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비장애인 극단 어우름

 


◐ 벽 없는 세상을 여는 실험무대 ◑


 



김지영 (자유기고가)


세상에는 다양한 최고와 최초가 존재한다. 하지만 [극단 어우름]처럼 용감한 최초, 아름다운 최고는 드물다. 어우름은 여럿을 한 데 모아서 합친다는 ‘아우르다’의 우리말. 이 순정한 의미 그대로, 극단 어우름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전문연극인들로 구성된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문화 공동체다.


“작년 8월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연 ‘코카서스의 백묵원’의 예술감독을 맡았습니다. 그때 오디션을 보면서 장애인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노력하는지, 얼마나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지녔는지를 보게 됐습니다. 그 열정은 저를 부끄럽게 할 정도였어요. 공연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은 극장을 가득 메웠던 이들에게 겸손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고, 많은 관객은 우리가 오히려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지요.”





다름의 차이가 생성한 희망과 긍정의 몸짓


정혜승 대표는 극단 어우름의 창단계기가 된 첫 무대를 회상했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자 감격에 겨운 만큼 암담했다. 무대에 대한 그들의 뜨거운 열망을 담아낼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극을 통해 장애인들의 영혼이 자유롭고 행복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과 소통하고 절망과 슬픔 속에서 헤엄쳐 나오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것은 낮은 자존감에서 빠져나오려는 몸짓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회성 공연에 그칠 게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소통하는 ‘지속적인 장’을 마련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30년 연극배우의 길을 걷던 정혜승 대표는 ‘그들을 껴안고 가야한다’는 어떤 운명의 지침을 느꼈고, 그 새로운 도전을 과감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연극은 종합예술이다. 배우 외에도 연출, 각본, 의상, 무대장치 등 극단이 운영되는 것은 돈과 열정을 끊임없이 부어대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일이었다. 정혜승 대표는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혹여 끼니를 굶기게 될까봐, 연습할 곳이 없을까봐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부대끼며 서로를 알아갔습니다. 상처와 아픔으로 상대를 보지 못하던 친구들, 자신의 장애가 남에게 해가될까 두려워 눈치만 보던 친구들이 웃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연습실은 너무나 떠들썩하고 시끄럽고 재미가 넘쳤지요. 모두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친구들로 변해갔습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화장실에도 데려가고 땀도 닦아주고 밥도 먹여주었습니다. 때로는 불어터진 라면을 먹기 일쑤였지만, 너나할 것 없이 모두 행복했습니다.”

다시 희망과 용기를 얻은 그녀는 극단의 후원단체를 찾기 위해 가까운 지인부터 국회와 기업체까지 온몸으로 뛰어다니며 이 극단의 의미와 필요성을 설파했고, 다행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공연 외에 연극캠프, 연극 아카데미 등 다양한 활동


극단 어우름은 작년 지난 11월에 충돌, 전쟁, 화합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 극<더불어>를 창단 작품으로 무대에 올렸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소리도 몸도 뒤틀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대사를 구사하고 무대를 가로지르며 멋진 연기를 펼친 것입니다.”

극단 어우름은 이 무대를 통해 장애인은 가능성이 닫힌 몸이 아닌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유연한 몸이란 것을 증명했고,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하며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주었다.


현재 극단 어우름은 공연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전문적인 연기교육개발 프로그램으로, 연 4회 ‘연기아카데미’를 개설한다. 화술, 성악, 무대동작, 연기, 무용 등 5개 정규강좌와 특강으로 구성되는 연기 아카데미는 지난 6월 초 벌써 2기를 배출했고 종강 공연도 성황리에 마쳤다.


또한 오늘 수원 온누리교회 열린예배의 초청무대와 같은 작은 공연 외에도, 문화예술 공연의 기회가 거의 없는 소외 계층이나 장애우들과 함께하는 ‘찾아가는 공연’도 있다.


“얼마 전 자폐학교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산만하던 자폐증 아이들이 무대에 집중하고 환호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먼저 다가왔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이 이렇게 즐거워하는 건 처음 본다고 감격해했습니다.”

정혜승 대표는 이 ‘작은 기적’에 대해 서로의 연약함을 돌아보면서 영혼으로 다가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전문 연극 캠프’를 개설할 예정이고, 9월 5일부터 10월 1일까지의 가족극 공연 준비도 병행해야한다. 워낙 일정이 촉박해서 국내외 장애우 단체와의 교류를 위한 해외초청 공연은 내년으로 미뤄진 상태다.


재능보다 그 사람 존재 자체가 소중한 공동체


“말을 못하거나 듣지 못하고, 움직일 수 없는 다리는 장애가 아니에요. 보이지 않는 눈도 암흑이 아니죠.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심과 사회적 무관심이 아닐까요.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리고 관객이 함께 어우러져 정을 주고받고 ‘소통’하는 멋진 무대를 위해 극단 어우름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본디 공동체 문화란 한 사람이 가진 재능이나 기술,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여러 형편의 친구들이 모여서 연극이란 작업으로 마음을 나누고 치유하고 희망을 찾아가는 극단 어우름은, 진정한 공동체 문화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들의 더딘 한 걸음은 분명 우리사회의 아름다운 진화를 이루고 있다.


 


이 글을 쓰신 김지영 선생님은 인물 인터뷰 기사를 주로 쓰시는 자유기고가입니다.

이 글은 격월간 <기분 좋은 만남> 7월호에 실린 기사를 옮긴 것입니다.


 


 


기부하기