였다. 독후감 대회를 열었더니 2천편이 넘는 독후감이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날아와 심사하는 데에만 몇 주일이 걸릴 지경이 되었다. 희아도 언론의 조명을 받는, 스타 아닌 스타가 되어 각 방송사와 신문사 기자들이 희아네 재활 용사촌 15평 연립 아파트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것이었다. KBS 9시 뉴스에 소개가 되었으니 전국에서 희아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연주 요청에 희아는 비명을 질렀고 그 뒤 미국이며 캐나다, 호주 등등의 나라에까지 희아는 연주를 하러 다니곤 했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얼마 후 희아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고 조금씩 잊혀졌다. 가끔 나에게 그 책을 구할 수 없겠냐는 연락이 올 때마다 여분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다 나는 희아 아버님이 몇 년 전에 병으로 돌아가시고 희아네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쟁이인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그저 희아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게 해주는 것뿐이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알량했지만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매품이었던 책을 예쁜 삽화와 세련된 편집을 거쳐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대교)라는 제목의 동화와 만화로 동시 발간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 온 희아의 일기도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의 일기>(파랑새어린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일이 되려니까 희아 관련 책이 원소스 멀티 유즈의 방식에 따라 한꺼번에 5권이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물론 수익금의 일부는 희아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피아노 뒷자리 어머니의 기도

 

그런 와중에 나는 모 출판사가 시내 대형서점에서 여는 희아의 연주회에 초대되어 간 적이 있었다. 늘 희아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어머니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스패너를 들고 페달장치를 연결하셨다. 희아는 짧은 다리 때문에 특수한 페달장치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책의 수익은 사실 미미한 거였지만 그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그 동안 한층 진일보한 희아의 연주 실력은 사람들을 더 크게 감동시켰다. 키는 그대로지만 마음은 훌쩍 커서 사춘기 고등학생이 된 희아에게 이 세상 사람들은 변함없는 사랑을 전해 주었다. 희아는 다시 정신없는 스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윽고 연주가 시작되자 어머니는 관객들이 보지 못하는 피아노 뒤에 그림처럼 앉아 계셨다. 희아는 열정적으로 연주에 몰두했지만 그때 나는 보고야 말았다. 연주 내내 이어지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그 가슴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오늘날의 희아가 있기까지 어머니가 얼마나 큰 희생과 사랑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딸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무거운 등불을 높이 드는 그 삶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었으니까.

“희아야. 음악을 하려면 이론 공부를 제대로 해야 좀 더 좋은 연주를 할 수 있어.”

전화기 저편의 아직은 어려서 고집을 피우는 희아에게 나는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 설명했다.

“학교 다니는 시간에 연주 연습 더 하는 게 낫잖아요.”

“대학에 가면 말이야. 정말 수많은 기회가 있고 경험을 쌓을 수 있어. 교수님들, 선후배들. 친구들 사귀면서 함께 새로운 일도 할 수 있고……. 그건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야.”

“……네.”

“그리고 장애인이 대학을 간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 줄 알아? 대부분 장애인들이 집 밖에도 못 나와 보고 평생을 보내는 거 너 알지? 그런데 뭐든 할 수 있는 네가 대학을 안 가면 그건 너를 지켜보는 장애인들의 희망을 짓밟는 거야.”

“정말 그래요?”

“그럼. 그리고 나중에 연주를 다니더라도 음악을 전공한 피아니스트 이희아 양, 이러는 거하고 그러나 피아노 잘 치는 이희아 양, 이러는 거하고 같다고 생각해?”

“…….”

나는 고집 센 희아를 되는대로 설득했다.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어머님이 그렇게 대학 아니라 더한 것까지라도 네가 원한다면 보내실 준비가 되어 계신데 대학을 안 간다는 건 어머니의 정성을 너무 몰라주는 거야.’

내 몫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선물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동화, 만화 동시 발간 기념
사인회및 연주회에서. 왼쪽은 만화가 손재수 선생,
가운데가 고정욱 작가, 오른쪽이 이희아 양.

희아 어머니는 처녀 적에 보훈병원 간호사였다. 그러다가 부상당해 입원한 희아 아빠를 만나 연애를 하고 정상적인 부부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과 신앙만으로 결혼을 했다. 임신에 대해 꿈도 꾸지 않던 시절, 심한 감기로 약을 장기 복용했는데 그때 하필 기적적으로 임신이 된 거였다. 정말 드문 일이었지만 의사의 말은 아기가 기형아일 확률이 너무 크다는 거였다. 그래도 어머니가 낳아서 기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십자가를 지겠다는 각오였으리라. 출산 후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지만 어머니는 한번도 자신의 십자가인 이 딸을 거부하거나 슬퍼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하느님의 선물이었기 때문에…….

아무튼 전화기를 1시간 가까이 붙들고 떠들어댄 내 설득 덕분인지, 사춘기 소녀의 산들바람 같은 마음이 변해서인지 희아는 마침내 평택에 있는 국립 재활복지대학 음악과에 수시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만났더니 언제 대학에 안 간다고 했냐는 듯 내게 말하는 거다.

“선생님, 저 대학을 마치면 외국으로 유학 가서 더 공부할 거예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군.”

곁에 있던 어머니는 나에게 감사하다며 말했다.

“모든 게 선생님 덕분이에요.”

“무슨 말씀을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젓는 나는 안다. 그건 내가 아니라 어머니의 하늘같은 사랑 덕분이라는 걸. 딸의 연주가 있을 때마다 눈물로 기도하는 한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하늘이 들어주고 있는 것임을. 아무튼 희아의 연주와 삶이 대학에서 한 차원 더 도약할 것이 나는 반가울 뿐이었다.

이 글을 쓴 고정욱씨는 성균관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장애로 소망했던 의대 입학이 좌절되었지만 문학을 공부하면서 더 큰 보람을 찾았다.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고, 최근에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동화를 많이 발표했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의 일기>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인물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아 <장영실>, <광개토대왕>, <몽당연필이 된 마더 데레사>, <헬렌켈러> 등을 발간했다.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MBC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도서가 되기도 했다.

연락처: kjo123@chol.net / 서초구 반포 4동 104-10 노블하우스 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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