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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가 당신의 삶을 변화시킨다

백경학 상임이사의 미국 연수기 1편 <호프 서비스>

 

장애인복지 선진국을 꼽으라면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스웨덴 등 서부 유럽국가들이 떠오르지만, 미국도 장애인에게 체계적인 직업교육과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나라다. 그중에서 특히 캘리포니아와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장애인 일자리 정책을 실천하는 지역이다.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발달장애인의 돌봄서비스와 직업재활 사업을 잘하고 있는 대표적인 장애인기관을 소개한다. 아울러 주택과 교통, 취업 등 장애인이 직면한 현안을 풀기 위해 지역과 연계된 사회변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거나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지역재단을 분석한다.

정신과 진료센터를 운영하는 중증장애인 교육시설 <호프 서비스>

호프 서비스에서 교육을 받은 뒤 동네 슈퍼마켓에서 일하거나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장애인 모습
호프 서비스에서 교육을 받은 뒤 동네 슈퍼마켓에서 일하거나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장애인 모습

“이곳에 온 지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그 사이 절반인 10년 정도는 일자리를 얻어 파트타임으로 일했어요. 월급을 받는 건 좋지만 몸이 너무 힘들 때면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이곳을 찾아와요.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장애인단체 <호프 서비스(Hope Services)>에서 만난 손트(Shaunte · 44세) 씨의 말이다. 지적장애인인 그녀는 3년 동안 일했던 레스토랑을 최근 그만뒀다. 하루 7시간, 일주일 4일 출근해 테이블을 닦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청소일이었다. 일은 벅차지 않았지만 다른 직원들과의 소통이 힘들었다. 평소에는 무던하게 지냈지만 손이 더뎌 일이 밀리면 눈총이 쏟아졌고 그 탓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결국 일을 그만둔 그녀는 다시 <호프 서비스>로 돌아왔다.

그녀는 현재 그룹체조와 댄스, 캠코더를 이용한 스토리 제작, 컴퓨터 응용기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재미있느냐고 묻자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대답한다. 손님이 몰릴 때 눈총을 받으며 청소를 했던 때와 비교하면 행복하단다.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녀는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손트 씨(왼쪽)와 수잔 린타 국장
손트 씨(왼쪽)와 수잔 린타 국장

몸을 가누기 힘든 장애인이라도 스스로 원한다면 교육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호프 서비스>의 역할이다. 칩 허긴스(Chip Huggins) 대표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와 완전히 통합될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장애어린이도 다른 아이와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

<호프 서비스>는 지적장애 어린이 12명의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와 같은 발달장애인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하자는 취지로 지금은 실리콘밸리의 중심이 된 산호세(새너제이 )지역에 1952년 설립했다. ‘발달장애’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기여서 자폐와 지적장애는 ‘저능아’나 ’바보‘로 놀림감이 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 똑같은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믿었고, 그러려면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가장 먼저 특수유치원을 세웠다. 방 한 칸에서 시작한 특수교육은 이전까지 방치되었던 발달장애어린이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전기를 마련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지방 카운티(군)에서 재정 지원을 따냈고, 발달장애 뿐 아니라 뇌성마비와 같은 지체장애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프로그램을 세분화하고 어린이에서 노인까지 교육 연령층을 확대했으며 다른 지역에 지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새너제이에 본부를 둔 <호프 서비스>는 산타클로즈와 몬테레이, 산베니토, 알라메다, 산마테오 등 샌프란시스코 남쪽 지역 6곳에 지부를 두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1977년 장애가 없는 사람들처럼 발달장애인도 필요한 서비스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발달장애인지원법(Lanterman Act)에 따라 캘리포니아에 발달장애인지역센터(DDS) 21곳을 만들었으며 <호프 서비스> 지부 6곳 모두가 이들 지역센터로 지정됐다.

산호세(새너제이)에 있는 호프 서비스 본부건물
산호세(새너제이)에 있는 호프 서비스 본부건물

현재 <호프 서비스>의 목표는 지역 장애인들을 연령별, 생애주기별로 돌보고 일상생활과 직업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일이다. 주요 사업은 다음과 같다.

1. 영유아 조기 중재 서비스(Homestart)
태어난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고 판명나면 5살이 될 때까지 감각통합치료와 특수교육을 실시한다. 눈을 맞추는 것부터 감각을 익히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장애 정도와 성장 속도가 다른 어린이들에게 개인별 성취계획과 서비스 목표로 마련한다.

2. 데이케어 서비스
18세 이상의 발달장애인 청소년·성인을 대상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6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음악, 미술, 무용 등 좋아하는 것을 배우면서 지역사회에 통합돼 살아갈 수 있도록 서비스를 지원한다.

3. 직업교육 서비스
장애인 4명과 직업교사(Job Coach) 1명이 한조가 돼 컴퓨터 기술, 캠코더를 통한 비디오작품 만들기, 직업 탐색, 모의 면접, 이력서 작성, 직장견학 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과정을 이수하면 지역사회에 있는 회사와 상점에 취업할 수 있다. 더 교육받기를 원할 때는 지역 전문대학(산호세(새너제이)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할 수 있다.

4. 정신건강 서비스
우울증과 심리적인 문제, 스트레스에 대해 상담하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5. 장노년층 데이케어 서비스
이동과 소통이 가능한 노인들이 매일 출근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시간을 소일한다.

시니어 프로그램
시니어 프로그램

북부지역의 살림을 맡은 수잔 린타(Susanne Rinta) 국장의 안내에 따라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마운틴 뷰 지역에 있는 <호프 서비스>를 둘러 봤다. 먼저 찾은 곳이 노인 발달장애인들의 데이케어를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시니어 프로그램실. 65명의 이용자들이 테이블을 중심의 자리를 잡고 있다. 휴식시간이지만 대부분 질서정연하게 자리에 앉아 있다. 발달장애의 경우 40살이 넘으면 인지기능과 활동 기능이 급속히 떨어지기 때문에 주로 간단한 게임이나 노래연습, 장기자랑, 일상생활에 필요한 동작 등 지적인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레저와 레크레이션 위주로 수업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테이블마다 열심히 책 읽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떤 테이블에서는 대화가 한창이다. 점심시간이 되려면 시간이 남았는데 할머니 한 분은 아침 일찍 나오느라 허기진지 도시락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먹는다. 실내 수업 때는 직원 1명이 8명의 장애인을 돌보지만 슈퍼마켓에서 물건 사기, 공원으로 소풍 가기 같은 외부 프로그램에는 2명의 직원과 자원봉사자가 동참한다.

노인들은 하루에 보통 5개에서 6개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자신이 사는 카운터(군)의 사회복지과에 데이케어를 신청하면 일정 기간 적응훈련을 거쳐 원하는 데이케어센터를 선택할 수 있다.

500명이 넘는 장애인들 취업에 성공해

다음 방은 컴퓨터 프로그램실. 방안에 12대의 컴퓨터가 놓여 있다, 인근 전문대학에서 파견된 강사가 컴퓨터 사용법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수준급인 장애인 2명은 전문대학에 진학해 컴퓨터를 더 배우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린타 국장은 “최근 몇 년간 이곳에서 직업훈련을 받은 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취업한 장애인 수가 500명을 넘는다.”고 자랑한다.

퀼트의 방 (배틀+털실장+작품)
퀼트의 방 (배틀+털실장+작품)

그 옆방에는 화려한 자수를 놓은 작품들이 벽면에 걸려 있다. 방을 둘러보니 베틀과 미싱도 눈에 띈다. 벽면에는 다양한 색깔과 재료로 만든 수십 종류의 털실 꾸러미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곳에는 55명의 여성들이 참여해 재봉틀로 자수를 놓은 킬트작품과 가방, 모자 등을 만들고 베틀로는 목도리를 짠다고 한다. 손재주가 있는 장애인이 만든 작품은 지역주민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모퉁이를 돌아가니 갑자기 병원이다. 나를 맞은 치료팀장 안나 페르난데스 씨는 “멀리 떨어진 장소에 병원을 만드는 대신 많은 장애인이 찾아와 교육받는 이곳에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정신과 치료가 가능한 진료센터를 설치했다”고 설명한다. 발달장애의 경우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을 뿐 아니라 우울증 증상도 나타날 수 있어 정신적으로 위험하다고 한다.

장애인 교육시설과 치료센터가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디어다. 정규직 의사 2명과 파트타임 의사 2명이 치료사 40명과 함께 이곳에 정기적으로 치료받고 있는 보통 1500명의 환자를 돌본다고 한다. 매일 출근해 일상생활과 취업에 필요한 교육을 하는 장소에서 정신과 치료를 함께 받는 것이 발달장애인들에게 편안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재활과 동시에 자활을 지원해야 자립할 수 있어

환자들은 보통 저소득층 장애인들이기 때문에 의료비용은 연방정부가 부담하고 필요에 따라 지방정부도 일부 충당한다. 적자를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다니 환자와 경영진, 의료진 모두 행복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제도가 당연히 상식적이면서도 정상적인 시스템이다. 의료수입을 계산하고 적자를 어떻게 메꿀지 걱정해야 하는 우리의 장애인 의료환경이 서글프다.

 

치료팀장 안나 페르난데스 씨
치료팀장 안나 페르난데스 씨

<호프 서비스>는 발달장애인을 잘 치료하고 좋은 직업교육을 제공해 자립을 돕는 것을 사업목표로 한다. 의료재활과 직업재활을 동시에 추구한다. 푸르메재단이 어린이재활병원과 세 개의 지역복지관, 그리고 장애인 직업시설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와 상통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궁금한 재정문제를 물어봤다. 본부를 포함한 6개 지부에서 일하는 직원 수는 650명으로, 장애인은 하루 3500명이 이용한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장 선진적인 장애인복지 정책을 펼치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연방정부와의 1대 1 매칭을 통해 주 정부 산하 개발부(DDS)를 통해 <호프 서비스>에 연간 6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7200억 원을 지원한다. 린타 국장은 시설 운영비 걱정은 없지만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장애인들이 점점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어 시설을 이용하기가 힘들어질까 고민이란다.

현금뿐 아니라 주식과 채권, 부동산, 자동차도 기부해야

그녀는 지역적인 수요에 따라 새로운 지부를 만들고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늘 기금이 필요하다며 <호프 서비스>에서는 모금을 확대하기 위해 현금뿐 아니라 주식과 채권, 부동산, 심지어 자신이 타던 자동차를 기부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조세 전문가를 배치해 상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선진국에서는 자신의 재산을 꼭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의식이 우리에 비해 약하기도 하지만 조세 전문가의 도움으로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좋은 일에 쓰도록 유도하는 여건이 마련된 것도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호프 서비스> 본관 입구에 새겨진 글귀가 유난히 가슴에 와닿는다.
“당신의 기부가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글·사진=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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